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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은 식품가격…전세계 '그리드플레이션' 논란

김상윤 기자I 2023.06.20 17:51:02

추경호 부총리 "라면값 내려야" 경고 나서
EU "식료품 가격 급등은 유통기업 탐욕탓"
가격상한제 도입하고, 유통업체 불러 인하 압박
지나친 정부개입은 오히려 공급 축소..부작용 커

[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라면값이 1년새 13%나 오르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이 가격을 인하하면 좋겠다고 했다. 국제 밀 가격이 많이 내렸는데 라면값은 그대로인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국내에선 라면값이 타깃이 됐지만 기업이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품과 서비스 가격을 과도하게 올려 물가 상승을 가중하는 이른바 ‘그리드플레이션’(Greedflation, 탐욕+인플레이션) 논란은 전 세계적으로 커지고 있다. 일부 국가에서는 가격 상한제 카드까지 나오는 등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자칫 정부의 섣부른 개입이 시장을 왜곡할 수 있다는 반발도 만만치 않다.

(이미지=유럽중앙은행)
◇밥상물가 치솟자 가격상한제 시행도

유럽연합통계국(Eurostat)에 따르면 헝가리는 지난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대비 38.5%나 급등했다. 물가를 끌어올린 것은 식료품가격이다. 계란·빵·버터·치즈 가격이 1년 전보다 50~60% 뛰었다. 감자가격이 급등하면서 레스토랑 메뉴에서는 감자튀김이 사라지고, 빵집들은 버터 대신 올리브 오일을 사용할 정도다. 유로존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6.9%로 전월(8.5%) 대비 완화되긴 했지만, 식료품, 술, 담배 등 생필품 가격은 15.4%나 뛰었다. 영국의 4월 식료품 가격도 19.1%나 상승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치솟았던 에너지가격이 안정세를 보이고 있지만, 급등한 식료품 가격이 인플레를 다시 부추기는 분위기다.

유럽 국가들은 식료품 가격 급등을 유통기업들의 탐욕 탓으로 돌렸다. 곡물 가격은 떨어졌는데 기업들이 이윤을 늘리기 위해 판매가를 올리면서 인플레이션을 부추기고 있다는 것이다. 처음엔 원가상승에 따른 비용을 상쇄하기 위해 가격을 올렸지만, 그 이상으로 가격을 설정하면서 이윤확대에 나서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비오 파네타 유럽중앙은행(ECB) 이사회 이사는 지난 4월 “이윤-물가의 연쇄상승을 주시하고 있다”면서 “기업들의 기회주의적 행동이 인플레이션 하락을 지연시킬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치솟은 ‘밥상물가’가 서민경제에 부담이 되자 유럽 일부 국가는 가격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헝가리는 지난해 특정 상품에 대해 가격 상한제를 도입하고, 지난해 크리스마스엔 감자 배급제도를 시행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3월부터 슈퍼마켓 체인과 직접 계약을 체결해 일부 생필품을 할인된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체인업체와 ‘협의’를 통한 공급이라는 형식을 띠긴 했지만, 시장에서는 사실상 시장 개입으로 보고 있다. 할인 비용 부담을 유통업체가 모두 부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포르투갈 정부 역시 식료품 생산·판매 업체와 직접 협상해 나서며 가격 할인을 유도하고 있다.

영국은 특정 품목에 대한 1인당 구매량을 제한하고, 헝가리와 마찬가지로 빵과 우유 등 핵심 식료품에 가격 상한제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스웨덴 정부는 자국내 식료품 시장의 90%를 점유하는 상위 3대 소매업체 대표들을 소환해 가격을 올리지 않도록 압박에 나섰다. 스페인은 과격한 가격 통제 대신 필수품에 대한 부가가치세를 모두 폐지하고 식용유와 파스타에 대한 세금을 5%로 절반 낮췄다.

프랑스의 대형마트인 카르푸의 한 매장에서 고객들이 물건을 사고 있다. (사진=AFP)
◇원활한 공급 막아 오히려 인플레 부채질

하지만 이같은 가격통제 방식은 단기간에 일부 성과를 보일 수 있지만 정부의 지나친 개입으로 자칫 유통시장의 원활한 공급을 막는 등 시장을 왜곡해 부작용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수요와 공급 원리에 따라 가격이 비쌀 경우 수요가 줄면서 가격이 떨어지거나, 유통업체들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보다 싼 가격에 재화를 공급하는 등 자연스러운 시장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헝가리의 경우 가격 상한제를 시행하자 상인들이 공급을 오히려 제한해 식료품 인플레이션이 50%까지 치솟았고, 빅토르 오르반 총리는 “인위적인 개입이 공급을 방해했다”며 정책실수를 인정하기도 했다.

캐피털 이코노믹스의 그룹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닐 시어링은 AP뉴스에 “유럽 각국이 물가 통제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은 유권자들이 계산대에 설 때마다 물가 압박을 끊임없이 받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하지만 지나친 정부 개입은 오히려 시장에서 자연스러운 공급을 저해하고 식품 인플레이션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대신 정부는 유통시장이 충분히 경쟁적으로 이뤄지고 있는지, 가격담합 등 불법행위가 나오고 있는지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영국의 경쟁당국인 경쟁시장청(CMA)은 최근 식료품 소매시장 경쟁이 어떻게 작동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있고, 내달께 보고서를 발표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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