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

[마켓인]창업주 가는 길에 웃돈을 뿌리오리다…행동주의 ‘아이러니’

김성훈 기자I 2023.02.21 17:08:50

자본 시장서 행동주의 펀드 예의주시
강력한 거버넌스 개선 주문 ''새바람''
''최대주주 물러나야 해'' 외치는 사이
70~90% 경영권 프리미엄 ''아이러니''
''과정의 일환'' VS ''최대주주 좋겠다''

[이데일리 김성훈 기자] ‘고인 물 나가!’

최근 행동주의 펀드들의 행보가 심상치 않다. 케케묵은 거버넌스(지배구조)에 문제 제기를 하는 과정에서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고, 시장에서도 이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최대주주들이 새 주인에게 기업을 매각하는 결과도 도출하고 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행동주의 펀드가 타깃으로 삼은 기업 최대주주에게 뜻밖의 웃돈을 쥐여주는 모습도 포착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 등장 전과 비교해 몰라보게 높아진 주당 가격으로 지분을 팔 기회를 부여해서다. ‘거버넌스 개선을 위한 과정이냐’를 두고 업계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가 타깃으로 삼은 기업의 최대주주에게 뜻밖의 웃돈을 쥐여주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행동주의 펀드 등장 전과 비교해 몰라보게 높아진 주당 가격으로 지분을 팔 기회를 부여해서다. 최규옥 오스템임플란트 회장(왼쪽)과 이수만 에스엠 전 총괄 프로듀서(사진=오스템임플란트·연합뉴스)
◇ 웃돈 얹어 최대주주 보내는 행동주의

21일 자본시장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경영 개선을 요구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글로벌 의결권 조사기관인 인사이티아에 따르면 지난해 행동주의 펀드의 공격을 받은 한국 기업은 47곳인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10곳)과 비교하면 10년 새 비해 5배 가까이 급증한 것이다.

행동주의 펀드가 주목받은 이유로는 오스템임플란트(048260)에스엠(041510)으로 촉발된 경영권 손바뀜을 빼놓을 수 없다. 사실상 이 두 기업 사례가 행동주의 펀드의 관심에 불을 지핀 사례라고 봐도 무방하다. KCGI(오스템임플란트)와 얼라인파트너스(에스엠)가 각 기업의 거버넌스 개선에 목소리를 내면서 가시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오스템임플란트 창업주인 최규옥 회장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UCK·MBK파트너스 컨소시엄에 보유 지분 절반(9.3%)을 매각하면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에스엠도 이수만 전 총괄프로듀서가 하이브(352820)에 자신의 보유지분 18.4% 가운데 14.8%를 매각하면서 최대주주에서 내려왔다.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최대주주가 물러나야 한다는 행동주의 펀드의 주장은 일정부분 성과를 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최규옥 회장이나 이수만 전 총괄 모두 자리에서 물러나는 대가로 몇 달 전까지는 생각지도 못했던 웃돈을 인정받았다.

최 회장은 오스템임플란트 매각 당시 1주당 19만원을 인정받았다. 지금으로부터 약 7개월 전인 지난해 7월 20일 종가(9만4200원)와 비교하면 91% 가까운 경영권 프리미엄을 인정받은 셈이다. 에스엠도 마찬가지다. 이 전 총괄은 하이브에 주당 12만원을 인정받고 지분을 처분했다. 지난해 7월 20일 에스엠 종가(7만900원)와 대입하면 약 70% 수준의 경영권 프리미엄을 챙겼다.

CJ ENM(035760)과 경영권 인수 협상을 벌이던 2021년 11월 당시 점치던 지분 전량 매각 규모(약 3400억원)와 비교하면 830억원 가량을 더 받았다. 이 전 총괄이 지분 전량을 매각하지 않고 3.6%를 남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 차익은 1000억원 이상을 넘어설 가능성도 있었다. 거버넌스 개선 목소리에 힘입어 최대주주가 물러나는 데는 성공했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은 후하게 받은 셈이다.

[그래픽=이데일리 김일환 기자]
◇ 행동주의라지만, 펀드란 점 잊지 마라

행동주의 펀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쪽에서는 소기의 성과 달성을 위한 과정이라고 평가한다. 결국 이들이 주장하는 ‘기업가치 개선’을 이루기만 한다면 크게 문제 될 것은 없다고 말한다. 가장 큰 걸림돌이던 최대주주가 물러났으니 거버넌스 개선이 속도를 낼 거고, 절차를 잘 밟아 파이브 배거, 텐 베거(Tenbagger·10배 수익)를 노리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결국 최대주주 좋은 일 시킨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이미 경영권 매각 논의가 이뤄지던 시점에서 행동주의 펀드가 매각 규모 상승에 일조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투자 가치 상승을 위한 과정에서 도리어 최대주주들이 수혜를 톡톡히 누렸다는 게 골자다.

건조하게 바라보면 ‘행동주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을 뿐, 수익을 내야 하는 ‘펀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정해진 기한 내 수익을 내서 투자자에게 웃돈과 함께 자금을 돌려줘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는 거다. 거버넌스 개선을 주창할 시간도 어찌 보면 정해져 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KCGI의 경우 지분을 늘리며 오스템임플란트를 압박 수위를 높이다가 UCK·MBK 컨소시엄이 등장하자 공개매수에 나선다는 입장을 밝혔다. 공개매수에 응하지 않고 거버넌스 개선 움직임을 지속하겠다는 세간의 전망이 빗나간 순간이다. KGCI는 ‘투자자에 대한 신의성실 및 선관주의 의무를 다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수익률에 방점이 찍힌 행동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게 됐다.

얼라인파트너스도 에스엠에 ‘라이크 기획 관행’이나 ‘SM 3.0’ 등의 화두를 던지며 화제 몰이에 성공했다. 그러나 하이브의 등장이라는 예상치 못한 전개가 이뤄지면서 기존에 그리던 계획과는 사뭇 다른 흐름으로 가고 있다.

업계에서는 행동주의 펀드도 수익을 내려는 여러 행동 내지는 전략 중 하나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한 PEF 운용사 관계자는 “행동주의 펀드도 결국 수익률을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그래야만 차기 펀드로 꾸리고 수익도 구성원과 나눠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라며 “행동주의 펀드의 기업가치를 높이려는 행위가 여느 사모펀드와의 전략과는 다를 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말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