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량위기, 에너지보다 더 심각…“기근 무기화되고 있어”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올해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은 그야말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성토장을 방불케 했다. 러시아가 에너지에 이어 식량과 기근을 의도적으로 무기화하고 있다는 비난이 연일 쏟아졌다.

우크라이나 밀 농장. (사진=AFP)

25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올해 다보스포럼에선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발생한 다양한 부작용 중에서도 식량안보 위기가 가장 뜨거운 논쟁거리로 떠올랐다. 베인앤컴퍼니의 캐런 해리스 매크로 트렌드 그룹 이사는 “세계 많은 사람들이 과거엔 대화 주제가 아니었던 식량, 안정, 주거지 등을 논의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의 침공 이전까지만 해도 매달 450만t의 곡물을 수출했다. 전 세계 밀의 12%, 옥수수의 15%, 해바라기유의 절반 가량을 공급할 수 있는 물량이다. 이들은 대부분이 흑해를 통해 아프리카와 중동 등 저소득 국가에 수출된다. 하지만 러시아가 흑해를 봉쇄했고, 우크라이나 항구들에는 2000만t의 곡물이 수출되지 못하고 쌓여 있다.

이 때문에 세계 식량 가격이 사상 최고치로 치솟았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3월 식품물가지수는 159.3포인트로 전월보다 12.5% 상승했다. 1990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다. 식량 가격 급등에 일부 국가는 식량 보호주의를 강화하는 모습이다. 세계 2위 밀 수출국인 인도는 지난 13일 폭염에 따른 수확량 타격을 이유로 밀 수출을 금지했다.

식량안보 위기를 유발한 주범으로 푸틴 대통령과 러시아가 지목됐다. 다보스에서도 이들에 대한 비판이 이어졌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은 전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의 곡물 창고를 약탈·폭격하고 흑해에서 밀을 실은 우크라이나 선박을 봉쇄하고 있다. 세계 밀 가격이 치솟았고, 취약 국가들을 더욱 취약하게 만들었다”며 “이는 기근과 곡물을 이용해 권력을 휘두르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유엔세계식량계획(WFP)의 데이비드 비슬리 의장도 지난 23일 “러시아가 오데사 등 우크라이나의 주요 곡물 수출항을 봉쇄한 것은 전 세계 식량안보에 대한 전쟁 선언”이라고 맹비난했다. 비슬리 의장에 따르면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전 세계 인구 중 3억 2500만명이 현재 기아 위험에 직면했고, 43개국에서 약 4300만명이 이미 기아 상태에 돌입했다. 그는 “4억명을 먹이기에 충분한 식량을 생산하던 국가가 없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은가”라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인도적 위기”라고 지적했다.

세계 최대 밀 수입국이자 우크라이나 곡물에 크게 의존하는 이집트는 시급한 외교적 해결책을 촉구했다. 아직까진 식량 재고가 충분하지만, 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식량난을 피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유럽에선 곡물을 실은 우크라이나 선박을 호위하기 위한 전함을 흑해로 보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식량난이 심화할 경우 아프리카와 중동에서 유럽으로 대규모 난민들이 유입될 것으로 보여서다. 실제 영국은 일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들과 러시아의 해상 봉쇄선을 뚫고 오데사항에서 보스포로스 해협까지 ‘보호 통로’를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은 우크라이나 식량 공급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2024년까지 계속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