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민 대한항균요법학회장은 13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열린 ‘2018 항생제 내성 예방주간 전문가 포럼’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항생제 내성은 세균이 항생제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면서 점차 항생제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것을 의미한다. 내성이 만연해지면 일반적인 수술 및 치료에서도 감염이 발생했을 때 치명적일 수 있다.
영국 국가항생제 내성 대책위원회(AMR)는 항생제 내성 확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오는 2050년 연간 1000만명에 이르는 감염병 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연간 희생자 수와 맞먹는 숫자다. 이에 세계보건기구(WHO)는 항생제 내성 극복에 대한 인식 확대를 위해 지난 2015년부터 매년 11월 셋째 주를 ‘세계 항생제 내성 인식주간’으로 지정해 국가별 캠페인을 확대하고 있다.
김 학회장은 “항생제 내성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약 30년 후에는 매일 세계 대전을 치루듯 항생제 위협에 시달려야 한다”며 “예방하기 위해서는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는 것이 급선무”라고 당부했다.
우리나라의 항생제 사용은 하루 1000명당 34.8명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21.1명보다 훨씬 높은 수치다. OECD 국가 중에서는 터키, 그리스에 이어 세 번째로 항생제 사용이 많다. 국내 총 항생제 처방량은 2002년 하루 1000명당 15.9명에서 2013년 24.2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이에 정부도 지난 2016년부터 항생제 내성을 관리하기 위해 ‘국가 항생제 내성관리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2020년까지 2015년 대비 항생제 사용량을 20% 줄이고, 감기를 포함한 급성상기도감염 항생제 처방률을 절반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대한항균요법학회는 국가 항생제 내성관리 대책 세부 과제에 대한 점검과 민·관·학이 함께 정책제안을 하기 위해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항생제 내성 포럼을 열고 있다.
이날 포럼에서 배현주 한양대병원 감염내과 교수(항생제관리분과 위원장)는 “항생제의 적정 사용을 유도하는 ‘항생제 스튜어드십’ 프로그램의 개선 및 확대가 절실하다”며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실천이 필요하기 때문에 보건복지부 산하에 ‘항생제 전담관리부서’를 설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 교수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전문가를 중심으로 ‘항생제 내성 임상 표준센터’를 조직해 연간 약 27억원을 들여 항생제 사용 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영국 보건국은 적정 항생제 사용 교육·처방 프로그램을 구축하고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2014년부터 2015년 사이 각각 의원급 4.3%, 병원급 5.8% 항생제 사용을 줄였다. 반면 우리나라는 항생제 내성을 줄이기 위한 감염병·약제·미생물 등 전문가가 국가적으로 부족해 효율적인 프로그램 운영도 어려운 실정이다.
또한 정석훈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원헬스분과 위원장)는 “항생제 내성 해결을 위해서는 사람·동물·환경 전체를 대상으로 항생제 사용량을 줄이고 내성균 확산을 방지하는 원헬스(One-health) 개념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축의 성장 촉진을 위한 항생제 사료첨가제 사용량 줄이기 정책을 통해 국내 사료첨가제 항생제 사용량이 2007년 1500톤에서 2016년 1000톤 이하로 감소한 것이 원헬스 접근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다.
정부는 보건복지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농림축산식품부, 농림축산검역본부, 환경부, 식품의약품안전처 등이 참여하는 다부처 공동기획사업으로 내년부터 원헬스 항생제 내성균 사업을 본격 시행할 계획이다. 다만 원헬스 항생제 내성균 사업은 예산, 운영체계 등에 대한 범부처 거버넌스 구축이 필요한데, 현재 보건복지부만이 1개과(질병관리본부 약제내성과)를 배치하고 있고 다른 부처에서는 연구직 1~2명만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 대대적인 보강과 개편이 필요하다고 정 교수는 당부했다.
김성민 회장은 “비단 의료계뿐만 아니라 농·축·수산·식품·환경 분야를 포괄해 항생제 사용을 줄이고 내성균 확산을 방지할 수 있도록 상호 협력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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