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 외자운용원이 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대표 단기 부동 자금용 금융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 등 비은행금융기관 등 시중 유동성이 미국 단기 국채(T-bill) 금리 대신 연준의 익일물 역레포(역 환매조건부채권)금리(O/N RRP)로 몰리면서 둘 간의 금리가 역전됐다. 지난달 29일 기준 T-bill 1개월물 금리는 2.15%인 반면 연준의 O/N RRP 금리는 2.30%로 15bp(1bp=0.01%포인트) 더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RRP 금리는 정책금리가 그 이하로 내려가는 것을 저지하는 하단으로 작용한다. 양적완화(QE) 도입 이후 유동성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연준이 은행 및 공공금융기관, MMF 등과 RRP거래를 함으로써 정책금리가 동 거래금리 미만으로 내려가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RRP의 금리 메리트(이익)으로 인해 MMF 등 비은행금융기관들은 T-bill 매입 대신에 연준과의 RRP거래를 확대하고 있다”면서 “RRP 잔액은 지난 4월 이후 빠르게 늘어나 거래기관별 한도에 거의 다다른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한은 측은 미 연준의 RRP가 증가하면 그만큼 은행 지급준비금(지준) 규모가 축소된다고 밝혔다. MMF 등이 미 연준으로부터 채권을 환매조건으로 매입하게 되면 매입대금이 연준의 RRP계정으로 바로 이전되기 때문이다. RRP를 하지 않았다면 MMF의 자금이 금융시스템 내에서 예금, 채권거래 등을 통해 은행부문으로 이전될 것이며 이는 곧 은행 지준으로 연결되었을 것이나 그 반대 상황인 것이다. 실제로 T-bill 금리와 O/N RRP 금리가 역전되었던 4~7월 중 RRP는 4000억달러 증가한 반면 은행 지준은 5000억달러 줄었다. QT와 같은 시중 유동성의 흡수 효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한은은 이런 단기 금융시장 내 쏠림현상으로 은행 지준이 부족한 상황이 이어지면 연준이 내년 이후엔 QT를 이어가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봤다. 현재는 초과 유동성이 과다하다고 볼 수 있어 은행 지준이 감소하더라도 당장 큰 부담이 되지는 않지만 일정 수준이 지나면 유동성이 과도하게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연준은 QT를 통해 적정수준까지 자산을 축소하려고 하나 적정수준 도달 이전에 RRP 증가 등으로 시중 유동성이 과도하게 감소할 수 있고 이 경우 QT를 지속하기 어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투자은행(IB)들도 이 같은 견해를 내놓고 있다. 바클레이즈는 연준의 대규모 초과지준에도 불구하고 QT 실시, RRP 증가 등으로 은행지준 규모가 빠르게 축소되어 미 연준이 이르면 내년초 QT규모 축소를 고려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지난 2017년 10월~2019년 8월 QT 실시로 지준이 감소한 상황에서 미국 단기자금시장 유동성 부족으로 RP금리 급등하자 연준은 환매조건부채권(RP), T-bill 매입으로 유동성을 공급해 지준 규모를 확대시킨 바 있다.
SEB도 내년 하반기 중 은행 지준이 연준의 권고수준 이하로 떨어져 2019년과 같이 지준 부족으로 단기금융시장 변동성이 확대될 가능성을 경고했다. 지난달 27일 기준 지준잔액은 3조3000억달러이나 QT 감안하면 내년 9월께 2조 달러를 하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