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중앙은행(ECB) 총재를 지냈던 마리오 드라기 전 이탈리아 총리는 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파이낸셜타임스(FT) 주최 콘퍼런스에서 “내년 첫 2분기 동안에 그런 사실(침체에 따른 징후)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라며 이같이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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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기 전 총리는 다만 경기침체가 “깊거나 불안정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지금처럼 낮은 실업률을 기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침체를 겪긴 하겠지만 심각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불황의 시작점이 비교적 안정적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달 유로존의 실업률은 사상 최저 수준인 6.4%까지 하락해 고용시장이 견조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드라기 전 총리의 발언은 ECB의 가파른 긴축으로 유로존 경제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을 보탠 것이다. ECB는 지난해 7월부터 올해 9월까지 10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으며, 지난달 처음으로 동결했다. 고금리 환경에서 유로존의 올해 3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전분기대비 0.1% 뒷걸음질쳤으며, 많은 전문가들이 4분기에도 위축을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FT는 드라기 전 총리의 전망은 국제통화기금(IMF)이나 ECB 등의 최신 전망과 비교하면 낙관적이라고 평가했다. ECB는 유로존 경제성장률이 올 4분기 0.1%를 기록한 뒤 내년 1분기 0.3%, 2분기 0.4% 등 점진적으로 반등할 것으로 봤다. IMF도 이번주 유럽 전체 성장률이 올해 1.3%에서 내년 1.5%로 완만하게 오를 것으로 전망했다.
드라기 전 총리는 이날 유럽 경제의 취약 요인으로 낮은 생산성, 높은 에너지 비용, 숙련된 노동력 부족을 꼽았다. 그는 “유럽과 같은 고령화 사회를 지원할 수 있는 경제를 갖추려면 생산성이 훨씬 높아야 한다”며 “하지만 유럽 경제는 지난 20년 동안 미국뿐 아니라 일본, 한국, 그리고 중국과 관련해 경쟁력을 잃어왔다. 많은 기술 분야에서 우리는 존재감을 잃었고 발자취도 잃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방을 미국에, 무역을 중국에, 에너지를 러시아에 광범위하게 의존했던 유럽연합(EU)의 과거 모델은 끝났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이 기반으로 삼았던 지정학적, 경제적 모델은 사라졌다”며 “우리는 이것에 대해 매우 걱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드라기 전 총리는 EU가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하기 위해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촉구하는 한편, 시급한 과제로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에너지 문제를 지목했다. 그는 “우리가 (경제적으로) 힘을 합쳐 대응해야 하는 부문은 에너지다”라며 “우리는 세계 다른 지역에서 사용하는 비용의 두 배, 세 배에 달하는 에너지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