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해진 공정위, 남양유업 '자진시정안' 수용…애플도 수혜 입나

김상윤 기자I 2020.05.06 12:00:00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동의의결 사례 나와
대리점법 개선안 선제적 반영 높게 평가
애플 통신사 갑질 등 ICT 동의의결 가능성↑

[세종=이데일리 김상윤 기자] 남양유업(003920)이 대리점을 상대로 한 ‘갑질’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내놓은 자진시정안(동의의결)을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용하기로 했다.

그간 동의의결을 수용하지 않고 과징금 처분 등 행정제재를 고수했던 공정위가 과거에 비해 유연해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향후 애플코리아 등 IT분야의 불공정행위 제재 과정에서도 다양한 동의의결 사례가 나올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지난달 29일 남양유업과 협의를 거쳐 거래상지위 남용 관련 동의의결안을 최종 확정했다고 6일 밝혔다. 동의의결이란 기업이 스스로 시정방안을 제안해 공정위가 받아들일 경우 위법 여부 판단까지 가지 않고 사건을 끝내는 제도다. 신속하게 피해자를 구제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해외 경쟁당국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제도다.



◇대리점법 개정안..남양유업 선제적 반영

남양유업은 지난 2016년 1월 농협 하나로마트에 납품하는 대리점에 지급하는 수수료를 일방적으로 15%에서 13%로 인하했다가 논란을 빚었다. 과거 유제품 밀어내기로 물의를 빚자 남양유업은 대리점 매출이 급감한 것을 고려해 지급 수수료를 인상했다가 매출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대리점주들과 별다른 협의 없이 수수료를 다시 낮췄다.

공정위가 검찰 고발까지 검토하자 남양유업은 적극적인 자진시정안을 마련했다. △향후 5년간 대리점 단체구성권 보장, △중요 거래조건 변경 시 개별 대리점 및 대리점단체와 협의 의무화, △대리점과 협력이익 공유제 시범 도입 등 공정위가 법개정을 통해 시행하려는 방안들을 선제적으로 담았다.

구체적으로 남양유업은 농협 하나로마트 거래시 위탁수수료율을 동종업계와 비슷하게 유지해 일방적인 수수료 인하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했다. 시장조사기관 또는 신용평가기관에 의뢰해 동종업체의 농협 위탁수수료율을 조사해 남양유업의 수수료율이 더 낮을 경우 평균치 이상으로 조정할 예정이다.

또 대리점과 상생협약서를 체결한 뒤, 가맹점이 대리점 협의회를 만들 수 있는 단체구성권을 보장하기로 했다. 남양유업이 대리점 계약에서 정한 중요 조건을 변경할 경우, 각 대리점들로부터 사전에 서면 동의를 얻어야 하고, 대리점협의회 대표와 남양유업 대표이사 등이 참석하는 상생위원회에서 사전협의 절차를 거치게 된다.

이외 남양유업은 농협 하나로마트 위탁납품 거래에서 발생하는 영업이익의 5%를 농협 위탁납품 대리점들과 공유하기로 했다. 업황이 악화해 영업이익이 20억 원에 미달하는 경우에도, 남양유업는 최소 1억원을 협력이익으로 보장하기로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동의의결안에는 정부가 법 개정을 통해 대리점주의 지위를 높이려는 제도가 상당수 반영돼 있는 등 적극적으로 갑질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면서 “대리점분야의 상생협력 문화가 촉진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文정부 동의의결 첫발 떼..애플 등 이어지나

공정위가 동의의결을 수용한 것은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이다. 김상조 전 위원장 재임 기간(2017년 6월~2019년 6월) 동안 들어온 현대모비스·LS·골프존의 동의의결 개시신청은 모두 기각됐다. 그간 공정위가 과징금이나 검찰 고발 결정을 내리지 않고 동의의결을 들어준 뒤 제대로 이행관리도 안하면서 대기업을 봐줬다는 비판이 컸기 때문이다. 여기에 강한 제재를 내려서 시장에 강력한 시그널을 주겠다는 김상조 전 위원장의 의중도 반영됐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다 공정위가 강한 제재를 했던 사안들이 대거 법원에 뒤집히고, 공정위 내부에서도 적극적으로 동의의결에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다. 특히나 시장 변화가 빠르고 경쟁당국이 명확하게 칼을 대기 어려운 ICT분야에서는 해외 경쟁당국 처럼 동의의결을 적극 활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은 올초 업무계획 발표에서 ICT분야에 대해 적극적으로 동의의결제를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이 일부 통과되면서 동의의결제를 이행 감독하는 기구를 공정거래조정원이나 소비자원으로 정할 수 있는 근거안이 마련된 것도 공정위의 부담을 덜게 됐다.

현재 애플코리아의 통신사에 대한 거래상지위 남용 건도 동의의결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통신사가 ‘갑’인지, 애플이 ‘갑’인지 모호했던 터라 공정위의 칼이 어떤 방식으로 향할지 관심이 컸다. 그러다 애플코리아가 동의의결을 신청했고, 공정위가 들여다보고 있는 상황이다. 이외 네이버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건 등 ICT관련 제재도 동의의결 방식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공정위 관계자는 “피심의인이 얼마나 적극적으로 피해구제안을 마련할지, 신속하게 피해가 구제될지 등 케이스별로 따져봐야 한다”면서도 “적극적인 시정안이 나올 경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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