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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 전 차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내란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관련 질의에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이 같이 밝히며 윤 대통령 주장을 일축했다.
공개회의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 이에 따른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의 통화 내용 등에 대해 매우 자세히 설명했다.
홍 전 차장 진술에 따르면, 홍 전 차장은 계엄 당일인 지난해 12월 3일 저녁, 자신의 보좌관으로부터 ‘대통령이 전화를 하라고 지시하신다’는 보고를 받고, 곧바로 오후 8시 22분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은 “한두 시간 후에 중요하게 전달할 사항이 있는데 대기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 계엄과 관련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홍 전 차장도 윤 대통령이 언급한 ‘전달 사항’이 무엇인지 전혀 유추할 수 없었다.
홍 전 차장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국정원 청사로 복귀해 집무실에서 대기했고, 오후 10시 23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TV를 통해 확인했다.
◇홍장원, 비상계엄 선포 보고 ‘국정원도 모르는 비상상황?’ 당혹
비상계엄 선포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홍 전 차장은 굉장히 많이 당황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비상상황과 관련한 정보보고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 더해,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홍 전 차장은 곧바로 육군사관학교 후배인 여인형 당시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여 전 사령관은 홍 전 차장에게 “저희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오후 10시 53분 윤 대통령이 홍 전 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그는 “비상계엄 발표한 거 확인했지?”라고 물은 후 강한 어투로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해”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의 말에 목적어가 없었기에 홍 전 차장은 누구에 대한 지시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해당 지시를 내린 후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이번엔 일단 방첩사를 적극 지원해라. 방첩사에 자금이면 자금, 인원이면 인원을 무조건 지원해”라고 지시했고, 홍 전 차장은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이후에도 체포 대상이 정치인들과 전직 대법원장 등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다 잡아들이라’는 대상이, 국정원이 놓친 국내 장기암약 간첩단이고 이를 잡아들인 방첩사를 지원하라는 취지로 추정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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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 전 사령관은 “일단 국회는 경찰을 통해 봉쇄하고 있습니다. 체포조가 나가 있는데 소재 파악이 안 됩니다”라며 체포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이들에 대한 위치추적을 요구했다.
체포 대상자 명단엔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박찬대 원내대표·김민석 수석최고위원·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유튜버 김어준씨,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등 14명이었다. 여 전 사령관은 “1차·2차로 이들을 검거해 방첩사 내 시설에 구금해 조사할 예정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홍장원, 진실게임 벌이는 조태용 바라보며 ‘한숨’
홍 전 차장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여 전 사령관이 불러준 명단을 메모지에 적었다. 그는 속으로 ‘택도 없는 소리’, ‘미친 X이구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겉으론 특별한 반응 없이 “그래서 어떻게?”라고 여 전 사령관에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원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여 전 사령관은 “(위치추적 결과 확인해) 저한테 직접 전화주십시오”라고 말했고 홍 전 차장은 “알었어”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홍 전 차장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태용 국정원장은 오후 11시 30분 국정원장 집무실에서 ‘긴급 정무직 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회의에서 홍 전 차장이 윤 대통령 및 여 전 사령관과의 통화 내용을 조태용 원장에게 보고했는지를 두고는 조 원장과 홍 전 차장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홍 전 차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보고를 들은) 조 원장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면서 ‘내일 얘기합시다’라고 했다”며 “본인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 관여하지 않고 싶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몰랐다고 하면 내 이야기를 듣고 놀라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대화와 논의를 거부했다. 본인이 알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추정했다.
홍 전 차장은 22일 청문회에서도 엇갈린 진술에 대한 질문을 받자 같은 회의장에 앉아있던 조 원장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원장님께서 저한테 보고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청문회가) 엄중한 자리인 만큼 관련 내용을 밝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리에 안 계시면 모르겠지만 방금 대통령과 방첩사령관에게 전화통화한 내용인데, 정무직 회의 때 원장님이 바로 제 앞에 앉아있었는데 어떻게 보고를 안 드리겠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조 원장은 이와 관련한 질의를 받자, 한숨을 쉰 후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가 됐던 ‘싹 다 잡아들여 지시’가 됐든 그런 얘기를 홍 전 차장이 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 명예를 걸고 다시 한번 확인하겠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