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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핵 문제, 5년 만에 타협점 찾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소식통을 인용해 지난해 말부터 미국과 이란이 핵협상을 이어오고 있다고 1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백악관 관료들이 협상을 위해 중동 국가인 오만을 세 차례 이상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WSJ는 브렛 맥거크 미 국가안보회의(NSC) 중동·북아프리카 조정관과 알리 바게리 카니 이란 핵협상 대표 등이 오만을 방문하면 오만 관료들이 중간에서 메시지를 전달하는 ‘간접회담’ 방식으로 협상이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스라엘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미국과 이란 간 협상 타결이 ‘임박했다’고 전했다.
이번 협상의 핵심은 이란이 순도 60% 이상으로 우라늄을 고농축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이다. 현재 이란은 우라늄을 60%까지 고농축하고 있는데 짧으면 몇 달 안에 핵무기용으로 쓸 수 있는 90%까지 순도를 올릴 능력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와 함께 이란에 구금된 미국인 수감자 석방과 러시아에 대한 미사일 판매 중단도 요구하고 있다. 이란은 미국 요구를 받아들이는 대신 한국에 묶여 있는 석유 수출 대금 70억달러(약 8조9800억원) 등 해외자금 동결 조치를 해제해달라는 조건을 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과 미국은 2015년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을 통해 이란이 핵 활동을 자제하는 대신 미국은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합의했으나 2018년 미국 트럼프 행정부는 이를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2021년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JCPOA 재협상이 시작됐지만 이란의 반정부시위 탄압 문제 등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최근 두 나라 안팎에선 협상 가능성을 시사하는 움직임과 발언이 잇달아 나왔다. 최근 이라크 정부는 자국에 묶인 이란 자금 27억6000만달러(약 3조6000억원)를 동결 해제했는데 토니 블링컨 미 국무 장관과 협의를 거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지난 11일엔 이란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자국 원자력 산업 기반을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서방이나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핵 합의를 하는 건 문제가 없다”고 발언했다.
◇정치·외교적 부담에 ‘합의 공식화’는 안 할 듯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료는 “이란의 특정 행동(핵개발)은 미국을 매우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며 “우리는 위기를 방지하기 위해 이란이 갈등을 확대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걸 분명히 했다”고 WSJ에 협상 배경을 설명했다. 유엔 주재 이란대표부는 “현재 상황에서 새로운 분위기를 조성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NYT에 밝혔다.
다만 아직 협상을 낙관하긴 이르다. 내년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란과의 설익은 협상은 공화당이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하는 빌미를 줄 수 있다. 이란과 앙숙 관계이자 중동 내 친미 핵심국가인 이스라엘의 반발도 미국에 고민거리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스라엘은 이란이 어떤 거래를 하든 구속되지 않을 것이며 계속 스스로를 방어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이 독자적으로 이란을 공격할 수 있다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미국 역시 이런 부담을 피하기 위해 이번 협상 결과를 공식 문서로 남기지 않고 ‘비공식 합의’ 정도로 규정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