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형욱 기자] 올해도 일본에선 노동계가 고용주에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춘투(春鬪) 시즌 준비가 한창이다. 통상 3월 무렵 시작하는 만큼 준비는 이미 시작됐다. 그런데 올해는 이 과정에서 특이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계의 주장에 맞서 재계를 대변해야 할 일본판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게이단렌(經團連)이 지난 17일 오히려 노동자의 권익을 높여달라고 정부에 당부했다. 임금만 올려선 기대했던 내수 경기가 살아나지 않았으니 정부도 나서서 근로자의 사회보험 부담을 낮춰 실소득을 높여 달라는 것이다.
경영계가 노동계의 편을 드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현 일본의 상황을 보면 사실 아주 이상한 일도 아니다. 일본 정부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부터 2050년까지 인구 1억명을 만들겠다며 노동 여건 개선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출산 끝에 장기 불황을 경험한 일본이 경제 체질의 근본을 뜯어고치기 시작한 것이다. 비정규직 임금을 정규직의 80% 수준까지 끌어올리고, 야근을 없애는 등 근로시간을 줄여 출산·소비를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이른바 ’2차 아베노믹스‘다.
일본 최대 광고회사인 덴쓰(電通)는 이 같은 정부 시책에 맞춰 신입 직원의 과로사에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연말 대국민 사과와 함께 사임하기도 했다. 올 3월 전후 펼쳐질 춘투 역시 벌써 올해로 4년째 정부가 밀어주고 끌어주는 ’관제(官製)춘투‘다. 특히 올해는 노(勞)·사(社)·정(政)이 합심한 모양새다.
인구 절벽에 따른 장기 불황은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일본 이상으로 인구 감소가 극심하다. 2002년부터 전세계 최하위권이다. 2015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국내 가임여성 합계출산율은 1.24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다. 이대로면 2750년에 한국 자체가 사라지리란 비관적 전망도 나온다.
우리 정부도 노력했다고 항변한다. 2006년부터 10년 동안 저출산·고령화 대책에 나랏돈 150조원 이상을 썼다. 그러나 수치로나 체감으로나 나아진 게 없다. 어떻게 좀 해보겠다며 내놓은 박근혜식 ‘노동개혁’ 법안은 노·사·정의 ‘네 탓 공방’ 속 표류하고 있다. 1~2월 열리는 임시국회에서 재논의한다지만 탄핵 정국 속 추진력은 더욱 약해졌다. 정부와 기업은 대기업 중심의 노조가 일자리 만들기보단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한다며 비판한다. 노동계와 야권은 개혁이 아닌 개악이라며 강한 불신을 내비치고 있다. 소녀상에 대한 강경 대응으로 갈등 관계인 일본이지만 이것만은 부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