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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 9월 27일 뉴욕에서 열린 유엔 총회에서 한 발언이다. 그는 단호한 어조로 “승리를 거둘 때까지 싸울 것”이라며 못박듯 말했다. 당시 미국이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정파인 헤즈볼라 양측에 3주 휴전안을 제안하는 등 국제 사회의 중재 노력이 있었으나 네타냐후 총리는 해당 발언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국제사회의 거듭된 압박, 인질 구출 실패에 따른 국내 일부 비판 여론에도 하마스의 주둔지인 가자지구와 레바논에서 대대적인 군사 작전을 이어가는 네타냐후 총리의 강경 노선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 “끝까지 간다”…네타냐후의 정치적 야망
약 1년 전인 2023년 10월 7일, 네타냐후 총리는 자신의 정치 인생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 이날 하마스가 이스라엘 남부 영토를 기습 공격해 1200여명을 살해하고 250여명을 납치했다. 유족을 포함한 이스라엘인들의 슬픔과 분노는 이를 막지 못했던 네타냐후 정권을 향했다. 당시 일부 여론조사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은 정적인 베니 간츠 국가통합당 대표보다 20%포인트 뒤처졌다.
약 12개월이 지난 현재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그때와 완전 딴판이다. 지난달 말 이스라엘 매체 채널12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 네타냐후(38%) 총리가 간츠(29%) 대표, 야권 지도자인 야이르 라피드(27%) 전 총리보다 총리직에 더 적합한 인물이란 평가가 나왔다. 그가 주도하는 여당 리쿠드당 역시 전체 120석인 크네세트(이스라엘 의회)에서 25석으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하는 정당이 될 것으로 전망됐다.
미 CNN 등 외신들은 그의 지지율 상승 요인으로 헤즈볼라에 대한 이스라엘의 대담한 공격을 꼽았다. 지난달 17~18일 레바논 전역에서 동시 폭발한 호출기와 무전기, 지난달 27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공습으로 인한 헤즈볼라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폭사 이후 그의 인기가 높아졌다는 것이다. 네타냐후 총리의 가자지구 전략을 비난하던 간츠 대표마저 최근 뉴욕타임스(NYT) 기고글에서 네타냐후 총리의 군사 작전에 지지를 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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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이제 문제는 중동을 재편하려고 하는 네타냐후의 시도가 얼마나 더 나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의 강력한 동맹국인 미국을 포함해 프랑스, 유엔 등과의 갈등도 불사하는 듯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이달 초 네타냐후 총리는 “가자지구 전쟁을 끝내기 위해 이스라엘에 무기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신경전을 벌이는가 하면, 유엔과는 레바논 지역에 파견된 유엔 평화유지군(UNIFIL) 부대를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공개적으론 이스라엘을 지지하고 있으나 군사적 움직임 등 대응 방식에 있어선 네타냐후 총리와 갈등을 빚고 있다는 얘기가 꾸준히 들려오고 있다.
미 CNN에 따르면 밥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WP) 부편집인이 15일(현지시간) 출간 예정인 신간 ‘전쟁’(War)에선 바이든 대통령이 네타냐후 총리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 들어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석에서 네타냐후 총리를 ‘빌어먹을 나쁜 X’, ‘자신의 정치적 생존에만 관심 있는 거짓말쟁이’라고 불렀다고 밥우드워드 부편집인은 책을 통해 전한다.
이 같은 상황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친이란 세력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이어갈 것이란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이스라엘 차기 의회 선거가 2026년 10월 예정돼 있고 지지 기반이 약한 그로서는 ‘외부의 적’을 자양분 삼아 정치적 생명력을 이어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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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비’라는 애칭을 가진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 역대 최장수 총리다. 1996년 47세로 역대 최연소 총리에 올라 1999년까지 재임했다. 당시 뛰어난 전략과 연설 실력으로 ‘마술사 비비(Bibi the magician)’로 불렸다. 이후 2009년부터 다시 총리를 맡아 2021년 퇴진하기까지 수차례 위기가 있었지만 이스라엘 극우파와 민족주의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승리를 거뒀다. 2021년 뇌물·사기 혐의 등으로 실각하면서 정계에서 물러나는 듯 했으나 다음해 조기 총선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화려한 복귀를 알렸다.
워싱턴 싱크탱크 중동연구소(MEI)의 님로드 고렌 선임연구원은 “(전쟁으로 인해)그는 권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됐다”면서 “정치적 위협이 된 여러 폭풍을 견뎌냈고 이제 여유를 찾았다”고 평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1949년 이스라엘 텔아비브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유대교 시오니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저명한 역사학자 벤지온 네타냐후다. 그는 14세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갔고,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건축학과 경영학을 공부했다. 이스라엘 특공대에서 6년간 군 복무를 했다.
1976년 팔레스타인 무장대원들에게 납치된 여객기를 구출한 ‘엔테베 작전’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당시 친형 요나탄이 이스라엘 특수부대원으로 이 작전에 참여해 숨졌다. 이 사건으로 요나탄은 ‘국가 영웅’이 되고, 형의 죽음은 그에게 정치적 자산이 됐다.
그는 MIT 졸업 후 보스턴 컨설팅 그룹(BCG)에서 근무했으며, 1982년에는 워싱턴의 주미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1984년부터 1988년까지 주 UN 대사를 지냈다. 1988년 하원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부터 리쿠드 당수로 선출됐다.
재임 기간 네타냐후 총리는 이스라엘의 안보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강력한 방위 정책을 펼치고, 경제적으로 이스라엘의 급성장을 이뤄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동시에 이란에 대한 강경한 입장으로 사회적 분열을 심화시켰다는 비판도 받는다. 2010년대 이후에는 여러 차례 부패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