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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전날(20일) 기준 100개 수련병원에 출근한 전공의는 659명으로 지난 17일(628명)보다 31명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20일은 전공의들이 집단이탈을 한 지 3개월께 접어드는 날이다. 이들 중 일부는 전문의 자격시험을 볼 수 없게 될 처지에 놓일 위험이 있었음에도, 31명만이 의료현장으로 돌아온 것이다.
전공의 대거 미복귀 사태를 두고 정부와 의사단체 간 입장이 극명하게 갈렸다. 정부는 전공의들이 복귀하겠단 의사를 표명하고 있지만, 의사단체를 비롯한 동료들의 공격대상이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고 봤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돌아오거나 정부와의 대화를 희망하는 전공의들이 있는데 이러한 의견을 표출하는 즉시 공격의 대상이 되는 점이 안타깝다”며 “전공의마다 개인의 생각이 다를 텐데 다양한 의견이 자유롭게 표출될 수 있도록 용기를 내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그동안 지속된 정부의 겁박으로 인해 전공의들의 복귀 의지가 꺾였다고 했다. 이날 성혜영 의협 대변인은 이날 의협회관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박 차관은 전공의들이 대화를 전면 거부했다고 힐난하며 ‘아무 것도 안 하고 드러눕는 나름의 투쟁 전략이라고 생각하는 전공의들은 처분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며 의정 간 대화 물꼬를 트기보단 아예 틀어 막아버리는 박 차관을 처벌해야 한다”고 강도 높게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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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현장에선 지난 2월 집단이탈 때부터 우려해왔던 의료 인력 수급 대란이 현실화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내년 초 전문의 시험을 앞둔 전국의 3·4년 차 레지던트는 총 2910명으로 이들 중 필수의료 분야 레지던트는 1385명(48%)이다. 분야별로 살펴보면 △내과 656명 △외과 129명 △산부인과 115명 △소아청소년과 124명 △응급의학과 157명 △신경외과 95명 △신경과 86명 △심장혈관흉부외과 23명이다.
전문의 자격시험을 보기 위해서는 수련 공백이 3개월을 넘겨서는 안 된다. 전문의 수련 및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정과 시행규칙에는 전공의 수련에 한 달 이상 공백이 발생하면 추가 수련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때 추가로 수련해야 하는 기간이 3개월을 초과할 시 전문의 자격 취득 시기가 1년 미뤄진다.
전문의 수급이 미뤄지면 정부가 예고한 ‘전문의 중심 상급종합병원’ 정책에도 차질이 생긴다. 정부는 유화책을 통해 복귀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는 ‘부득이한 사유’로 휴가와 휴직을 한 경우 관련 서류를 수련병원에 제출해 소명하면 수련 기간을 최대 1개월 인정해 주겠단 방침이다. 이 경우 집단이탈 전공의의 복귀 시한은 6월 20일로 늘어난다. 면허정지 등 행정처분 유예 가능성도 내비친 상태다.
전공의들이 끝내 복귀하지 않으면서 의료 현장은 발등의 불이 떨어졌다. 당장 전공의 이탈로 과로에 시달리고 있는 의대교수들은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서울의과대학-서울대병원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서울의대 전체 교수 5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64.5%가 피로감에 따라 진료 일정 조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더 큰 문제는 필수의료를 담당할 전공의들의 이탈 분위기가 확산 우려가 보이고 있단 점이다. 정진행 서울의대 교수는 “전공의들은 이전부터 살인적인 스케줄에 시달려 불만이 많았는데, 이번 의대증원으로 터져버렸다. 전공의들의 기본 인권은 생각지도 않은 정책 추진으로 마음이 돌아선 상황”이라며 “의대생들도 필수의료를 위해 전공의를 선택하기보단 차라리 페이닥터를 해야겠단 이야기도 나와 전공의 공백 분위기는 당분간 해소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목소리를 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의대 교수는 “정부가 필수의료와 함께 지역의료를 살리겠다며 정책을 추진했지만, 이번 전공의 대거 미복귀로 피해를 보는 게 공중보건의사(공보의)”라며 “당장 내년 지역사회 공보의의 씨가 말라버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의료인력을 수급하겠단 정책이 반대로 의료인력을 없애고 있는 셈”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