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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안보' 앞세운 英정부, 북해 유전 수백곳 개발한다

박종화 기자I 2023.07.31 17:36:36

"탄소포집 하면 넷제로 달성 문제 없어"
환경단체·야당은 ''그린워싱·연막작전 반발''
내년 총선 앞두고 환경정책 쟁점으로

[이데일리 박종화 기자] 영국 정부가 에너지 안보를 위해 북해 유전과 가스전 수백곳에 개발 면허를 내주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탄소 포집 기술(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모아서 저장하는 기술)을 활용하면 넷제로(흡수·포집 등을 통해 순탄소 배출량이 0인 상태) 달성엔 문제가 없다는 게 영국 정부 주장이다. 환경단체 등은 화석연료 산업의 생명줄을 늘리는 조치일 뿐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영국 북해상의 석유 시추 시설.(사진=AFP)


31일(현지시간) BBC 등에 따르면 영국 정부는 북해 유전과 가스전 개발 면허를 수백개 발급할 것이라고 이날 밝혔다. 현재 북해 유전·가스전 중 개발 면허를 받은 곳은 33곳인데 올가을 신규 면허 발급에 들어가 최소 100곳 이상에서 석유·가스 개발을 추진한다는 게 영국 정부 계획이다.

영국 정부는 석유·가스 개발을 확대해야하는 핵심 명분으로 에너지 안보를 들었다. 리시 수낵 영국 총리는 이날 성명에서 “우리는 푸틴이 어떻게 에너지 시장을 조작하고 무기화해 전 세계 에너지 공급과 경제 성장을 저해했는지 목격했다”며 “어느 때보다 에너지 안보를 강화하고 영국 가정과 기업에 저렴하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영국 정부는 석유·가스 생산량이 늘더라도 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활용하면 2050년 넷제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엔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2050년에도 여전히 석유와 가스가 에너지 수요의 4의 1을 차지할 것이라며 개발 필요성을 강조했다. 스튜어트 하셀딘 에든버러대 교수는 BBC 라디오에 출연해 노르웨이 석유회사 에퀴노르는 매년 탄소 100만톤을 북해에 저장하고 있다며 정부 구상에 힘을 실어줬다.

이 같은 구상에 환경단체와 야당은 반발하고 있다. 더그 파 그린피스 수석과학자는 “정부의 탄소포집 계획은 화석연료의 지속적인 사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며 이를 ‘그린워싱’(친환경적이지 않은 것을 친환경적이라고 포장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니얼 존슨 스코틀랜트 노동당 대변인은 “이것은 연막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며 “석유를 더 많이 채굴하면서 기후 목표를 달성할 순 없다”고 했다.

내년 총선을 앞둔 영국에선 환경정책이 여야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번 유전·가스전 개발 계획도 개발 열망이 큰 스코틀랜드 표심을 겨냥한 것으로 해석된다. 집권 보수당은 이달 치러진 보궐선거에서도 노동당 소속 사디크 칸 런던시장이 추진하는 초저배출구역 제도(ULEZ·노후 공해차량에 요금을 부과하는 제도) 확대를 집중 공격하면서 3대 0 완패 예상을 뒤엎고 지역구 한 곳을 사수하는 데 성공했다. 전날 수낵 총리가 주택가 비거주민 차량 통행 정책에 대한 재검토를 지시한 것도 강경한 환경 정책에 대한 반감을 보수당 지지세로 끌어오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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