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진희 기자] 비만 치료제 시장은 단순한 체중 감량을 넘어 제형·투여 주기·작용기전 혁신 경쟁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주사제 중심에서 경구제와 장기 지속형 제형, 다중작용제로 진화하면서 치료 패러다임도 변화하는 모습이다. 글로벌 제약사와 국내 바이오기업들은 차세대 비만 신약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에 이데일리는 ‘포스트 GLP-1’ 시대를 맞아 비만·당뇨 치료의 변화와 K-바이오의 대응 전략을 집중 조명한다. 이번 취재는 한국과학기자협회의 지원을 받아 진행됐다. [편집자 주]
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1(GLP-1) 수용체 작용제를 둘러싼 글로벌 제약·바이오 시장에서 ‘제2의 전쟁’이 본격화됐다. 노보 노디스크의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티드)와 일라이 릴리의 ‘젭바운드’(성분명 티르제파타이드)가 양분해 온 초기 비만·당뇨 시장을 넘어, 글로벌 빅파마들이 막대한 자본력을 바탕으로 확장한 전신 대사 및 염증 질환 적응증에서도 속속 성과가 나오면서다.
이처럼 임상 3상 단계만 수천억원이 투입되는 글로벌 등록 임상 인프라를 무기로 빅파마들이 시장 진입 장벽을 높게 쌓아 올리는 가운데,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이 택해야 할 현실적인 생존 전략에 업계의 이목이 쏠린다. 시장 전문가들은 자본력의 한계가 명확한 국내 기업들이 정면 대결을 펼치기보다는, 기존 GLP-1 제제의 치명적인 부작용을 극복하는 병용 타깃을 발굴하거나 제형 변경 플랫폼 및 빅파마의 손길이 닿지 않은 틈새 적응증을 선점해야만 조 단위 기술이전(L/O)과 상업화 성과를 거둘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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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파마의 영토 확장… MASH·CKD·심부전 3상 쓸어 담으며 진입장벽 구축
핵심인 글로벌 비만 치료제 무게중심은 ‘누가 더 많이 빼는가’에서 ‘어떻게 건강하게 빼고 유지시키는가’로 이미 전환된 상태다. 기존 GLP-1 제제가 가진 3대 한계인 △근육 손실(제지방 감소) △구역·구토 등 위장관계(GI) 이상반응 △투약 중단 후 요요 현상 해결이 차세대 비만 치료제의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기 때문이다.
실제 위고비나 젭바운드 투약 시 전체 감량 체중의 20~40%가 근육 등 제지방 손실로 이어진다는 점은 고령 환자에게 치명적인 ‘근감소성 비만’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이에 글로벌 빅파마들은 마이오스타틴(근육 생성 억제 단백질) 차단 항체나 안드로겐 수용체 조절제(SARM) 병용 3상에 서둘러 착수했다. 리제네론은 세마글루티드와 마이오스타틴 억제제 ‘트레보그루맙’ 병용 임상에서 근육 손실률을 6.7%에서 3.3%로 절반 이상 줄이는 데이터를 확보하고 후기 임상 트랙을 밟고 있으며, 미국 베루(Veru) 역시 ‘에노보삼’ 병용 2b/3상을 통해 체지방 선택적 연소 및 골격근 보존 효능을 검증하고 있다.
소화기계 부작용 완화와 복약 순응도 개선 경쟁도 뜨겁다. 노보 노디스크는 GLP-1에 포만감 유도 호르몬인 아밀린 유사체를 결합한 ‘카그리세마’의 ‘레디파인’(REDEFINE) 3상으로 내약성 개선과 체중 정체기 돌파를 노린다. 릴리는 1일 1회 복용하는 경구용 저분자 화합물 ‘오르포글리프론’의 대규모 ‘어테인’(ATTAIN) 3상을 통해 주사제 거부감 해소와 투약 중단 후 반동(요요) 억제 효능을 동시에 입증하고 있다.
GLP-1의 체중 감량 기전을 전신 장기 보호 효과로 연결하며 파이프라인의 외연도 공격적으로 넓히고 있다. 단순 비만 치료제를 넘어 만성질환의 표준 1차 치료제로 자리매김하겠다는 포석이다.
가장 치열한 전선은 대사이상 관련 지방간염(MASH)이다. 노보 노디스크는 간 섬유화 2~3단계(F2~F3) 환자 약 1200명을 대상으로 진행 중인 글로벌 3상 ‘에센스’(ESSENCE) 프로그램을 통해 섬유화 악화 없는 MASH 해소와 섬유화 개선을 정조준하고 있다. 일라이 릴리 역시 티르제파타이드의 2상 성공을 발판 삼아 장기 간경변 진행 억제와 주요 임상적 사건을 검증하는 대규모 확증 3상에 돌입했다.
만성 콩팥병(CKD)과 심혈관 영역에서도 3상 데이터가 쏟아지고 있다. 노보 노디스크는 제2형 당뇨 동반 CKD 환자 35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플로우’(FLOW) 3상에서 신부전 진행 및 심혈관 사망 위험을 위약 대비 24% 감소시켜 임상을 조기 종료하고 적응증 승인 절차를 밟았다. 릴리 또한 광범위한 신장병 환자를 대상으로 한 ‘트레저-CKD’(TREASURE-CKD) 3상을 가동했다.
이밖에도 일라이 릴리가 ‘서마운트-OSA’(SURMOUNT-OSA) 3상을 통해 중등도 이상 폐쇄성 수면무호흡증(OSA) 환자의 무호흡-저호흡 지수(AHI)를 최대 60%가량 낮추며 사상 첫 약물 치료 지평을 열었다. 노보 노디스크는 박출률 보존 심부전(HFpEF)을 겨냥한 ‘스텝-HFpEF’(STEP-HFpEF) 및 무릎 골관절염 통증 완화를 타깃한 ‘스텝 9’(STEP 9) 등 대형 임상 3상을 잇달아 성공시키며 적응증 확장에 속도를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빅파마의 틈새를 파고들지 않고는 GLP-1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다. 가장 앞서나가던 디앤디파마텍(347850) 파이프라인의 개발 중단이 대표적인 예다. 앞서 디앤디파마텍은 자체 펩타이드 경구화 기술인 ‘오랄링크’(ORALINK) 플랫폼과 다중 작용제 기술을 앞세워 미국 멧세라와 경구용 비만 후보물질(DD02S·DD03 등)을 포함한 총 6종의 파이프라인에 대해 약 8억 달러(약 1조원)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멧세라의 새로운 주인이 된 글로벌 제약·바이오사 화이자는 지난 5월 'MET-224o' 개발을 중단했다. MET-224o은 디앤디파마텍의 오랄링크가 적용된 물질이다. 업계에서는 화이자가 비만치료제에서 상대적으로 후발 주자인 점을 감안해 기존 허가 제품과 차별화할 수 있는 제품의 개발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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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바이오텍, 장기지속 플랫폼·BBB 투과·장 점막 재생… ‘미개척 틈새 적응증’ 정조준
이처럼 경쟁이 심한 글로벌 GLP-1 시장에서 국내 기업들이 생존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카드는 여전히 편의성 혁신이 거론된다. 오리지널 블록버스터 약물의 특허 만료에 대비하고 복약 순응도를 높여야 하는 글로벌 빅파마의 이해관계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투약 주기를 획기적으로 늘리는 서방형 주사제 분야에서는 인벤티지랩(389470)이 구체적인 글로벌 임상 진입 성과를 내고 있다. 인벤티지랩은 미세유체학 기반 장기지속형 주사제 플랫폼 ‘IVL-드럭플루이딕’(IVL-DrugFluidic)을 적용해 기존 주 1회 맞는 세마글루티드를 ‘월 1회 투약’ 제형으로 바꾼 비만 치료제 ‘IVL3021’의 호주 임상 1상에 착수했다.
초기 약물 과다 방출을 차단하고 한 달간 일정한 혈중 농도를 유지하는 비임상 데이터를 확보했으며, 호주 1상에서 인체 약동학(PK) 데이터를 검증해 글로벌 기술이전을 본격화한다는 구상이다. 인벤티지랩은 유한양행(000100)과의 공동 개발에 이어 티르제파타이드 기반의 월 1회 지속형 후속 파이프라인 ‘IVL3024’ 개발까지 가속화하며 글로벌 수명주기 연장(LCM) 수요를 겨냥하고 있다.
체중 감량의 최대 약점인 근손실을 원천 방어하는 파이프라인으로는 한미약품(128940)이 가장 공격적인 임상 트랙을 달리고 있다. 한미약품은 최대 25% 이상의 고강도 감량을 목표로 하는 GLP-1/GIP/글루카곤 삼중작용제 ‘HM15275’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임상 승인을 획득해 개발을 가속화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근육 생성을 자극하고 지방을 태우는 ‘신개념 근육보존 비만 신약’ ‘HM17321’(Urocortin-2 유사체)의 FDA 임상 1상 IND 승인을 받고 환자 대상 투약을 전개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이를 통해 단순 감량을 넘어 제지방량을 보존하는 ‘차세대 질적 감량 병용요법’의 글로벌 임상 데이터를 구축하며 빅파마와의 파트너링 협상력을 극대화하고 있다.
플랫폼 기술 외에 글로벌 제약·바이오사가 아직 본격적으로 발을 들이지 않은 ‘미개척 적응증’을 선점하는 전략도 국내 바이오텍의 핵심 무기다. 뇌혈관장벽(BBB) 투과 기술을 결합한 중추신경계(CNS) 질환 치료나 차별화된 장기 대사 조절 타깃이 대표적이다.
디앤디파마텍(347850)은 뇌 속 미세아교세포의 만성 신경염증을 차단하도록 설계된 뇌 투과성 GLP-1 후보물질 ‘NLY01’을 개발해 파킨슨병 및 알츠하이머병 환자를 대상으로 글로벌 2상을 완료한 경험을 축적했다. 기존 비만 치료제들이 낮은 BBB 투과율로 신경계 질환 직접 치료에 한계를 보였던 점을 보완한 자산으로, 현재 다발성 경화증(MS) 등 희귀 신경계 염증 질환으로 적응증 확장을 추진하며 독자적인 기술이전을 타깃하고 있다.
펩트론(087010) 역시 자체 서방형 플랫폼 ‘스마트데포’(SmartDepot) 기술을 BBB 투과율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엑세나타이드에 접목한 ‘PT320’을 앞세워 파킨슨병 치료를 목표로 국내 임상 2상을 완료하고 데이터 분석을 진행해 왔다. 비만약 특유의 체중 감소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뇌 신경세포 사멸 억제에만 집중할 수 있는 방출 제어 프로파일이 장점이다.
독특한 호르몬 조합으로 환자 맞춤형 치료 영역을 뚫어내는 곳은 프로젠이다. 프로젠은 독자적인 융합 단백질 플랫폼 ‘NTIG’를 기반으로 GLP-1과 함께 장 기능 및 점막 재생을 촉진하는 GLP-2 수용체를 동시에 활성화하는 이중 작용제 ‘PG-102’를 개발하고 있다.
프로젠은 제2형 당뇨 환자 4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국내 임상 2a상에서 당화혈색소(HbA1c)를 최대 1.44% 감소시키는 동시에 격주 및 월 1회 투여 가능성을 확인했다. 특히 감량 체중의 87.5%가 체지방에서 빠져나가 제지방(근육) 손실이 제한적이라는 임상 데이터를 확보했다. 프로젠은 이 임상 성과를 발판 삼아 기술특례 상장을 추진하고, 장 점막 손상을 동반하는 희귀 소화기 질환 및 근육 보존형 대사질환으로 다국가 임상 확대와 글로벌 기술이전을 타진하고 있다.
한미약품은 인크레틴 연구 과정에서 도출한 지속형 글루카곤 유도체 ‘에페거글루카곤’(HM15136)을 인슐린 과다 분비로 뇌 손상을 겪는 소아 희귀질환인 ‘선천성 고인슐린혈증’ 치료제로 전환했다. FDA로부터 희귀의약품(ODD)과 소아희귀질환(RPDD) 지정을 연이어 획득하고 글로벌 2상 핵심 투약 단계를 완료하고, 신속 허가 트랙을 밟고 있다.
홍순재 바이오북 대표는 “자본력이 부족한 국내 기업이 조 단위 비용이 들어가는 글로벌 3상에 홀로 뛰어들어 빅파마와 정면승부를 벌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며 “결국 글로벌 선두주자들이 구축해 놓은 거대 시장의 빈틈, 즉 근손실을 막는 병용 물질이나 월 1회 주사·경구제와 같은 제형 혁신, 그리고 빅파마가 간과한 희귀 틈새 적응증을 선점해 조기에 기술이전(L/O)을 성사하는 것이 K-바이오가 취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검증된 생존 방정식”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국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 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GLP-1 시장은 2030년 1050억 달러(약 141조원)를 넘어, MASH와 심부전 등 만성질환 적응증 확대와 경구제 보급이 본격화되는 2035년에는 최대 1500억 달러(약 201조원)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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