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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악몽은 현재진행형[기자수첩]

전재욱 기자I 2023.10.17 14:14:36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내년 11월이 전세계약 만기인데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 같아 불안하고 미칠 것 같습니다. 지난해 11월에 재계약을 했는데 전세 사기가 너무 많아 불안하더라고요. 그래서 전세 보증보험을 들어달라고 했는데 정 씨가 직접 나와서 ‘괜찮다. 내가 건물 한두 개 있는 것도 아니다’며 계약을 연장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8월부터 연락이 두절됐어요.”

수원 전세 사기 의혹 피해자인 이 모 씨는 올해 9월 자신이 사는 빌라에 대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은 뒤부터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현재 거주 중인 전셋집을 구하면서 전세 사기에 휘말리지 않으려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음에도 결국 자신도 피해자로 전락한 게 한스럽기까지 하다고 했다. 그는 약 1억9000만원에 전셋집 계약을 맺었고 이 중 1억원을 은행 대출을 받았다.

이처럼 임차인 대부분은 수천만원에서 수억원대 전세 대출을 받은 상태여서 정 씨로부터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고스란히 빚더미에 올라앉을 처지에 놓였다. 이번 ‘수원 전세사기 의혹’ 피해자가 속출하면서 전세사기 고소인은 134명, 피해액은 190억여원으로 파악된다. 피해액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경기도가 운영 중인 전세피해지원센터에는 400건 이상의 피해 사례가 접수됐고 도가 파악한 피해주택만 최소 정씨 일가 20여채와 관련 법인 20여채에 달한다. 피해자 10명 중 7명은 20~30대다.

서울 종로구의 한 모텔에서 빌라왕 김 모 씨가 숨진 채 발견된 게 딱 1년 전이다. 이어 서울 강서구와 인천 미추홀 구에서 전세 사기가 터졌다. 정부는 대책을 다섯 차례나 발표했다. 전세 사기 피해지원 특별법이 시행됐지만 전세 사기 악몽은 현재진행형이다. 경제적 약자인 청년과 서민의 주거가 흔들리고 있다. 국회는 특별법을 하루빨리 개정해 피해자 구제에 나서야 한다. 법으로 모든 전세 피해자를 구제할 순 없지만 젊은 임차인의 눈물을 닦아줘야 하는 게 사회적 책무가 아닌가. “돈이 없는데 어쩌라는 것이냐 내가 잘못한 게 아니라 나라가 잘못한 것이다”며 적반하장을 보인 정 씨의 행태를 두고만 볼 것인가. 이들에 대한 법적인 책임을 엄하게 묻는 것도 속히 필요하다.

지난 14일 서울 종로구 보신각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 피해자 집중 집회’ 참가자들이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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