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지도를 펴면 휴전선이 동쪽으로 완만한 상승곡선을 그리다가 고성군 경계에 이르러 가파르게 북쪽으로 올라가는 것을 볼 수 있다. 6·25전쟁이 터진 직후부터 휴전 직전까지 계속된 향로봉·건봉산·월비산·351고지 등의 치열했던 전투 결과다. 전국 230개 자치 시·군·구 가운데 고성군이 특별한 점은 우선 여기에 있다. 7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달리다 속초를 지나면 공기부터가 다른 느낌이다. 각종 통제선과 군사 시설이 눈에 띄는 빈도가 부쩍 잦아진다. 흉물스런 철조망 대신 금속 울타리나 목책으로 많이 바꾸었지만 분단 현실을 체감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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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에서 단 하나뿐인 자산
고성은 분단국 가운데서도 분단도에 속한 분단군이다. 나라가 나뉜 것도 서러운데 도까지 남북으로 갈리고 군마저 반 토막이 났다. 분단군으로는 철원도 있지만 고성이야말로 그 아픔이 가장 큰 군이라고 할 수 있다. 남한의 동북단에 위치한 데다 군 자체가 남북으로 갈렸으니 지리적으로는 최고 변방이고 행정적으로는 파행지역이다. 산맥과 민통선에 막히고 군사적 이유로 개발마저 극도로 제약되는 등 모든 면에서 발전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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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과 통일은 고성과 질긴 인연이 있다. 지금의 남고성과 북고성은 신라시대까지 다른 군이었다. 두 군의 ‘통일’은 고려 초에 처음 이뤄졌다. 지금의 남고성인 수성군을 간성군으로 개명하고 고성으로 불린 지금의 북고성까지 관할하게 한 것이다. 고려 말 간성과 고성은 다시 분리되어 조선 말까지 이어졌다. 일제시대에는 1914년 두 군을 합쳐 간성군이라고 부르다가 1919년 5월 고성군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6·25전쟁 후 옛 고성군은 북한, 간성군은 남한의 영역에 들어 또 다시 분단됐다. 양측은 일제 때 확립된 고성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사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옛 고성과 간성은 역사적으로 다른 행정 단위로 존재한 기간이 더 길었고, 합쳐졌을 때는 간성이라는 이름을 사용한 경우가 더 많았다. 한글과 인터넷 사용으로 강원도 고성(高城)과 경남 고성(固城)의 군명은 많은 불편과 혼동을 야기한다. 고성군 향토사가인 김광섭씨(고성향토문화연구회 이사)에 따르면 몽둥이 간(杆) 자는 간성을 표기하기 위해 만든 한자다. 산맥이 지렛대 모양이라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처럼 역사적 내력과 유래가 깊은 지명을 일제가 바꾼 것은 고성읍의 장전항이 더 쓸모가 있어서였을 것이다. 공교롭게 간성읍은 1919년 3월 17일 영동지방에서 처음으로 3·1만세운동을 벌여 미운털까지 박히지 않았을까.
“흥에 취해 다락에 기대니 돌아감을 잊었네”
<택리지>나 <동국여지승람>에 간성군과 고성군으로 따로 언급되는 고성은 경치가 천하제일이라는 영동 아홉 고을에 속한 만큼 아름답고 신비한 자연 풍광이 즐비하다. 남북 최고 명산이라는 설악산과 금강산 사이에 위치한 남쪽 고성은 산과 하천, 바다, 호수, 섬들이 어우러진 모습이 그윽하기 이를 데 없다. 이중환이 영동 아홉 고을을 일컬어 “골짜기가 그윽하고 깊숙하며 물과 돌이 많고 조촐하여 간혹 선인(仙人)의 이상한 유적이 전해 오기도 한다”라고 표현한 부분은 고성의 자연 환경과 딱 맞아 떨어진다. 드러난 명소도 그렇지만 감춰져 있는 비경이 더 많은 것이 고성의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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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발족한 고성향토문화연구회의 회원들에 따르면 고성팔경은 단지 밖으로 드러난 것일 뿐이다. 감춰져 있는 문화·관광자원이 더 많다는 얘기다. 옛 간성군의 진산인 향로봉(옛 지명 마기라산, 1296m)과 큰새이령[大間嶺] 일대, 고성산(297m) 자락의 수타사지와 관대바위(311m) 등 깊은 산의 비경과 팔곡 구사맹이 ‘수성팔절’로 꼽은 선유담과 능파대 등 해안 절경들이 그 예다. 수타사지는 고려 마지막 왕 공양왕의 비사와 절이 홍천으로 옮겨간 재미있는 사연을 간직하고 있다. 신라 화랑들이 노닐었다는 선유담과 화강암 해식의 기경을 이루는 능파대에는 많은 선인(先人)의 시문과 각자가 전한다.
고성은 비경을 바다 속에까지 감추고 있다. 능파대에서 조망되는 바다 속은 스킨스쿠버 다이버 사이에서 국내 3대 포인트 가운데 하나로 통한다. 문암2리 항구에서 1.1km 지점에는 ‘수중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비경이 있고, 3km 떨어진 낙산내기에도 엄청난 규모의 해저 장관이 숨어 있다고 한다. 낙산내기를 처음 발견했던 스킨스쿠버 다이버 이광수씨는 “마치 설악산이 그대로 물속에 들어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촌 인심보다 어촌 인심이 더 좋다”
영동 아홉 고을의 자연 조건이 모두 엇비슷하다지만 고성은 특별한 점이 더 있다. 공통점이라면 산맥과 바다 사이가 좁아 경치는 좋지만 생리가 박하다는 것일 터이다. 최근 영동지역이 겪고 있는 물 기근이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고성은 물이 마르는 일이 없다. 산이 깊고 골이 많기 때문이다. 영동지역에 잘 없는 ‘강’이라는 이름이 붙은 남강은 북고성으로 흐르는데, 남고성의 하천은 규모는 작지만 그 수가 많다. 향로봉에서 발원하는 북천은 고성의 젖줄이다. 그 아래위로 저진천, 명파천, 자산천, 남천, 문암천, 오호천, 토성천, 용촌천 등이 흐른다. 관아 안에만 4개의 우물과 3개의 못[三井四池]이 있었다는 옛 기록에서 볼 수 있듯이 샘이 많아 사계절 물 걱정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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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은 명태의 주산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명태도 도루묵도 거의 잡히지 않는다. 남획과 지구온난화에 따른 수온 상승도 원인이지만 일본과 러시아가 전에는 거들떠보지 않던 명태 잡이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이 더 큰 이유라고 한다. 고성군은 동해안 해양심층수 개발에 가장 먼저 뛰어들었는데, 이를 어족자원 고갈 극복에도 활용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황종국 군수는 “해양심층수를 이용한 한해성 종묘 배양장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최근 대구 치어 양식에 성공한 만큼 명태 치어의 생산·방류 가능성도 열려 있다.
동해안에서 섬이 가장 많은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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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의 또 다른 점은 동해안 군 가운데 가장 많은 섬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광개토대왕릉이 있다는 설이 제기돼 화제가 된 화진포 앞의 금구도를 비롯해 봉포섬, 죽도, 괘도, 저도, 백도, 가도 등이다. 죽도와 봉포섬(옛 지명 무로도)은 전죽이 좋기로 유명했고, 금구도와 죽도에는 옛 성곽 유적이 있다. 섬은 바다 경관을 아름답게 할 뿐 아니라 새의 보금자리가 되는 등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동녘의 다도해’라고 할 만한 해안은 고성의 자연을 더욱 신비롭게 하는 감초와 같다.
가는길/
동해고속도로로 현남나들목까지 와서 7번 국도를 타면 속초를 지나 고성에 이른다. 서울에서는 6번 국도에 진입해 양평 용두교차로→44번 국도→인제 한계삼거리→46번 국도→진부령 순으로 달리면 고성에 닿는다. 버스로는 서울 동서울터미널과 상봉터미널에서 간성 및 거진까지 3시간10분 소요된다.
연락처/
고성군청 문화관광과 033-680-3362
화진포관광안내소 033-680-3677
통일안보교육관(통일전망대) 033-682-0088
대진시외버스터미널 033-681-0404
맛집/
가진항활어회센터/ 죽왕면 가진항에 있다. 2호점에 삼숙이·잡어 매운탕과 물회가 인기 있다. 033-681-2504
먹고보세/ 간성읍 하리 6-9번지에 있다. 고성 특미인 도치 알탕과 두루치기, 아구·명태찜 전문이다. 033-682-5307
고향막국수/ 간성읍 교동리 402번지에 있다. 동치미 또는 육수가 특별한 고성식 막국수와 편육, 추어탕 등을 맛볼 수 있다. 033-681-3167
숙박/
하옵바위모텔/ 죽왕면 공현진리 1-2번지에 있다. 옵바위 일출을 찍으려는 사진작가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033-632-8803
바다추억/ 죽왕면 가진리 275번지에 있다. 가진항과 가깝고 장군바위 일출을 볼 수 있다. 033-681-0604
민박·펜션 사이트/ http://www.goseongminba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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