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17일 나스닥종합지수는 1.4%, S&P500지수는 1% 하락했고, 타이베이와 도쿄 증시도 각각 6.5%, 4% 떨어졌다. 다만 이를 전부 키미 K3 때문이라고 해석해서는 안 된다.
당시 시장에는 AI 기업의 고평가 부담, 넷플릭스 등 주요 기업의 실적 우려, 이란 전쟁에 따른 유가 상승이 함께 작용했다. 키미 K3는 폭락의 단일 원인이라기보다 “미국이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만든 AI를 중국이 더 적은 비용으로 추격할 수 있다”는 시장의 불안을 자극한 촉매였다.
이 사건이 한국에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미국 편에 설 것인가, 중국 기술을 활용할 것인가의 양자택일로 접근하면 답을 찾을 수 없다. 한국에 필요한 판단은 진영 선택이 아니라 ‘의존의 구조’를 설계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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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개방형 AI는 가격과 활용성 측면에서 매력적이다. 모델의 가중치가 공개되면 국내 데이터센터에 설치해 비용을 낮추고, 한국어와 산업 현장에 맞게 수정할 수 있다. 특정 기업이 이용 조건을 바꾸거나 서비스를 중단해도 자체 운영을 계속할 가능성도 커진다.
그러나 싸다고 해서 국가 핵심 시스템에 곧바로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방·정보·원전·금융·의료·정부 행정에서는 모델의 성능뿐 아니라 학습 데이터의 출처, 악성코드 삽입 가능성, 원격 업데이트 권한, 사용 정보의 외부 전송 여부까지 검증해야 한다. 가중치가 공개됐다는 의미의 ‘오픈웨이트’도 학습 데이터와 학습 과정, 안전장치까지 모두 공개됐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한국은 AI 사용 영역을 최소한 두 층으로 나눠야 한다. 국가안보와 핵심 기반시설에는 한미동맹과 신뢰할 수 있는 공급망을 우선 적용해야 한다. 반면 일반 행정, 번역, 고객 상담, 콘텐츠 제작, 제조 현장의 반복 업무에는 미국·한국·중국을 포함한 여러 모델을 검증해 성능과 비용에 따라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 상무부 산업안보국도 중국산 첨단 반도체 사용과 미국산 AI 반도체가 중국 모델의 학습·추론에 이용될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의 통제는 단순한 통상정책을 넘어 동맹국의 공급망과 기업 활동에 영향을 미치는 안보정책이 됐다.
한국이 이 현실을 무시하고 중국 중심의 AI 생태계로 기울면 반도체 장비, 첨단 GPU와 핵심 소프트웨어에 대한 접근이 제약될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의 요구를 아무 조건 없이 받아들이면 우리의 기업 활동과 기술 선택권이 미국 정책의 변화에 종속될 수 있다. 미국과의 기술동맹은 필요하지만, 적용 범위와 비용은 한국의 국익을 기준으로 협상해야 한다.
GPU를 확보했다고 AI 주권을 얻은 것은 아니다
한국은 2025년 경주 APEC을 계기로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계열 GPU 26만 장 이상을 정부와 삼성전자·SK그룹·현대차그룹·네이버 등에 공급받기로 했다. 정부 몫은 5만 장 이상이며, 전체 도입이 이뤄지면 한국의 AI 연산 능력은 크게 확대된다.
그러나 GPU의 숫자가 곧 주권의 크기는 아니다. 엔비디아 칩을 구입해 국내 데이터센터에 설치하더라도 소프트웨어가 CUDA 생태계에 묶이고, 유지·보수와 업그레이드가 외국 기업의 결정에 좌우된다면 그것은 완전한 독립이 아니다.
스탠퍼드대 인간중심AI연구소도 소버린 AI 상품들이 외국 기업에 대한 의존을 제거하기보다 그 형태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한다. 연구진이 제시한 현실적인 해법은 모든 기술을 자국에서 만들겠다는 ‘완전 자립’이 아니라, 다양한 선택지를 확보하면서 최첨단 기술에 접근할 수 있도록 상호의존을 조율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GPU 구매량만 발표할 것이 아니라 다음을 함께 관리해야 한다.
첫째, 특정 칩과 소프트웨어에 묶이는 정도를 나타내는 ‘기술 종속도’를 공개해야 한다. 모델과 데이터를 다른 클라우드나 다른 반도체로 옮기는 데 걸리는 시간과 비용을 정부 사업의 평가 기준에 포함할 필요가 있다.
둘째, 대규모 계약에는 가격 인상 제한, 서비스 중단 시 데이터와 모델의 이전권, 공급 차질에 대한 보상, 핵심 소프트웨어의 장기 지원 의무를 넣어야 한다. 계약을 해지한 뒤에도 시스템을 계속 운영할 수 없다면 그것은 구매가 아니라 임대에 가깝다.
셋째, 공공 AI는 처음부터 복수 모델을 교체해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미국의 폐쇄형 모델, 국내 독자 모델, 검증된 개방형 모델을 업무에 따라 바꿔 끼울 수 있어야 협상력이 생긴다.
한국은 모델의 크기보다 산업의 깊이로 승부해야
한국이 미국과 중국의 모든 범용 모델을 정면으로 따라잡겠다는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스탠퍼드 AI 인덱스도 최첨단 모델 생산이 미국과 중국에 집중돼 있다고 분석한다. 반면 개방형 생태계의 확산으로 다른 국가들이 참여할 공간은 넓어지고 있다.
한국의 진짜 자산은 범용 챗봇만이 아니다. HBM을 포함한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로봇, 통신, 의료처럼 세계적 경쟁력을 가진 산업과 그 현장에서 축적되는 데이터가 있다. 미국이나 중국의 모델을 그대로 가져다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국내 산업 데이터를 활용해 제조 불량을 줄이고 신약 후보를 찾으며 자율공장을 운영하는 ‘산업 특화 AI’를 만들어야 한다.
이때 핵심은 데이터 주권이다. 국내 기업의 설계도와 생산 기록을 외국 모델 기업에 넘겨 학습시키는 방식은 장기적으로 한국의 제조 노하우를 해외 AI 기업의 자산으로 바꾸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 데이터는 국내에 두고 모델만 들어오게 하거나, 데이터 원본을 공유하지 않고도 공동 학습할 수 있는 연합학습과 보안 기술을 확대해야 한다.
한국의 답은 ‘안보동맹·기술다변화·산업특화’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세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국가안보와 첨단 반도체 공급망은 미국과 강하게 연결한다. 상업용 AI 시장에서는 한국·미국·중국의 모델을 성능과 비용에 따라 선택할 수 있도록 공급처를 다변화한다. 국가 투자는 세계 최대의 범용 모델을 흉내 내는 경쟁보다 한국이 데이터를 가진 제조·의료·국방·콘텐츠 분야의 특화 AI에 집중한다.
중국 모델을 무조건 배제하는 것도, 가격이 싸다는 이유로 국가 핵심 영역까지 개방하는 것도 현명하지 않다. 미국의 기술동맹을 거부하는 것도 위험하지만, 동맹을 기술 종속과 동일시해서도 안 된다.
AI 시대의 주권은 모든 것을 혼자 만드는 능력이 아니다. 필요할 때 공급자를 바꾸고, 데이터를 지키며, 계약 조건을 협상하고, 핵심 시스템을 스스로 계속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다.
한국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인 ‘샌드위치’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와 제조 기반을 가진 연결점이다. 다만 연결점이 협상력을 가지려면 어느 한쪽이 끊어져도 시스템이 멈추지 않도록 출구를 준비해야 한다. 결국 주권이란 외국 기술을 쓰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외국 기술을 사용할 조건과 중단할 시점을 우리가 결정할 수 있는 상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