|
금융당국은 “금리 결정에 간여하거나 유도한 적이 없다”고 하지만, 은행들의 대출 금리 인상이 당국의 가계대출 관리 주문에 협조하는 차원이라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당국이 ‘모니터링’만 언급해도 압박을 느끼는 게 금융사다. 금리 인상은 은행이 대출을 줄이기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선택이다. 물론 대출 금리처럼 예금 금리를 올리는 은행은 없다. ‘관치 금리’가 결국 예대마진을 키워 은행들의 배만 불려줄 수 있단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날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국내 은행은 올해 상반기 30조원에 육박하는 역대 최대 이자이익을 거뒀다.
안타까운 건 관치 금리 지적까지 받는 상황에서도 가계대출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5대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14일 기준 719조원으로 이달 들어 보름도 지나지 않아 4조1800억원 늘었다. 이 추세라면 지난달 증가액(7조1660억원)을 초과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시중은행의 금리가 올라가니 차주들이 지방은행을 찾는 모습도 감지된다. 지방은행은 대출 증가율이 높지 않아 상대적으로 여력이 있다 보니 금리를 올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가계대출이 잡히지 않을 경우 ‘정책 실기론’이 확산될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자영업자 어려움을 고려한다”는 이유로 대출 한도를 줄이는 규제(스트레스 DSR 2단계)를 두 달 미뤘다가 비판에 휩싸인 바 있다. 지난 20일, 뒤늦게 수도권의 주담대 한도를 비수도권보다 더 줄이는 ‘핀셋 규제’를 들고 나왔지만 최근의 증가세를 잡기엔 역부족이란 평가가 많다. 같은 연봉인데 지역에 따라 한도 차이를 크게 두는 게 ‘갚을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빌리는 관행을 정착시키겠다’는 당국 기조와 맞지 않는 것 아니냐는 지적과 함께 역차별 문제도 제기됐다.
은행들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상황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취임 이후 처음 은행장들과 가진 간담회에서 은행의 고수익에 대한 사회적 논란과 관련해 ‘민생이 어려울 때 은행이 상생 의지를 충분히 전달했는지’ 등을 화두로 꺼냈다고 한다. ‘횡재세’를 물려야 한단 얘기까지 듣던 은행들도 분명 상생 노력을 보여야 하는 건 모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금융당국의 대출 죄기가 은행 고수익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은 아이러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