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낙농업계는 지난해 7월 원윳값 인상을 결정했지만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해 이를 1년간 유예했다. 유예 만기 시점이 도래하자 정부는 낙농업계와 원유 가격 인상을 두고 뒤늦게 부랴부랴 협상에 나섰다. 지난 17일 정부는 낙농업계와 대화의 장을 마련했지만 원유 가격을 결정하는 회의체인 낙농진흥회 이사회가 생산자 단체 참석을 거부하면서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낙농진흥회는 이번 원윳값 인상을 확정하고 이날까지 각 유업체에 변경한 원유 가격을 반영한 청구서인 ‘유대조견표’를 발송한다. 대금 정산을 위한 일종의 가격 기준표다. 이에 따라 서울우유협동조합과 매일유업, 남양유업 등 유업체는 낙농진흥회로부터 공급받은 이달 1~15일치 원유 가격에 이번 인상분을 더해 이달 20일 전후로 대금을 지급할 예정이다.
원유 가격 인상이 확정되면서 시중에서 판매하는 우유 가격 역시 줄줄이 오를 전망이다. 우유와 치즈 등 유제품 원료인 원윳값이 오르면 유업계가 낙농가에 지불해야 할 금액 부담이 늘면서다. 그렇다고 유업계가 원유 매입량을 줄일 수도 없다. 낙농진흥법에 따라 유업체는 연간 공급을 계약한 농가에서 생산한 원유를 의무적으로 전량 사줘야 한다.
업계 안팎에서는 이르면 다음달부터 우유 가격이 줄줄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지난 2013년과 2018년 두 차례 원윳값 인상이 있었을 때에도 약 한 달 사이 곧장 우유 소비자 판매가격 인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이번 원유 가격 인상에 따른 우유의 권장 소비자 가격은 흰 우유 1리터(ℓ) 제품 기준 평균 2600원에서 2800~2900원까지 200~300원가량 오를 것으로 보인다. 앞서 지난 2018년 원윳값이 ℓ당 4원 오르자 서울우유는 흰 우유 제품의 리터당 가격을 2480원에서 2570원으로 90원(3.6%) 올린 바 있다. 당시 매일유업과 남양유업은 가격(2550원)은 그대로 두는 대신 용량을 1ℓ에서 900㎖로 줄이면서 사실상 가격을 11% 정도 인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번에 원윳값이 큰 폭으로 인상되면서 우유 등 유제품 가격 상승 요인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며 “아직 우윳값 인상 여부와 시기·폭 등이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지만 유업체들이 상황을 주시하며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인상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낙농업계가 이번 원유 가격 인상 방침을 굽히지 않고 강행하는 등 갈등이 계속 빚어지자 후속 조치로 ‘원유 가격 생산비 연동제’를 개편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원유 가격 생산비 연동제는 낙농업체가 원유를 유업체에 판매할 때 생산비 증가 요인만 반영해 가격을 정하는 방식이다. 원유의 수요와 공급에 따른 시장 가격 변동은 반영하지 않는다. 시간이 갈수록 인건비와 사료비 등 생산비는 오르기 때문에 원유 가격도 꾸준히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최근 학령 인구가 줄어 급식 우유 소비가 줄면서 흰 우유 물량이 남아도는데도 우유 가격은 오르는 시장 왜곡이 발생하는 이유다.
정부의 원유 가격 생산비 연동제 개편 움직임은 최근 대부분의 식료품 가격이 오르면서 치솟는 장바구니 물가를 진정시키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원유 가격이 인상되면 우유뿐 아니라 치즈와 버터 등 유제품, 빵, 커피 등 가격도 줄줄이 오르면서 서민 밥상 물가가 더욱 무거워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