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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이 지난 2013~2014년 불법적으로 필리핀에 반입돼 방치돼 있던 캐나다산(産) 쓰레기를 캐나다로 되돌려보내라고 지시했다. 또 캐나다가 반입을 거부할 경우 캐나다 영해에 버리고 오라고 했다. 수차례 외교적으로 항의했음에도 캐나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게 필리핀 측 설명이다.
결국 캐나다는 두 손 들고 항복했다. 외교 분쟁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이 보이자 “한 달 안에 회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필리핀 대통령 대변인실은 22일(현지시간) “두테르테 대통령이 캐나다가 쓰레기를 받지 않을 경우 영해 또는 해안선으로부터 12해리 떨어진 바다에 버리고 오라고 명령했다”면서 “쓰레기 선적 및 운임 등 모든 제반 비용은 필리핀이 부담할 것”이라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는 그간 민간 쓰레기 처리업체들이 가정 쓰레기가 아닌 재활용 가능의 플라스틱 부스러기라고 거짓 신고했다면서 캐나다 정부에 다시 가져가도록 지속 요구했다. 하지만 “캐나다가 지난 15일까지 쓰레기를 가져가기로 약속했음에도 이를 지키지 않았다”고 대변인실은 전했다.
앞서 두테르테 대통령은 지난달 양국 관리들이 참석한 자리에서 “필리핀은 다른 나라로부터 쓰레기 취급을 당해서는 안 되는 독립 주권 국가”라고 강조하며 “캐나다는 당장 쓰레기를 회수해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캐나다에 ‘전쟁 선전 포고’를 할 태세가 돼 있다는 돌발 발언을 하는 등 단단히 화가 난 모습을 보였다.
필리핀이 캐나다로 반송하려는 쓰레기는 지난 2013∼2014년 밀반입된 컨테이너 103개 중 폐기저귀 및 폐플라스틱 등이 담긴 컨테이너 69개다. 나머지 34개는 이미 처리됐거나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두테르테 대통령의 예상 외 ‘강공’에 캐나다 정부는 “다음달 말까지 쓰레기를 회수하겠다”고 공식 입장을 내놨다. 캐서린 맥케나 캐나다 환경장관은 이날 쓰레기 회수를 위해 민간 선박회사인 볼로레 로지스틱스와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6월 말까지 캐나다에 쓰레기회수를 완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한편 필리핀에 이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더이상 선진국들의 쓰레기를 받지 않겠다”고 속속 선언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전날 “말레이아는 세계의 쓰레기장이 되지 않을 것이다. 쓰레기를 양산한 국가들이 직접 책임져야 한다”면서 “이미 컨테이너 5개 분량의 밀반입 오염 플라스틱 쓰레기를 원 소유인 스페인에 돌려보냈다”고 밝혔다.
이는 세계 최대 쓰레기 수입국인 중국이 지난해부터 쓰레기 수입 규제를 강화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중국은 1990년대 이후 막대한 양의 지구촌 쓰레기를 사들였다. 중국은 2017년 기준 폐플라시틱을 730만톤, 37억달러어치를 수입했다. 이는 전 세계 수입량의 약 56%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그동안 경제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의 환경 오염을 용인해 왔다. 하지만 환경 오염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는 상황이 됐고 지난 2013년부터 수입 쓰레기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중국에 쓰레기의 78%를 수출해 온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은 동남아 국가들에 쓰레기를 수출하기 시작했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그러나 동남아 국가들도 환경 문제를 의식해 잇따라 쓰레기 수입 중단을 선언,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