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북한과의 무기거래나 군사기술 이전은 북한의 핵 개발 및 탄도미사일 발사와 마찬가지로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위반이다. 따라서 북러 간 무기거래가 현실화될 경우 러시아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앞장서 안보리 결의를 위반했다는 국제사회의 비난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전망이다.
◇보스토치니 기지, ‘우주 대국’ 러시아 상징
정상회담을 위해 푸틴 대통령은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열린 동방경제포럼(EEF) 행사 일정을 마친 뒤 약 1000㎞를 이동해 이곳에 왔다. 김 위원장 역시 지난 10일 북한에서부터 타고 온 전용열차로 우주기지 인근 기차역에 내린 뒤 회담 장소까지 자동차로 이동했다. 이 같은 동선은 북한과 러시아 간 군사적 밀월 관계를 과시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북한이 우크라이나 전쟁에 필요한 포탄 등 재래식 무기를 제공하는 대신, 러시아는 정찰위성과 고체연료 기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핵추진잠수함 등 첨단 군사기술을 제공하겠다는 무기거래 의지를 대놓고 보여주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이 정상회담 이후 수호이 전투기 생산 공장을 방문한 것 역시 같은 의도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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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보여주기 아닌 진짜 위성 보유 의지
한미일을 겨냥한 핵 위협 능력 강화를 위해 ICBM 등 발사체 개발에 공을 들이고 있는 북한 입장에서 보스토치니 우주기지는 매력적인 장소일 수밖에 없다. 특히 북한은 지난 5월과 8월 연이어 군사 정찰위성을 쏘아올렸지만 실패했다. 다음 달 3차 시도에 나서겠다고 공언한 상황이어서 위성 발사 등 우주기술 확보가 절실하다.
특히 앞서 우리 군 당국은 1차 발사 당시 서해에 추락한 북한 위성체 ‘만리경 1호’의 주요 부분을 인양해 미국과 공동조사한 결과 매우 조악한 수준으로 군사적 효용성이 전혀 없다고 평가한 바 있다. 북한은 보여주기식이 아닌 진짜 ‘위성’을 갖기 위해 러시아와 적극 협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푸틴 대통령은 이날 ‘러시아가 북한의 인공위성 제작을 도울 것인가’라는 언론 질의에 “우리는 이 때문에 이곳에 왔다”면서 “북한 지도자는 로켓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고, 그들은 우주를 개발하려 하고 있다”고 답했다. 러시아가 보유한 위성 관련 기술을 북한에 이전할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로켓은 사실상 장거리 미사일과 구조가 똑같아 러시아의 로켓 기술 이전은 북한의 ICBM 기술이 완성에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러시아는 김 위원장에게 최근 개발한 로켓 ‘안가라’ 조립·시험동과 ‘소유스-2’ 우주로켓 발사 시설, 현재 건설 중인 안가라 발사 단지 등을 공개했다. 김 위원장은 러시아 로켓 기술에 관심을 보였고,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질문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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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회담 이후 김 위원장이 방문할 것으로 알려진 하바롭스크 지역은 그의 부친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실제 고향이자 조부인 김일성 주석이 ‘88여단’으로 활동한 지역이다.
하바롭스크주 내 콤소몰스크나아무레에는 ‘유리 가가린’ 전투기 공장이 있다. 여기에서 수호이(Su)-27, Su-30, Su-33 등 옛 소련제 전투기와 2000년대에 개발된 4.5세대 다목적 전투기 Su-35, 2020년 실전 배치된 첨단 5세대 다목적 전투기 Su-57 등을 생산한다. 민간 항공기도 제조한다.
게다가 잠수함 등 군함 건조를 위한 ‘아무르’ 조선소도 있다. 앞서 김정일도 2001년과 2002년 콤소몰스크나아무레를 찾아 전투기 공장과 조선소 등을 시찰했다. 김 위원장의 이번 방러에 김광혁 공군사령관과 김명식 해군사령관이 동행한 것도 전투기 생산 공장 시찰 등 일정과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최근 ‘전술핵공격잠수함’을 전격 공개하는 등 해군력 증강에 몰두하고 있다. 특히 미국 폭격기와 정찰기 등의 한반도 전개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한편, 북한은 이날 오전 11시 43분께부터 11시 53분께까지 순안 일대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탄도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김 위원장이 국외로 떠나 있을 때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이례적이다. 북한군이 중단 없는 지휘통제로 대비태세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는 해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