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RA·반도체법 따른 투자 프로젝트, 40%가 지연 또는 중단

방성훈 기자I 2024.08.12 17:25:37

공표된 2200억달러 투자 계획 중 840억달러 규모
최소 2개월에서 수년 뒤로 미뤄지거나 무기한 중단
LG에솔·TSMC 투자 보류 대표 사례로 꼽혀
"시장 악화·수요 둔화·美대선 불확실성 등이 원인"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야심차게 추진한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및 반도체법(CHIPS Act)에 따라 공표된 주요 제조업 투자 가운데 약 40%가 지연 또는 중단됐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AFP)


바이든 대통령은 2022년 물가 상승 억제, 탈탄소, 디지털화, 반도체 공급망 개발 촉진 등의 내용을 담은 IRA와 반도체법에 서명했다. 미 정부는 이들 법을 근거로 4000억달러 이상의 세액 공제, 대출·보조금 지원 등을 제공키로 약속하고, 친환경·반도체 기업들로부터 대규모 투자를 이끌어냈다. 기업들은 법안 시행 첫 해에만 2200억달러(약 301조 5540억원) 이상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FT가 프로젝트 참여 기업, 주(州)정부 및 관계자를 상대로 100차례 이상 인터뷰를 진행하는 등 프로젝트 추진 과정을 자체 조사한 결과, 1억달러 이상 프로젝트 가운데 총 840억달러(115조 1388억원)의 지원이 2개월에서 수년 동안 미뤄지거나 무기한 중단됐다. 2200억달러의 37.3%에 해당하는 규모다.

시장 상황 악화, 수요 감소, 미국 대선에 따른 정책 불확실성 등을 이유로 기업들이 투자 계획을 변경한 것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IRA와 반도체법 모두 특정 목표까지 제품을 생산해야만 자금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조건을 설정해뒀다는 점, 중국의 과잉생산, 전기자동차 수요 감소 등 거시경제적 경영 환경 악화 등도 프로젝트가 지연·중단된 이유로 지목됐다. 물가와 인건비가 상승해 기업들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많은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데도, 정부 지원을 뒤늦게 받아야 한다는 점이 투자를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투자가 보류된 주요 대형 프로젝트로는 LG에너지솔루션(373220)이 애리조나에 짓기로 한 23억달러 규모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공장, 앨버말의 사우스캐롤라이나 리튬 가공 공장(13억달러), 에넬의 오클라호마 태양광 패널 공장(10억달러) 등이 예시됐다.

대만 TSMC가 400억달러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애리조나 반도체 제1공장 가동을 2024년 말에서 2025년으로, 제2공장 가동은 2026년에서 2028년으로 각각 연기했다고 FT는 전했다. 이에 따라 공급업체인 창청그룹의 3억달러 규모 공장 건설이 2년 연기됐고, KPCT 어드밴스드 케미컬스도 2억달러 규모 공장 건설을 보류했다.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 맥시온, 헬리엔, 마이어 버거 등은 중국의 과잉생산으로 글로벌 태양광 패널 가격이 폭락하자 미 공장 가동을 연기했으며, 한국 자동차 부품 제조업체 삼기(122350)는 미 전기차 수요 감소로 앨러배마 공장 라인 확장을 1~2년 미루기로 했다.

노르웨이 수전해 설비·충전소 전문 생산업체인 넬 하이드로젠은 IRA의 세액 공제 규정이 불명확하다는 이유로 4억달러 규모의 미시간 공장 프로젝트를 중단했고, 배터리 부품 제조업체인 아노비온은 IRA 전기차 규정이 불명확하다며 8억달러 규모 공장 건설을 1년 이상 연기했다.

태양광 패널 제조업체인 VSK 에너지는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2억 5000만달러 규모 콜로라도주 투자 계획을 폐기했다. 트럼프 정부의 잠재 위협 가능성을 고려해 친(親)공화당 성향의 주에 공장 부지를 새로 선정하겠다는 방침이다. VSK 에너지는 이와 별도로 태양광 패널 부품 공장에 12억 5000만달러를 투자하려던 계획도 연기했다.

IRA 및 반도체법은 미 기업들이 지난 수십년 동안 해외로 이전시킨 제조업 생산기지를 다시 미국으로 끌어들여 일자리 창출 및 경제 성장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로 시행됐다. 하지만 FT는 “투자 프로젝트의 40%가 지연 또는 중단되면서 목표 달성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며 “오는 11월 미 대선에서 바이든 정부의 제조업 르네상스 성과를 앞세워 블루칼라 유권자들의 지지를 확보하려는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노력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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