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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위안소는 일본 정부가 조선인 노동자들의 이탈을 막고 생산량을 늘리기 위한 노동력 관리 수단으로 활용하도록 장려한 시설이다. 조선인 노동자들이 이용하던 음식점 등이 사실상 성매매 시설로 운영됐으며, 접객에 종사한 여성들도 조선 출신이었다.
특히 당시 작성된 문헌에는 산업위안소를 ‘성적 욕구 해결소’로 규정하고 노동자 수에 따른 여성 배치 기준까지 제안한 내용이 담겼다.
1945년 일본 석탄통제회 규슈지부에 제출된 연구자의 논문에는 “특별위안소는 쉽게 말해 성적 욕구 해결소”라며 “탄광 부근에 특수음식점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가 많고, 여기에 조선반도 여성이 있으면 편리하다”는 내용이 명시됐다.
논문은 조선인 노동자 1000명당 약 10명의 조선인 여성을 배치할 것을 주장했다. 여성들에게 노동자의 도주 방지와 생산 증대 독려의 책임까지 맡겨야 한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당시 일본 정부는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매년 노동력 동원계획을 수립해 조선에서 노동자들을 동원했다. 강제동원된 조선인 민간인은 약 70만명으로 추산된다.
일본 후생성의 당시 통계에 따르면 1939~1942년도 일본으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의 약 75%가 탄광과 광산으로 보내졌다. 열악한 노동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현장을 이탈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았다.
일본 도쿄 신주쿠구에 있는 고려박물관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러한 노동자들의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탄광·광산 운영 기업들이 조선 음식점 등을 활용하도록 장려했다. 이들 시설에서 일하던 조선인 여성들은 일반 종업원이 아닌 사창(私娼)으로 취급됐다.
고려박물관이 2026년까지 10년간 진행한 문헌·현장 조사와 마이니치신문의 전문가 취재를 대조한 결과, 홋카이도와 후쿠오카현의 탄광뿐 아니라 나가사키현 미쓰비시 하시마 탄광, 이른바 ‘군함도’에도 산업위안소가 존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전문가들은 산업위안소 운영에 여성 차별과 민족 차별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고 지적했다.
고려박물관 조선여성사연구회 대표인 오바 사요코는 “여러 관계자의 증언에서 드러나는 것은 조선인 노동자에게 조선인 여성을 제공한다는 발상”이라며 “여기에는 여성 차별과 민족 차별이 모두 나타난다”고 비판했다.
마이니치신문은 산업위안소에서 접객에 종사한 여성들 가운데 10대 소녀가 다수 포함됐다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