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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스페인도 유럽 내 불고 있는 극우 포퓰리즘의 바람을 피해 가지 못했다. 28일(현지시간) 치러진 조기 총선에서 극우정당 복스(Vox)가 민주화 이후 44년 만에 처음으로 원내에 발을 들여놓게 됐다. 지난 1975년 독재자 프란시스코 프랑코 사망 후 극우정당이 스페인 원내에 진출한 건 처음이다.
스페인 전반에서 반(反)난민 기조가 강해진 데다, 카탈루냐 분리독립을 두고 볼 수 없다는 시각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민주화 이후 44년만에 극우정당 복스 원내입성
이날 치러진 스페인 총선 투표율은 75.8%로 지난 2016년 총선보다 9%포인트 높았다. 수년 내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BBC는 설명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따라 ‘스페인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슬로건을 내건 복스는 10.3%(개표율 99.98% 기준)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전체 350석 중 24석을 확보했다. 복스는 지난 2016년 총선에서는 득표울이 0.2%에 불과했다.
중도좌파 사회노동당(PSOE)은 28.7%의 득표율로 제1당에 등극했다. 우파 집권당을 밀어내고 123석을 확보했지만 과반에는 한참 못 미친다. 기존 제1당인 국민당(PP)은 16.7% 득표에 그쳤다. 원내 의석 수도 137석에서 66석으로 절반 이상 줄었다. 중도 시민당(Ciudadanos)은 15.9%의 득표율로 57석, 급진좌파 포데모스(Podemos)는 14.3% 득표율로 42석을 각각 차지할 전망이다.
복스는 과거 프랑코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퇴역 군 장성들이 후보로 나섰음에도 많은 지지를 얻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낙태법 강화, 동성애 반대, 가정폭력 방지법 폐지 등은 강한 비판을 받고 있지만, 포용적 이민정책 및 카탈루냐 분리독립 추진 반대 등이 스페인 내 민족주의를 자극시켰다는 평가다.
◇카탈루냐 독립 반대 거리시위가 결정적 계기
현 복스의 대표인 산티아고 아바스칼은 과거 국민당 소속이었다. 10대 때부터 국민당 청년조직에서 활동하다가 20대 후반 그가 태어난 바스크 지방의회 의원으로 선출됐다. 이후 국민당의 모호하고 적극적이지 않은 난민정책에 의문을 품고 지난 2013년 12월 탈당, 복스를 창당했다. 그를 추종하는 수천 명의 젊은 당원들도 함께 당을 나왔다.
신생 정당으로 2016년 총선에 나선 복스는 참패했지만, 2017년 가을 결정적 전환기를 맞았다. 아바스칼은 카탈루냐 독립을 위한 주민투표와 주의회 선거가 실시될 때 선거에 참여하는 대신 거리로 나가는 방법을 택했다. 주 총리를 헌법위반으로 고소하기도 했다.
중앙정부와 카탈루냐의 오랜 대립에 진절머리가 난 수많은 유권자들은 거리 시위를 주도한 복스를 눈여겨 보기 시작했다.
◇사회당, 국민당 몰아냈지만 유권자 신임 잃어
지난해 6월 국민당 주요 지도부들이 기업들에게 거액의 불법 정치자금과 뇌물을 받은 것이 드러났을 때 국민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이 총리 불신임에 손을 들었다. 국민당의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는 결국 사퇴했다.
이후 야권은 조기총선 대신 제2당이었던 사회노동당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런데 사회노동당의 페트로 산체스 대표는 과반 의석 확보를 위해 급진좌파 포데모스가 아닌 카탈루냐 분리주의 정당과 손을 잡았다. 이는 안달루시아 지역 등 독립을 반대하는 유권자들이 일제히 등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된다. 이는 복스의 표 유입으로 이어졌다.
결국 복스의 약진은 국민당과 사회노동당 등 즉 기존 정치권에 실망한 유권자들이 대거 이탈하면서 만들어진 것이라는 얘기다.
표가 나눠지면서 사회노동당은 제1당으로 등극했지만, 좌파 진영의 포데모스와 의석수와 합쳐도 과반이 되지 않는다. 향후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포데모스와 카탈루냐 민족주의 소수 정파를 규합하거나, 시민당과 연합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