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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헤드윅’이 돌아왔습니다. 14번째 시즌 공연으로 지난 22일 서울 송파구 샤롯데씨어터에서 막을 올렸습니다. 바로 직전 시즌인 2021년 충무아트센터 대극장 공연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함성도 제대로 지를 수 없었는데요. 그때의 아쉬움을 달래듯 여느 때보다 열광적인 무대가 펼쳐지고 있습니다. ‘헤드윅’이 국내 최초의 뮤지컬 전용 공연장 샤롯데씨어터에 오르는 것도 처음입니다. 2005년 25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처음 한국 공연을 시작한 걸 생각하면 그야말겨 격세지감입니다. 대극장 공연답게 볼거리도 가득합니다. 백미는 작품의 주제를 담은 넘버 ‘디 오리진 오브 러브’(The Origin of Love)인데요. 반투명 스크린을 이용한 영상과 라이브 공연의 조화가 환상적입니다.
◇세상 모든 이분법에 반대하는 ‘퀴어 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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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헤드윅’은 2001년 원작자인 존 카메론 미첼이 감독과 주연을 맡은 동명 영화로 처음 접했습니다. 영화에서 받은 감동이 컸기 때문일까요. 뮤지컬로 만난 ‘헤드윅’은 라이브 공연 특유의 재미는 충분했지만, 공연장을 나설 때면 왠지 모를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퀴어 뮤지컬 ‘헤드윅’의 한국 공연에선 ‘퀴어’가 없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퀴어(queer)는 ‘기묘한’ ‘괴상한’이라는 뜻입니다. 성 소수자를 가리키는 단어로 흔히 쓰이는데, 더 넓은 의미에선 세상이 정해 놓은 여러 범주에 속하지 못하는 소수자를 통칭하기도 합니다. ‘헤드윅’은 퀴어라 할 수 있는 헤드윅이 퀴어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관객과 나눈다는 점에서 ‘퀴어 뮤지컬’입니다. 박병성 공연 칼럼니스트는 “단순히 퀴어 캐릭터가 나온다고 해서 ‘퀴어 뮤지컬’이라고 규정할 수는 없다”며 “무엇보다 ‘헤드윅’은 세상의 이분법적 사고에 대해 반대의 입장을 보여준다는 점에 퀴어의 개념을 더욱 확장해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설명합니다.
◇드랙 클럽서 첫 선, 마돈나 등 관람하며 컬트적 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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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입소문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1998년부터는 뉴욕 미트 패킹 디스트릭트에 위치한 더 제인 스트리트 시어터로 무대를 옮겨 공연을 이어갔습니다. 과거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이 묵었던 호텔 리버뷰를 리모델링한 공연장입니다. 이 호텔은 마약 중독자, 노숙자 등이 주로 머물고 있었는데요. 관객은 오히려 이러한 공연장 분위기가 작품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며 즐겼다고 합니다. 마돈나, 데이비드 보위 등 유명 인사들도 공연을 보러 오면서 컬트적인 인기를 이어갔죠.
이후 ‘헤드윅’은 2000년 영국 웨스트엔드에 올랐고, 2001년에는 미첼이 직접 감독까지 맡은 영화로 제작됐습니다. 이 영화는 선댄스영화제 감독상과 관객상, 베를린영화제 테디상 등을 받으며 ‘헤드윅’을 대중적으로 알렸습니다. 국내에도 ‘헤드윅’은 영화로 먼저 소개됐고요. 2014년에는 브로드웨이에서 리바이벌 버전을 선보였습니다. 드라마 ‘천재 소년 두기’로 국내에 잘 알려진 배우 닐 패트릭 해리스가 헤드윅 역을 맡아 화제가 됐습니다.
◇미국선 배우 성별 관계 없이 헤드윅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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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헤드윅’의 스타 캐스팅은 제작사 입장에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입니다. ‘헤드윅’이 한국에서 초연한 2005년은 지금에 비하면 성 소수자에 대한 인식이 부족했습니다. 스타 캐스팅은 한국 정서에 낯선 ‘헤드윅’을 보다 친숙하게 소개할 하나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창작물 속 퀴어 역할을 꼭 퀴어인 배우가 해야 한다는 법도 없고요.
다만 스타가 계속 출연하면서 지금의 ‘헤드윅’은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담은 작품보다 단순히 스타가 나오는 ‘쇼’로 여겨지는 분위기도 없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혜원 경희대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는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의 인식도 변화한 만큼 ‘헤드윅’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언젠가는 퀴어 배우가 나오는 ‘헤드윅’을 한국에서 만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 이 글은 영화 ‘헤드윅’ DVD에 수록된 다큐멘터리 ‘당신이 좋아하든 말든: 헤드윅 이야기’(Whether You Like It or Not: The Story of Hedwig)를 참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