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연일 쏟아지는 증오범죄 소식에…아시아계 "귀국 안해!"

방성훈 기자I 2022.02.18 15:56:04

팬데믹 이후 ''묻지마'' 공격 급증…코로나 중국 기원설 탓
2020년 73% 증가·바이든 정부 들어서도 339% 폭증
최근 한국계 여성 피살후 아시아 커뮤니티 불안 확산
"살기 너무 힘들어"…아예 미국 떠나기도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지금 다니고 있는)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대학교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했던 계획을 접기로 했다.”

미국 시애틀에서 태어난 중국계 이민자 2세 에릭 우(20)는 “매주 (미국에서) 아시아인이 공격을 당했다는 기사가 쏟아져 나오고 있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영국에서 살아본 적도, 지인도 친척도 없지만 미국으로는 돌아가지 않기로 결정했다면서 “할아버지, 부모, 숙부와 숙모, 사촌, 형제, 누이가 (언제든) 피살될 수도 있다는 생가에 걱정이 앞선다”고 토로했다.

뉴욕경찰(NYPD)이 지난 13일 새벽 4시께 뉴욕시 맨해튼 차이나타운 지하철역 근처에 위치한 한 아파트에서 한국계인 크리스티나 유나 리(35)를 살해한 혐의로 노숙자 아사마드 내시(25)를 체포하고 있다. (출처=뉴욕포스트 캡처)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 이후 아시아인들을 대상으로 ‘묻지마’ 살인·강도·폭행 등이 증가하면서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미국으로 되돌아오길 주저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에도 한국계 미국인들이 숨지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지난 13일 새벽 한국계 미국인 크리스티나 유나 리(35)는 뉴욕시 맨해튼 차이나타운 지하철역 인근 자택에서 흉기에 찔려 숨졌다. 아파트 CCTV 확인 결과 현장에 숨어 있던 노숙자 아사마드 내시(25)가 크리스티나의 뒤를 밟아 아파트 안까지 진입한 것으로 밝혀져 체포됐다. 지난 달에는 미셀 일리사 고(40)가 지하철에서 떠밀려 숨졌다.

두 사건 이후 미국 내 아시아 커뮤니티에선 불안감과 두려움이 확산했다. 그렇지 않아도 총기사고가 빈번히 발생해 정치적·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우려가 커진 상황에서 또다른 걱정거리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크리스티나 피살 사건 현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는 또다른 한국계 미국인 이율(31)은 “범죄 현장을 지나칠 때마다 너무 무섭다”고 말했다. WP는 그가 일반적인 미국인들과 달리 크리스티나 피살 사건을 자세하게 보도한 기사들을 읽었다고 전했다.

호주 시드니에 거주하는 에린 웬 아이 추(39)는 미국 출신인 남편을 따라 캘리포나아 남부를 자주 방문한다. 그는 “로스앤젤레스(LA) 길거리를 혼자 걷을 때 무척 조심하곤 했는데 지금은 훨씬 더 긴장한다. 아시아인, 특히 중국계 아시아인으로 보이는 사람에게 모두가 적대적인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언론 등을 통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된 사건들 외에도 아시아계를 겨냥한 다양하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주엔 한국의 한 외교관이 뉴욕 맨해튼 시내에서 친구와 함께 걸어가던 중 한 남성에게 이유 없이 폭행을 당했다. 작년 3월에도 뉴욕에서 80대 한국계 할머니가 40대 남성으로부터 무차별 폭행을 당했으며, 같은 달 애틀랜타에서는 아시아 여성 8명이 증오범죄 표적이 돼 총격으로 사망했다.

이외에도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운영하는 미 전역의 상점을 대상으로 묻지마 파손·폭행 등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사진=AFP)


아시아인을 겨냥한 증오범죄는 팬데믹 이후 급증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중국 기원설이 크게 부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미 연방수사국(FBI) 데이터에 따르면 트럼프 전 행정부 시절이자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아시아인 상대 증오범죄는 전년 대비 73% 증가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 들어서는 339% 급증했다. 미 샌프란시스코 경찰당국은 올해 1월 아시아인 상대 증오범죄가 전년 동월대비 567% 급증했다고 발표했다. 뉴욕 경찰(NYPD) 역시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가 2020년 28건에서 지난 해 131건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에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아예 미국을 떠나고 있다. 한국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성장한 뒤 2005년 다시 한국으로 영구 귀국한 제인 정 트렌카는 8년 뒤 미국을 방문했을 때 한 남자가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며” 창문을 주먹으로 치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미국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면 지금이 얼마나 편안한 지 새삼 느낀다. 미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익숙하겠지만, 다시는 그런 일을 매일 겪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를 쳤다.

노스이스턴대에서 아시아계 미국인 연구를 하는 유지연 교수는 “노골적인 인종 차별이 증가하고 반아시아인 발언이 늘어나면서 일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해외 체류를 연장하려 한다”고 전했다.

주요 뉴스

ⓒ종합 경제정보 미디어 이데일리 - 상업적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