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일리노이주 디어필드에 위치한 사무용 가구업체 ‘엣지 데스크’의 마크 로젠버그 창립자 겸 최고경영자(CEO)는 고객들의 허리 통증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고급 인체 공학 의자를 출시할 준비를 하고 있다. 가장 비싼 모델의 가격을 1000달러 이상으로 책정할 계획이었지만, 정확한 가격을 확정하지 못하고 중국에서 들여오는 물량을 줄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였다. 그가 이처럼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끊임없이 변화하는 무역 정책과 불확실한 관세 부과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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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현지시간) AP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주요 교역국인 멕시코, 캐나다 등과 관세 정책을 번복하며 글로벌 기업들의 투자 및 경영 계획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가장 큰 무역 상대국인 캐나다, 멕시코에서 수입하는 제품에 대해 예고했던 25% 관세 부과 조치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멕시코와 캐나다에서 들어오는 모든 수입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발표한 지 불과 이틀 만에 번복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4일 관세 부과를 한 차례 유예했으며, 이번 조치 역시 한 달간의 추가 유예를 의미한다.
민주당 측에선 강한 불만이 쏟아져 나왔다. 민주당 소속 돈 베이어 버지니아주 하원의원은 “트럼프는 지금 북미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다”며 “이는 매우 어리석은 행태”라고 비판했다. 이어 그는 “오늘도 여러 기업이 자신들이 거래하는 제품이 트럼프의 관세 대상인지조차 모르고 있다”며 “트럼프의 모든 무역 정책은 혼란과 불확실성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중국산 제품에 대한 관세가 기존 10%에서 20%로 인상되었지만, 최종적으로 정확히 얼마나 적용될지 불분명해 기업들은 난감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로젠버그 CEO는 “이런 혼란스러운 환경에서는 장기적인 사업 계획을 세우는 것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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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은 경제에 다양한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우선 소비자 부담 증가 및 인플레이션 가속화는 불가피할 전망이다. 관세는 수입업체가 부담하는 세금이지만, 결국 소비자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또 무역 상대국의 보복 조치로 세계 경제 불안정이 심화할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 멕시코, 중국 등의 보복 관세 가능성이 커지면서 세계 교역 위축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 기업들의 투자 및 경영 전략에도 큰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특히 공급망 조정, 공장 이전, 제품 가격 책정 등이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기업들의 실질적인 피해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에 있는 ‘라스 알마스 로타스’ 레스토랑은 멕시코에서 주로 수입하는 술이 원재료 가격 상승으로 인해 새 매장 건설 계획을 보류했다. 시카고에 있는 석재 공급업체인 GI 스톤은 건설 프로젝트를 최소 2년 전부터 예산을 책정하지만, 예상치 못한 관세 인상으로 예산이 초과하면서 고층 건물 및 호텔 건설 프로젝트를 재조정했다. 뉴욕 사라토가 스프링스 소재 주류 판매점인 퍼스트 필 스피리츠는 올해까지 매장 확장 및 재고를 2배로 늘릴 계획이었으나 보류했다.
에스와르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경제학자는 “다국적 기업들은 전 세계 시장을 상대로 제품을 수출하고 복잡한 공급망을 운영하고 있다”며 “이런 불확실성은 기업들에 매우 혼란스러운 요소이며, 궁극적으로 투자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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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무기화하고 있는데 집권 1기 당시 2019년 후반 미국 내 기업 투자 둔화가 뚜렷해졌으며, 이에 따라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경제 자극을 위해 세 차례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는 우려가 나온다. 과거에는 철강·알루미늄·중국산 제품 등을 조사 후 단계적으로 관세를 부과했다면, 이번에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한 후 즉각적인 관세 부과를 강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캐나다·멕시코·중국뿐만 아니라 미국보다 높은 수입세를 부과하는 국가들에게도 ‘상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했다.
이에 대해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는 “관세 위협이 투자, 소비, 고용 등에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유럽 경제 보호를 위해 금리 인하를 단행했다고 밝혔다. ECB는 이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통화정책이사회를 열어 5차례 연속 정책금리를 인하했다. 예금금리를 연 2.75%에서 2.50%로, 기준금리를 연 2.90%에서 2.65%로 각각 0.25%포인트 내렸다.
현재 미국 기업들은 이 같은 불확실성이 해소될 때까지 신규 투자 및 확장 계획을 보류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한 관세 정책이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존 걸리버 뉴잉글랜드-캐나다 비즈니스 협회(NECBC)회장은 “현재 관세 정책은 그 자체로 불확실성을 가져오고 있으며, 이 탓에 모든 기업이 균형을 잃고 있다”고 말했다.
포리&라드너 로펌의 그레고리 후시시안 무역전문 변호사는 “트럼프 1기 때는 기업들이 어떤 게임을 하는 지라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러한 게임 상황이 복잡한 장기전인지 아니면 단순한 단기전인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기업들의 혼란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