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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용인을 대표하는 항일무장독립운동가 오석 김혁 장군의 서거 80주기 추모제가 23일 오전 10시30분 국립서울현충원 애국지사묘역 132에서 개최됐다. 이 추모제는 김혁 장군유족회가 주관하고 서울남부보훈지청, 용인시, 용인시의회, 용인문화원, 경기국학원, 용인국학원, 선비문화학회가 후원했다.
이날 추모제는 전통제례, 추모식, 연찬회 순서로 진행됐다. 내빈 추모사에 이어 대한단무도협회 분당단무도 손채명 관장이 볼텍스검 공연으로 추모했다. 용인시 국학기공협회 고범석 회장의 김혁 장군 어록 낭송은 함께 한 이들의 가슴을 적시고 눈시울을 붉혔다. 고범석 회장은 김혁 장군의 천광운영(天光雲影)을 향한 위국진충(爲國盡忠), 조국독립을 향한 그의 마음을 절실하게 전달했다.
올해 3.1운동 100주년 기념 시민문화축전에서 김구 선생의 어록을 낭송했던 용인국학원 김인옥 원장은 “90일 전 시민문화축전과는 사뭇 다르게 김혁 장군의 독립을 향한 불굴의 정신을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었다”고 전했다.
추모시와 증손자인 김성태씨의 백년편지 낭독에 이어 경기도 전역에서 모인 대한체육회 산하 경기도 국학기공협회(정길영 회장) 회원 33여명이 추모공연인 나라사랑기공을 서울국립현충원 현충관에서 숭엄하게 펼쳤다.
김혁 장군은 용인시 기흥읍 농서리에서 태어나 대한제국 육군 정위로 근무하다 일제에 의해 강제로 군대가 해산되면서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19년 용인에서 3·1운동을 주도하다가 만주로 망명 무장 독립투쟁을 주도했다. 1920년 흥업단(興業團) 부단장으로, 대한의용군 부단장으로 각각 활동했다. 1921년에는 대한독립군 군사부장을 역임했고 1923년 임시정부 국민대표회의에서 국민위원으로 선출됐다.
김혁 장군은 1929년 6월 5일 신의주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위반으로 7년형을 구형받고 6월13일 최종 판결에서 10년형을 받았다. 그는 처음 평양감옥에 수감되고 이후 서대문형무소로 이감돼 옥고를 치르다 병환이 위독해 가출옥했으나 9년여 동안의 모진 옥고의 여독을 견디지 못하고 용인 본가에서 1939년 4월23일 순국했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