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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정부가 클럽·헌팅포차 등 고위험시설 입장 시 QR코드를 통한 전자명부 의무작성 정책을 시행했을 당시 서울 광진구의 한 ‘헌팅포차’는 손님이 없어 한가한 모습이었다. 입장을 위해 기다리는 줄 또한 없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당시 전국에서 집계된 신규 확진자 수는 45명 수준이었다.
그러나 약 9개월이 흐른 해당 헌팅포차에서는 5일 기준 누적 56명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이곳을 이용한 이용객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고, 테이블을 돌아다니거나 춤을 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곳에 들어가기 위해 상점 앞 긴 줄이 늘어섰던 것으로도 파악됐다.
시간을 불과 4개월 전인 10월 중순으로만 돌려 봐도 코로나19에 대한 경각심이 무뎌졌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된다. 당시 신규 확진자 수가 세자릿수에 육박하면서 방역당국은 같은 달 31일 핼러윈 파티를 앞두고 “코로나19 비상”이라며 경계했다. 세자릿수에 화들짝 놀란 서울 지역 주요 클럽들은 자진 휴업을 결정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우리 일상 속에 스며들기 시작한 지난 1년간 우리 국민들은 총 3번의 큰 파도를 지나왔다. 지난해 2월 18일 신천지 대구교회 관련 31번째 확진자 발견 이후 대구·경북서 발생한 ‘1차 대유행’이 시작이었다. 1차 대유행은 지난해 2월 29일 하루 확진자 고점인 909명을 찍고 꺾였다.
2차 대유행은 8·15 대규모 광화문 집회 이후 서울 성북구 사랑제일교회 교인을 중심으로 퍼졌다. 수도권 중심으로 번진 집단감염은 지난해 8월 27일 441명 정점을 찍고 계단식으로 내려왔다.
이후 지난해 12월 초부터 400~600명대를 오가던 신규 확진자 수는 교회·학원·군부대 등 집단에서 집단감염사태가 발생하며 12월 12일 950명으로 치솟았고, 12월 25일, 1241명으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이를 ‘둔감화 현상’에 의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둔감화 현상은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 경향성이 점점 감소하는 현상을 뜻한다.
곽 교수는 “처음에 방역수칙을 잘 지켰던 시민들이 지금은 정부의 방역지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모임을 하는 것은 코로나가 너무 일상화돼서 공포나 두려움이 무뎌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국민 중 약 절반은 코로나19 감염이 운에 달렸다고 생각하고 있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연구팀이 지난해 11월 18세 이상 성인 10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46.1%가 ‘내가 감염되느냐 마냐는 어느 정도 운에 달렸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해 5월 똑같은 방식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운에 달렸다’고 답한 비율이 각각 37.5%로 집계됐다. 이는 방역수칙을 준수하는 등의 노력과 의지와 무관하게 감염을 운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처음에 인상적이었던 숫자나 사물이 기준점이 되어 그 후의 판단에 왜곡 혹은 편파적인 영향이 생기는 ‘앵커링 효과’ 때문에 경각심이 무너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이동귀 연세대 심리학과 교수는 “신규 확진자수가 최근 1000명이었던 상황과 비교하면 300~400명은 적어 보인다”며 “비교 대상을 어떤 것으로 하느냐에 따라 반응이 둔감해질 수도 민감해질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교수는 “불과 몇 개월 전에 1000명대에서 최근 300~400명대로 내려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안심하는 상황도 이 같은 현상에 기인한다”고 덧붙였다.
곽 교수도 “처음 전무후무한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국내로 들어왔을 바이러스에 대한 사람들의 민감도가 컸지만, 1년 넘게 코로나19가 이어지고 있고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며 “경각심이 무뎌진 상황에서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하면 지금보다 더 큰 피해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