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식이 곧 장례식"…무기력한 '新빈곤층' 中 청년들

김영은 기자I 2023.09.01 17:13:01

中 도시 대졸자 39%…현 일자리 대비 ''오버 학력''
청년 5명 중 1명꼴 실업자…대졸자만 1160만명
1인당 GDP 7배 달하는 양육비에 결혼·출산 포기
신빈곤층 탄생에도 정부는 ''농촌 돌아가자'' 제안

[이데일리 김영은 기자] “우리에게는 희망이 없습니다.”(There is no hope for us.)

중국 후이저우시에 사는 한 27세 청년이 주간 이코노미스트에 한 얘기다. 중국 청년 세대가 느끼는 무기력함은 ‘탕핑’(평평하게 누워 있기)을 넘어 ‘바이란’이라는 용어로 표출되고 있다. 바이란은 원래 중국 스포츠 경기에서 크게 지고 있는 팀이나 선수들이 자포자기하는 심경을 표현한 용어다. 외신들은 ‘썩게 놔두라’(let it rot)는 뜻으로 전달한다.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1990년대 출생자들이 이제 경쟁에서 벗어나 달성할 수 없을 것 같은 물질적 야망을 모두 포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자리 미스매치 심화…“졸업식은 곧 장례식”

중국 대학교 졸업식의 한 풍경.(사진=웨이보 사회관계망서비스 캡처)


가장 큰 문제는 대학 졸업 청년들이 원하는 만큼 고임금 고숙련 일자리가 창출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 대학가 허페이시에 사는 리우 씽유(23)는 최근 대학 졸업 후 몇 달 만에 첫 직장을 그만뒀다. 안정적인 직업을 갖기 위해 전자통신공학과라는 실용 학문을 택했지만, 졸업 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는 월 630달러(83만원)에 해당하는 쇼핑몰 휴대폰 판매 관리 직업이었다. 이는 도시 평균 소득의 절반에 불과한 금액이다.

온라인 채용 정보 회사인 질리안 자오핑(Zhilian Zhaopin)의 조사에 따르면 정부의 빅테크 단속 강화에 발맞춰 알리바바, 텐센트 등 중국 최대 기술기업들이 정리해고를 감행했음에도 중국 대학 졸업생의 4분의1이 기술 분야 고임금 일자리를 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베이징, 광저우, 선전 등 중국 1선 도시 구직자의 39%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에서 요구하는 기준보다 최소 2년 이상의 교육 과정을 더 밟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 정부는 제조업 등 생산직, 가사 노동 등 저임금 서비스 분야에서 인력 부족이 심각하다고 말하고 있지만, 해당 직업 중국의 대학 졸업 청년들이 받아들이기를 꺼리는 일자리”라고 전했다.

올해 기준 약 1160만명에 달하는 대학 졸업 청년들은 자신의 상황을 중국 근현대 문학 속 인물 ‘쿵이지’(루쉰 소설의 주인공)와 비교하고 있다. 쿵이지는 청나라 말 나라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 후 사소하게 절도에 의지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지식인을 의미한다. 일부 대학 졸업생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졸업 가운을 입고 엎드려 있는 사진을 올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다. 이들은 웨이보 등에 사진을 올리며 ‘졸업식이 곧 장례식’이라는 설명을 달고 있다.

중국의 16~24세 청년실업률은 지난 6월 21.3%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런데 전문가들은 실제 수준은 공식 집계를 능가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베이징대의 장단단 경제학과 교수는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수백만명의 사람들을 고려한다면 이미 지난 3월 실제 청년실업률은 46.5%에 이르렀다”며 “지금은 그 이상일 수 있다”고 했다. 중국 국가통계국은 “수치 수집을 더 개선하고 최적화해야 한다”고 발표한 뒤 7월 청년실업률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중국의 공식적인 7월 도시 실업률은 5.3%이지만, 청년들은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기술, 부동산 등 전통적으로 청년 고용을 담당했던 부문을 단속했고, 그 결과 많은 기업들이 대학 졸업생을 위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대신 부채 상환에 집중했다. 같은 기간 청년 대학 졸업자는 중국 도시 노동력 공급의 약 3분의2에 달할 정도로 커졌다. 지난 3년 동안 노동시장에 진입하고자 하는 대졸 청년은 2800만명 이상에 이르렀다.

◇청년 신빈곤층의 등장…‘시진핑의 중국’에 반발

지난해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우루무치 화재 희생자 추도식에서 코로나19 봉쇄 조치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에서 백지를 들고 있다.(사진=로이터·연합뉴스)


일자리 미스매치 문제가 심화하자 청년들은 결혼을 포기했다. 지난해 중국에서 결혼한 커플은 총 680만여 쌍이다. 10년 전의 절반 수준이다. 치솟는 주택 가격과 육아 비용으로 결혼은 물론 출산까지 꺼리는 분위기다. 베이징의 민간 싱크탱크 위와 인구조사의 지난해 말 발표에 따르면 2019년 중국에서 첫 아이를 18세까지 키우는 평균 비용은 약 48만5000위안(약 8800만원)이다. 수년 전부터 청년들은 양육 과정에서 1인당 GDP의 약 7배에 해당하는 금액의 부담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을 해결하려는 정부의 노력은 실패로 돌아갔다. 중국 정부는 2016년 한 자녀 정책을 부부 당 두 자녀 정책으로 전환했다. 그럼에도 다음 해 출산율이 최저치(1.2명)에 이르자 정부는 △현금 지급 △세금 감면 △출산 휴가 연장 등의 인센티브를 걸고 세 자녀 정책을 추진했지만 청년들은 동요하지 않았다. 지난해 중국 온라인에서는 “방역 수칙을 위반하면 가족 3대가 망한다”는 경찰의 말에 “우리가 마지막 세대다. 감사하다”고 답한 영상이 또 다른 냉소적인 밈으로 바뀌어 유행했다.

일부 학자들은 이들을 두고 ‘신빈곤층’이라 칭하며 사회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순펑 칭화대 사회학자는 “신빈곤층은 오랫동안 배제, 망각, 지루함 속에서 살아온 세대이기 때문에 그들의 주된 정신상태는 짜증 나고 반사회적이고 폭력적”이라며 “이것이 사회적 불안정을 낳는 주 요인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기적으로 수백만명의 실업자는 강대국으로 부활하려는 ‘시진핑 공산당’에 대한 잠재적 위험 요인이다. 이코노미스트는 “16~35세인 청년 인구는 약 3억 6000만명으로 전체 4분의 1을 차지한다”며 “이들의 우울함은 중국의 미래 경제와 공산당의 야망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전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현지에서 대중적 지지를 받고 있지만, 사회와 경제에 대한 그의 엄격한 통제에 대한 일부 청년들의 좌절감은 지난 11월 베이징, 상하이 및 기타 도시에서 거리 시위(백지 시위)로 터져 나왔다. 청년들은 확진자 발생 지역을 완전히 봉쇄한 정부의 제로 코로나 정책을 반대하는 의미로 거리에 나와 백지를 들기 시작했다.

인민일보는 지난 8월 초 청년들을 대상으로 “당신이 더 야심적일수록 더 현실적으로 행동해야 한다”고 했다. 5월에는 “쓴 맛을 삼키라”는 말을 남겼다. 이는 현 정부의 슬로건인 ‘먼저 직업을 구한 다음 직업을 찾으세요’와 같은 맥락의 구호다. 이는 정부 차원에서 공장·시골 노동의 미덕을 칭찬하고, 대학 졸업생들로 하여금 일손이 부족한 제조·생산업계의 직업을 채택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중국 공산청년동맹은 청년층에 “양복을 벗고 소매를 걷어붙이고 농지로 가라”고 촉구하고 있다.

이에 대학 졸업 후 몇 달 만에 단순 판매 노무직 업무를 그만둔 ‘바이란’ 세대 리유는 이렇게 답했다. “그들이 우리 세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그들의 의견 역시 우리에게 더이상 중요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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