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중개지원대출’(금중대) 활용 등 대차대조표 정책 확장과 ‘포워드 가이던스’(정책방향 사전 예고) 강화 등 이 총재가 주도적으로 드라이브를 걸었던 정책 사안들에 대해 지지하는 의견을 내면서다. 해당 사안들은 금통위 내부에서도 이견이 강했던 이슈들이라 더욱 주목된다.
서 위원은 26일 서울 중구 한은 통합별관 컨퍼런스홀에서 ‘팬데믹 위기는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통화정책 경험과 과제’라는 주제로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다음달 20일 임기 만료를 앞두고 금통위원으로서 소회를 밝히겠다는 취지다.
◇ 금중대 등 대차대조표 확장 강화해야
서 위원은 앞으로의 통화정책 과제로 ‘대차대조표 확장’(양적 완화) 정책을 제시했다. 서 위원은 “전통적으로 신흥시장국에선 선진국과 달리 기준금리가 제로 하한에 도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차대조표 정책 활용이 높지 않았으나 이번 위기에서 한은은 대차대조표 자산과 부채 구성을 변화시켜 시장조성자, 최종대부자, 선별적 신용지원과 같은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했다.
한은은 팬데믹 위기 때 공개시장조작 수단 중 하나인 환매조건부채권(RP)을 활용, 매입 규모 및 대상 기관을 확대했고 은행 자금조정대출 금리를 인하하는 등 대출 제도 개편을 통해 ‘시장조성자’ 역할을 강화했고 ‘최종대부자’로서 한은법 80조를 동원해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 설립으로 사상 처음으로 영리기업에 직접 대출을 실시했다. 또 금융중개지원대출을 확장해 ‘선별적 신용지원’ 역할도 했다.
서 위원은 “한은의 대차대조표 정책에 대해 도덕적 해이를 조장한다거나 준재정활동의 영역이라는 비판이 있지만 재정이 담당할 정책금융적 기능을 줄이고 무차별적 금리 정책의 부작용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활용할 경우 긍정적 효과가 크다”고 언급했다. 이어 “올 2월 이후 금중대 한도유보분이 은행 중소기업 대출 취급실적에 대해 2% 저리로 1년간 시행될 예정인데 이는 고금리 부작용을 보완하는 효과가 있다”고 덧붙였다.
이는 이창용 한은 총재가 2월 초 ‘2024 경제학 공동학술대회’ 만찬사에서 밝힌 내용과 일맥상통한다. 이 총재는 이 자리에서 “제로금리 상황에서 금중대가 중앙은행의 정책 도구 중 하나가 될 수 있는지 근본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진국처럼 양적완화(QE)가 어려운 상황에서 금중대가 중요한 정책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금통위 내부에선 금중대에 대해 일부 부정적인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조윤제 위원은 중소기업에 대한 금중대 정책에 명시적으로 반대했다. 조 위원은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여건 악화는 물가안정 도모를 위한 긴축적 통화정책 수행과정에서 불가피하게 감내해야 하는 측면이 있다”며 “금융시스템 전반으로의 리스크 확대 가능성이 극히 제한된 지금의 상황에서 통화정책 기조와 다른 신호를 줄 수 있는 금중대 확대 운용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이는 통화정책의 특성을 어떻게 볼 것인지와 연결된다. 금리는 무차별적으로 불특정 다수에게 영향을 주는 성격이 있는데 이를 보완할 필요성이 있느냐, 없느냐의 관점에서 추가적으로 논쟁이 벌어질 수 있다. 예컨대 고금리 정책은 생산성이 떨어진 부문을 퇴출하는 효과가 있는데 이런 부분을 정책적으로 보완하다 보면 구조조정 기회가 박탈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포워드 가이던스 ‘시계 확장’에도 찬성
이날 서 위원은 이창용식(式) 포워드 가이던스도 지지했다. 서 위원은 “한은이 2022년 10월부터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내 정책금리 전망분포를 제시함으로써 정량적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했다”며 “국제결제은행(BIS) 방법론을 원용해 지난 1년 6개월간 정책 경험을 평가한 결과 시장의 기준금리 3개월 경로에 대한 예측력과 반응도가 오랜 기간 포워드 가이던스를 실시해 온 주요 선진국과 비슷했다”고 밝혔다. 서 위원은 포워드 가이던스를 6개월, 1년 등으로 시계를 확장하는 것에 대해서도 “경제주체들의 기대 관리에 도움이 된다”고 평가했다.
이 총재는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사견’을 전제로 “6개월 내 금리 인하 어렵다, 상반기 내 금리 인하 어렵다”식으로 6개월 포워드 가이던스를 실시하고 있다. 포워드 가이던스의 시계 확장을 위해 하반기부턴 ‘분기 단위’로 성장률, 물가를 전망해 포워드 가이던스 시계 확장을 위한 사전 작업을 시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이러한 포워드 가이던스는 금통위원들간 이견이 있는 상태다. 5명의 외부 금통위원들이 미국의 지역 연방준비은행(FRB) 총재들처럼 각 지역에 맞는 경제전망을 별도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한은 데이터를 기초로 전망하기에 미국과 같은 ‘금리 점도표’가 나오기 어렵다는 의견이 나온다. 또 ‘소규모 개방경제’라 주요 선진국 대비 환율 등 금융시장 변수에도 크게 영향을 받기 때문에 포워드 가이던스가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의견이다.
이 총재는 2월 금통위 기자회견에서 “포워드 가이던스 시계 확장에 대해 금통위원들과 상의 중”이라며 “이것을 한다고 해도 내부적으로 테스트를 해야 하기 때문에 연내에 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서 위원의 임기가 내달 끝나기 때문에 대차대조표 정책 확장, 포워드 가이던스의 시계 확장 등에 서 위원이 추가로 의견을 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서 위원이 떠나더라도 이 총재가 하는 정책에 힘이 실릴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금중대 한도유보분의 중소기업 지원에 명시적 반대 의견을 냈던 조윤제 위원도 서 위원과 똑같이 내달 20일 임기가 만료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