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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안승찬 기자] 고백하건대 기자는 부끄러움이 많았다.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생각했다. 학창시절엔 수업시간에 질문하려고 생각만 해도 가슴부터 콩닥콩닥 뛰었다. 지금이야 “네가 내향적이라고?”라며 코웃음 섞인 반응을 듣겠지만 사실이다. 부단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수잔 케인의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콰이어트’는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복음서’다. 외향적인 성격을 강요받는 시대에 그녀는 말수가 적고 고민이 많은 내향적인 사람들의 가치와 목소리를 전 세계에 알렸기 때문이다. ‘내향적인 사람들이 세상을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그녀의 책은 35개 언어로 번역됐다.
세상의 절반인 외향적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요즘 케이블방송에 자주 나오는 (분명 외향적인 성격임에 틀림없는) 임윤선 변호사는 이 책을 읽고 “내향적인 사람들은 답답하다고 생각했는데, 조금 이해하게 됐다”고 말했다. 놀랄 만한 발전이다.
지난달 28일 이데일리와 이데일리TV가 주최한 세계여성경제포럼 기조강연을 위해 방한한 수잔 케인을 만났다. 별것 아닌 기자의 물음에도 그녀는 “정말 좋은 질문이네요”를 연발했다. 배려와 공감으로 내향적인 사람들의 대변인이 된 그녀와의 인터뷰가 그렇게 시작됐다.
◇“내향적인 리더십 재평가 받아야”
-한국에 온 건 처음이라고 들었습니다. 느낌이 어떤가요.
▲한국인 친구들이 주위에 많아서 한국은 가장 방문하고 싶던 나라였어요. 제 아이들은 태권도를 배우고 있고 한국 음식도 좋아하죠.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한국인들은 제가 좋아하는 감성을 지니고 있는 것 같아요.
-스스로를 내향적이라고 생각해서 그런지 저는 ‘콰이어트’를 아주 흥미롭게 읽었어요. 위로를 받았다고 할까. 세상의 절반은 내향적인 사람일텐데 그들의 장점은 뭘까요.
▲우리는 내향적인 사람의 능력을 너무 저평가하고 있어요. 반대로 대담하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들을 숭배하죠. 그런 현실에서 ‘콰이어트’라는 책이 시작된 겁니다. 사회에 기여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세요. 많은 사람들이 내향적입니다. 그들은 감성과 창의력, 심지어 리더십도 풍부하죠. 우리는 보통 리더십이 외향성의 발현이라고 여기는데 꼭 그런 건 아니에요. 간디 처럼 위대한 지도자들중 내향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념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또 자신만의 감성으로 사람을 이끌며 영감을 주었어요. 특별히 조명을 받으려고 하지는 않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그들의 진실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내 많은 사람들이 추종하게 만든 겁니다.
◇“세상의 절반은 내향적인 인간…자신을 믿어라”
-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이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잖아요. 저도 학창시절에 왠지 부끄러워서 질문도 제대로 못하곤 했는데, 커뮤니케이션이 안되면 아무리 신념과 영감이 있더라도 객관적인 평가를 받기가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저도 그런 경험이 있어요.(웃음) 제가 줄 수 있는 조언은 교실이나 사무실에서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기다리지 말고 빨리 얘기를 꺼내도록 스스로를 다독이라는 겁니다. 빨리 얘기를 꺼내면 당신의 존재가 교실에서 두드러지게 되고 당신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그게 자신감을 불러와 불안감을 해소시킬 겁니다. 핵심은 ‘먼저’예요. 또 자신감을 가져도 괜찮은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내향적이어서) 같은 느낌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돌아다니며 강연을 많이 하는데 정말 예기치 않았던 사람들이 저에게 와서, 그것도 정말 영향력 있는 분들이 “나도 사실 내향적이라 그런 기분을 잘 안다”고 말해요. 다른 사람도 다 똑같다는 걸 기억하세요. 저는 ‘스스로 다독여서 나아간다’란 말을 정말 좋아하는데, 우리는 할 수 있어요. 그저 자신에 대한 격려가 필요한 거죠.
◇“집단만 강조하는 교육은 문제…고독한 시간 가르쳐야”
-보통 창조적인 아이디어는 사람들과 만나고 서로 다른 아이디어가 합쳐질 때 나온다는 게 요즘 일반적인 주장인데, ‘콰이어트’에서는 고독한 사람이 오히려 창의적일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어요. 내향적인 사람뿐 아니라 외향적인 사람도 고독한 시간을 갖는 게 창의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까요.
▲외향적인 사람도 혼자 있는 시간을 갖는 게 창의성에 도움이 됩니다. 제가 아는 많은 외향적인 예술가들도 고독한 시간에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기도 하고요. 고독에 빠졌다가 밖으로 나와서 사교성을 맘껏 뽐내며 인생을 즐기면 되니까요. 내향적인 사람에겐 혼자만의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요? 그들에게 고독이 더 자연스러워요. 지금의 교육 현실은 이런 면에서 사실 문제가 있어요. 학교에선 아이들의 공동생활에 초점을 맞추느라 개인의 특성을 무시하고 있어요. 우린 외향적인 아이들이 혼자서 작업하도록 훈련할 기회를 박탈하고 있는 겁니다. 외향적인 아이들도 고독을 배워야 합니다.
-내향적인 사람이 오히려 타인과의 협력을 잘하기도 하지 않나요.
▲연구조사 결과를 보면 내향적인 사람은 보통 잘 협조하는 특성이 있고 공동작업도 즐깁니다. 그들은 갈등 상황을 피하려 하고 조화로운 상황 속에서 일하려고 노력하죠.
◇“우린 왜 서로를 가만 놔두지 못하는 걸까”
-내향성과 외향성은 생물학적으로 결정되는 건가요?
▲내향성과 외향성은 선천적으로 타고난 것이지만 교육을 통해 길러지는 부분도 있죠. 환경의 영향을 무시할 수 없으니까요. 내향적인 사람도 성장하면서 사회성이 발달하기도 해요. 고독과 침묵을 선호하는 특성이 물론 내재돼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교성도 발달해 사람들과 어울리는 상황에서도 점차 편안함을 느끼게 되는 거죠. 외향적인 사람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더 선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방에서 혼자 지내는 법을 배우게 되는 거죠.
-여성이 반드시 내향적인 건 아니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섬세함과 여성성과는 겹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은데요.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과거엔 사교적인 여성들에게조차 내향성을 요구했거든요. 그런데 페미니즘이 도래하면서 내향적인 여성들이 더욱 힘들어졌어요. 여성의 조신함이 더 이상 용인되지 않았고 모두가 목소리를 내고 대담해져야 한다고 요구했거든요. 그렇다고 외향적인 여성들의 삶이 좋아진 것도 아니에요. ‘여자들은 나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도 여전히 남아 있었기 때문이죠. 외향적인 여성을 만나보면 나름의 애로가 있다고 말하더군요. 그래서 이런 생각이 들죠. “우린 왜 서로에 대해 여유를 갖지 못할까. 있는 모습대로 살도록 놔두면 대체 왜 안 되는 걸까.”
-내향적인 사람이 내향성을 스스로 받아들일수록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도 하셨는데 왜 그런가요.
▲저는 독자들로부터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편지를 받았는데요, 그들은 한결같이 자기 본연의 모습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오히려 삶의 외형적인 모습들이 나아졌다고 말합니다. 취업면접을 보러 갈 때조차 전에 없던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고 말이죠. 제 생각엔 누구든 자신의 본질적인 특성이 있고 그걸 인정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조용한 혁명 필요한 때…이젠 바꿔야”
-‘콰이어트 레볼루션’(quiet revolution:조용한 혁명)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셨지만, 사회적 인식이 바뀌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가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조용하고 학구적인 분위기에서 자라났기 때문에 가정에서는 내향적인 특성이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오히려 존중받았어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자신감이 갖춰지게 된 거 같아요. 그런데 제가 받은 많은 편지에서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에게 “넌 문제가 있어”란 지적을 받아온 사람이 굉장히 많더군요. 이게 그들에게 큰 상처를 남긴 것이죠. 이걸 바꾸어야 합니다.
-세상에는 내향적인 사람이 있고 외향적인 사람도 있게 마련인데, 어떻게 하면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이 같이 잘 살 수 있을까요.
▲조화를 이루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음과 양처럼 말이죠. 저는 내향적이지만, 제 남편은 굉장히 외향적입니다. 남편과 얼마나 자주 사람들과 어울릴까를 두고 협상을 벌이곤 하는데, 한 달에 세 번까지만 부부동반 모임에 가는 거다, 이런 식으로 정하는 거죠. 그럼 더 이상 논쟁할 일이 없어요.(웃음)
수잔 케인은...
‘콰이어트’(Quiet)로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른 작가다. 3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된 ‘콰이어트’는 타임지의 커버 스토리를 장식하기도 했다. 또한 수많은 “베스트” 리스트에 그 이름을 올렸으며, 유명 잡지 패스트 컴퍼니가 선정한 올해 최고의 도서 1위로 선정되었다.
기립박수를 받았던 케인의 TED 연설은 첫 주에 조회수 백만 건을 돌파하는 기록을 세웠으며 이후 조회수 4백만 건을 돌파했다. 빌 게이츠는 이를 역대 최고의 연설로 지칭하기도 했다.
프린스턴대와 하버드 법대를 우등으로 졸업한 뒤 변호사로 일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작가로만 활동하고 있다. 가족으로는 남편과 두 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