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부인에도…"싹 다 잡아들여" 홍장원이 밝힌 '계엄 그날'

한광범 기자I 2025.01.22 15:32:08

홍장원 前국정원 차장, 국조특위 청문회서 尹지시 증언
목적어 없는 지시에 애초 '암약 간첩단 체포 지시' 추정
여인형이 통화로 체포명단 말할때 메모지에 직접 기재
'보고 부인' 조태용 향해 "회의서 어떻게 보고 안했겠나"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출석해 의원 질의를 듣고 있다. (사진=뉴스1)
[이데일리 한광범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2.3 비상계엄 사태 당시 정치인 체포 지시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가운데,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2일 “(윤 대통령이 전화 통화에서)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하라’고 말씀하셨다”고 재확인했다.

홍 전 차장은 이날 국회에서 열린 내란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들의 관련 질의에 “윤 대통령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적이 있다”며 이 같이 밝히며 윤 대통령 주장을 일축했다.

공개회의에 처음 모습을 드러낸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과의 통화 내용, 이에 따른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과의 통화 내용 등에 대해 매우 자세히 설명했다.

홍 전 차장 진술에 따르면, 홍 전 차장은 계엄 당일인 지난해 12월 3일 저녁, 자신의 보좌관으로부터 ‘대통령이 전화를 하라고 지시하신다’는 보고를 받고, 곧바로 오후 8시 22분 윤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은 “한두 시간 후에 중요하게 전달할 사항이 있는데 대기하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 계엄과 관련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홍 전 차장도 윤 대통령이 언급한 ‘전달 사항’이 무엇인지 전혀 유추할 수 없었다.

홍 전 차장은 전화를 끊고 곧바로 국정원 청사로 복귀해 집무실에서 대기했고, 오후 10시 23분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TV를 통해 확인했다.

◇홍장원, 비상계엄 선포 보고 ‘국정원도 모르는 비상상황?’ 당혹

비상계엄 선포를 전혀 예상치 못했던 홍 전 차장은 굉장히 많이 당황했다. 국가 최고 정보기관인 국정원이 비상상황과 관련한 정보보고를 전혀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 더해, 비상계엄 선포의 배경 자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주된 원인이었다.

홍 전 차장은 곧바로 육군사관학교 후배인 여인형 당시 국군방첩사령관에게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여 전 사령관은 홍 전 차장에게 “저희도 잘 모르는 일입니다.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한 후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오후 10시 53분 윤 대통령이 홍 전 차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었다. 윤 대통령의 목소리는 격앙돼 있었다. 그는 “비상계엄 발표한 거 확인했지?”라고 물은 후 강한 어투로 “이번에 다 잡아들여서 싹 다 정리해”라고 지시했다. 윤 대통령의 말에 목적어가 없었기에 홍 전 차장은 누구에 대한 지시인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윤 대통령은 해당 지시를 내린 후 잠시 아무 말이 없다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줄 테니 이번엔 일단 방첩사를 적극 지원해라. 방첩사에 자금이면 자금, 인원이면 인원을 무조건 지원해”라고 지시했고, 홍 전 차장은 “알겠습니다”라고 답변했다.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과의 전화통화 이후에도 체포 대상이 정치인들과 전직 대법원장 등이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다. 그는 윤 대통령의 ‘다 잡아들이라’는 대상이, 국정원이 놓친 국내 장기암약 간첩단이고 이를 잡아들인 방첩사를 지원하라는 취지로 추정하고 있었다.

홍장원(왼쪽) 전 국가정보원 1차장이 22일 국회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1차 청문회에 출석해 자리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태용 국가정보원장. (사진=뉴시스)
홍 전 차장은 윤 대통령과 통화를 마친 후인 오후 11시 6분 여인형 전 사령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홍 전 차장은 여 전 사령관에게 “어떻게 된거야”라고 물었지만 여 전 사령관은 별다른 답을 안 하면서 머뭇머뭇 댔다. 이에 홍 전 차장은 “V(대통령)께서 전화하셨어. 대통령께서 너희들을 도와주래”라고 밝힌 후 “뭘 도와주면 되냐”고 물었다.

여 전 사령관은 “일단 국회는 경찰을 통해 봉쇄하고 있습니다. 체포조가 나가 있는데 소재 파악이 안 됩니다”라며 체포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이들에 대한 위치추적을 요구했다.

체포 대상자 명단엔 우원식 국회의장,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박찬대 원내대표·김민석 수석최고위원·정청래 법제사법위원장,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유튜버 김어준씨, 김명수 전 대법원장, 권순일 전 대법관 등 14명이었다. 여 전 사령관은 “1차·2차로 이들을 검거해 방첩사 내 시설에 구금해 조사할 예정입니다”라고 설명했다.

◇홍장원, 진실게임 벌이는 조태용 바라보며 ‘한숨’

홍 전 차장은 전화통화를 하면서 여 전 사령관이 불러준 명단을 메모지에 적었다. 그는 속으로 ‘택도 없는 소리’, ‘미친 X이구나’,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겉으론 특별한 반응 없이 “그래서 어떻게?”라고 여 전 사령관에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을 원하느냐는 질문이었다. 여 전 사령관은 “(위치추적 결과 확인해) 저한테 직접 전화주십시오”라고 말했고 홍 전 차장은 “알었어”라고 말한 후 전화를 끊었다.

홍 전 차장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는 상황에서 조태용 국정원장은 오후 11시 30분 국정원장 집무실에서 ‘긴급 정무직 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회의에서 홍 전 차장이 윤 대통령 및 여 전 사령관과의 통화 내용을 조태용 원장에게 보고했는지를 두고는 조 원장과 홍 전 차장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다.

홍 전 차장은 당시 상황에 대해 언론 인터뷰에서 “(보고를 들은) 조 원장이 갑자기 고개를 휙 돌리면서 ‘내일 얘기합시다’라고 했다”며 “본인도 알고 있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 관여하지 않고 싶다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정말 몰랐다고 하면 내 이야기를 듣고 놀라야 하는데 그러지 않았다. 대화와 논의를 거부했다. 본인이 알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추정했다.

홍 전 차장은 22일 청문회에서도 엇갈린 진술에 대한 질문을 받자 같은 회의장에 앉아있던 조 원장을 바라보며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원장님께서 저한테 보고 받지 않았다고 말씀하셔서 제가 뭐라고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청문회가) 엄중한 자리인 만큼 관련 내용을 밝힌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리에 안 계시면 모르겠지만 방금 대통령과 방첩사령관에게 전화통화한 내용인데, 정무직 회의 때 원장님이 바로 제 앞에 앉아있었는데 어떻게 보고를 안 드리겠나”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조 원장은 이와 관련한 질의를 받자, 한숨을 쉰 후 “대통령의 ‘정치인 체포 지시’가 됐던 ‘싹 다 잡아들여 지시’가 됐든 그런 얘기를 홍 전 차장이 저에게 보고하지 않았다는 것을, 제 명예를 걸고 다시 한번 확인하겠다”고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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