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년 전 대한제국 마지막 궁중잔치 무대로…"창작보다 재현에 초점"

이윤정 기자I 2022.07.12 15:37:33

국립국악원 '임인진연'
90분간 펼쳐지는 궁중무용과 음악의 향연
"의궤 등 당대 기록 근거해 잔치 재현"
8월 12~14일 예악당에서

[이데일리 이윤정 기자] 1902년 임인년, 대한제국 황실에서 잔치가 열렸다. 고종의 즉위 40주년이자 나이 60을 바라보는 망륙(51세)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대한제국의 자주권을 박탈당한 ‘을사늑약’을 3년 앞둔 시점이었지만, 자주 국가 ‘대한제국’을 대내외적으로 과시하고자 궁중 잔치를 치렀다.

120년 전 대한제국의 마지막 궁중잔치가 공연으로 재탄생한다. 국립국악원이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선보이는 ‘임인진연’을 통해서다. 임인진연은 고종 즉위 40주년이던 1902년 12월 7일 덕수궁 관명전에서 거행된 궁중 잔치로, 임인년에 거행된 진연(進宴·궁중에서 베푸는 잔치)이라는 뜻이다.

국립국악원 김영운(왼쪽) 원장과 박동우 연출이 12일 서울 중구 덕수궁 정관헌에서 궁중예술 ‘임인진연’ 제작발표회를 하고 있다(사진=뉴시스).
국립국악원은 올해 임인년을 맞이해 자주 국가를 염원했던 1902년 대한제국의 ‘임인진연’을 중심으로 찬란한 궁중예술의 가치와 의미를 소개하기 위해 이번 공연을 마련했다. 12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덕수궁 정관헌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김영운 국립국악원장은 “1902년은 열강들의 다툼이 치열했던 시기였다”며 “왕가의 위엄을 일으켜세우고 대한제국의 문화를 대내외에 알리기 위한 연회였다”고 설명했다.

임인진연은 500년 조선왕조와 대한제국 시기를 포함한 마지막 궁중잔치로 기록돼 있다. 급변하는 개화기에 국제적으로는 황실의 위엄을 세우고 내부적으로는 군신의 엄격한 위계질서를 보이는 국가적 의례를 선보이고자 했다. 고종은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상황임을 들어 세자와 문무백관의 진연 개최 요구를 네 차례 거절 했지만, 다섯 벗째에 허락하면서 비용과 인원을 최소화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진연은 크게 남성 신하들과 함께 공식적인 행사를 올린 ‘외진연’과 황태자와 황태자비, 군부인, 좌·우명부, 종친 등과 함께한 ‘내진연’으로 나뉘어 행해졌다. 이번 공연에서는 예술적인 측면이 강한 ‘내진연’을 무대 공연으로 되살린다. 1902년의 내진연을 재현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공연을 위해 당시 진연의 상세 내역이 기록된 ‘진연의궤’와 ‘임인진연도병(그림 병풍)’ 등 당대의 기록 유산에 근거해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하고자 했다. 주렴(붉은 대나무발)과 사방으로 둘러쳐진 황색 휘장막 등을 활용해 황제의 공간과 무용, 음악의 공간을 구분해 실제 진연의 사실감과 생생함을 높일 예정이다.

당시 임인진연은 하루종일 치러졌지만 이번에는 90분으로 축소해 재구성했다. 전통 방식으로 꾸며진 공간에서 선보이는 국립국악원 정악단과 무용단의 공연 구성은 황제에게 일곱 차례 술잔을 올린 예법에 맞춰 선보인다. 궁중무용으로는 봉래의, 헌선도, 몽금척, 가인전목단, 향령무, 선유락을, 궁중음악으로는 보허자, 낙양춘, 해령, 본령, 수제천, 헌천수 등 황제의 장수와 나라의 태평성대를 기원한 궁중 예술을 선보인다. 관객들이 음악과 무용에 집중할 수 있도록 긴 의례와 음식을 올리는 절차 등은 과감히 생략했다.

특히 관객들이 황제의 시선으로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객석을 황제의 어좌로 설정했다. 이번 공연에선 무대 미술계를 대표하는 박동우 디자이너가 연출을 맡았다. 박 연출은 “창작요소를 가미할 수도 있겠지만 가급적 기록을 잘 살펴서 재현하는데 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시기는 고종의 커피에 독약을 탄 사건도 있었을만큼 국가 뿐 아니라 고종의 목숨도 위험한 시기였다”며 “나라가 망하기 직전에 연회를 즐겼느냐는 지나치게 비판적인 시선은 거두고 궁중예술의 멋을 깊이 있게 감상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국립국악원 ‘임인진연’의 한 장면(사진=국립국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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