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수익 기자] 대주주측이 42%, 기타주주가 28% 지분을 가진 회사가 있다. 나머지 30%는 상법상 의결권이 인정되지 않는 자사주다. 따라서 이 회사 대주주와 기타주주간 실질적인 의결권 비율은 60% 대 40%다. 이 상황에서 기업분할을 한다면?
◇인적분할 마법은 어떻게 이뤄지나
기업 하나를 더 만들어 회사 재산(자본과 부채)을 나누는 것이 기업분할이다. 방법은 크게 물적(物的)·인적(人的)분할이 있다. 분할 후 신설회사 주식이 누구에게 가느냐에 따라 다르다. 기존회사(존속회사)가 신설회사 지분을 전부 가져가면 물적분할, 기존회사 주주 비율대로 신설회사 주식을 나눠가지면 인적분할이다. 물적·인적분할은 이론적으로 분할 전후 지배력 차이가 없다.
물적분할은 기존회사가 신설회사 지분 100%를 보유한다. 이 때문에 기존회사 지분 28%를 가진 주주는 신설회사 지분을 하나도 가지지 않지만 기존회사를 통해 28%를 간접 보유하는 셈이어서 지배력은 변함없다. 인적분할때는 기존회사 지분 28%를 보유한 주주가 분할 후 기존회사와 신설회사 지분을 각각 28%씩 직접 보유한다. 역시 지배력 변동은 없다. 그런데 인적분할 전 회사가 자사주를 가지고 있다면 묘하게 달라진다.
대주주 42%, 기타주주 28%, 자사주 30%인 회사가 인적분할을 하면 기존회사(존속회사)는 자사주 30%를 그대로 승계하는 동시에 자사주 비율만큼 신설회사(사업회사)의 분할신주를 배정받는다. 기존회사가 승계하는 30% 자사주는 예전처럼 의결권이 없지만 이를 통해 배정받은 분할신주는 의결권이 생긴다.
이렇게 되면 분할 전후 신설회사 지분구성은 42%(대주주):30%(대주주측 지배를 받는 자사주 분할신주):28%(기타주주)로 바뀐다. 대주주와 기타주주 사이에 의결권이 살아난 자사주 분할신주가 파고들어 실질적인 의결권 비율은 72%:28%로 바뀐다. 분할 전(60%:40%)과 대폭 달라진다. 이 과정에서 대주주 측은 별다른 돈을 들이지 않고 지배권을 강화하는 효과를 거둔다. 이것이 인적분할시 자사주 의결권이 부활하는 ‘마법’이다.
마법의 효력은 분할 전 자사주가 많을 수록 강력하다. 같은 조건에서 분할전 자사주가 50%이면 분할후 신설회사 의결권비율은 80%:20%까지 벌어진다. 기업분할 방식을 장황하게 설명한 이유는 인적분할때 자사주 활용을 금지하거나 제한하는 상법 개정안(박용진 의원 대표발의)이 단언컨대 20대 국회 경제법안 중 가장 뜨거운 감자이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인적분할의 열쇠 쥔 상법 개정안
최근 지주회사 전환을 염두에 두고 인적분할을 발표한 현대중공업(009540), 오리온(001800), 매일유업(005990), 크라운제과(005740)에는 모두 막강 마법을 발휘할 자사주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는 삼성전자(005930)다. 물론 인적분할을 검토하는 상장기업이 비단 삼성전자만은 아니지만 이름값이나 자사주 규모(약 30조원) 모든 면에서 단연 압도적이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인적분할 방식의 지주회사 전환 시 자사주에 분할신주 배정을 금지하는 법안이다.
이 법이 통과되더라도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을 아예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 시가총액 약 270조원의 삼성전자를 1:3 비율로 지주회사·자회사로 인적분할한다면 지주회사가 자회사 지분 20%(공정거래법상 의무기준)을 확보하는데 약 35조원이 든다. 분할 후 가치 상승을 고려하면 이 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여기서 삼성전자가 현재 보유중인 30조원대 자사주(12.8%)가 이러한 부담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는 역할을 맡는다. 분할 후 지주회사는 자사주를 그대로 보유하는 동시에 이 자사주에 신주를 배정받아 12.8%의 자회사 지분을 확보한다. 나머지 부족한 지분만 공개매수로 사들이면 된다. 지주회사 주식을 새로 발행해 자회사 지분을 가진 주주들로부터 현물출자 받는 방식이어서 자금 부담이 없다. 그러나 상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이 방법이 불가능해진다. 삼성전자가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선 지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이 법은 삼성전자 인적분할 열쇠를 쥐고 있는 법이다.
◇바른정당이 제출할 법안 세부내용 따라 삼성전자 운명 달려
이 법은 1월 임시국회 폐회를 이틀 앞둔 지난달 1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1소위원회에서 논의됐으나 결론을 내지 못했다. 공은 2월 임시국회로 넘어갔고, ‘캐스팅보트’는 바른정당이 쥐고 있는 모양새다. 바른정당 소속 오신환 의원은 지난달 18일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에서 “대주주의 부당한 지배력 강화를 방지하려는 (박용진 의원안의) 입법 취지는 타당하다. 그러나 신주발행 자체를 금지할 경우에 부작용 있기 때문에 신주배정 허용하되 의결권을 제한하는 방법도 고려해야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또 지난달 25일 여야4당 원내수석부대표들의 2월 임시국회 입법현안 회동에서 바른정당 측은 신주 배정은 허용하되 ‘의결권 제한’ 정도는 검토해볼 수 있다는 전향적인 입장을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인적분할때 자사주 신주배정은 허용하면서 의결권만 제한하는 법안(박용진 의원 대표발의)도 이미 국회 정무위원회에 상정돼 있다. 이 법안은 공정거래법이어서 대기업(상호출자제한집단)만 해당한다. 다만 인적분할을 마친 기업에도 적용하는 부칙이 달려있다.
만약 바른정당이 자신들의 이름을 걸고 새로운 법안을 발의한다면 내용이 중요하다. 상법 개정안으로 발의한다면 기존의 박용진 의원이 낸 상법개정안(신주배정 자체를 금지)과 병합심사 수순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규제강도가 상대적으로 약한 바른정당안에 무게중심이 쏠릴 가능성이 높다.
바른정당이 제출할 법안은 본문 내용 못지않게 부칙도 중요하다. 박용진 의원이 낸 공정거래법 개정안과 동일한 부칙(이미 인적분할한 기업에도 적용)을 바른정당이 제시한다면, 삼성전자는 법 통과 전에 서둘러 인적분할을 단행해도 자사주에 배정된 분할신주는 의결권을 제한받는다. 이 경우에도 주식보유 자체는 인정하기 때문에 삼성전자가 지주회사 전환요건(자회사 지분율 20%)을 충족하는 것은 큰 어려움이 없지만 실질 지배력을 의미하는 의결권은 크게 줄어든다. 부족한 의결권을 만회하기 위해선 자회사 지분을 현금을 주고 더 사거나 의결권 없는 분할신주를 우호적 투자자에 매각하는 방법 중 선택해야 한다. 현금으로 사는 것은 돈이 많이 들고 자사주에 배정된 분할신주를 되파는 것은 조(兆)단위의 세금이 뒤따른다. 주주 동의가 필요하고 어느 쪽이든 삼성으로선 고민스러울 대목이다.
만약 바른정당이 신주배정은 허용하고 의결권만 금지하는 법안을 내면서 ‘법 시행 이후 최초 분할한 기업부터 적용한다’는 부칙을 제시할 경우 삼성전자에게 인적분할을 결정할 시간을 제공하는 셈이 된다. 이 경우 삼성전자 인적분할은 이 법안 논의가 무르익기 전에 이뤄질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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