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흐름 속에서 9일 최종현학술원(이사장 최태원 SK 회장)은 한국이 직면한 전략적 선택지를 본격적으로 분석한 ‘한미 원자력 협력 추진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핵심 쟁점을 △AI 기반 전력 수요 증가로 인한 에너지 인프라 확충 △글로벌 원전 시장 재편과 한국의 원전 설계·조달·시공(EPC) 역량의 전략적 활용 △핵연료주기 협력의 지정학적 의미와 정책적 선택지 세 축으로 정리했다.
우선 보고서는 미국이 300GW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을 선언한 배경으로 AI 시대의 최대 병목인 전력 공급 문제를 지목했다. 미국의 이번 결정은 사실상 전력 인프라 전면 재편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다. 손양훈 인천대 교수는 “미중 간 전력설비 격차가 빠르게 벌어지는 상황에서 전기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라며 “발전·송전·배전 등 전력 장치 산업 전반이 재편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한국의 원전 EPC(설계·조달·시공) 역량이 이미 글로벌 표준을 증명했다고 평가했다. 그는 “UAE 바라카 3·4호기와 새울 1·2호기만이 예산과 공정을 모두 지킨 유일한 프로젝트”라며 “혹독한 사막 환경에서도 성과를 낸 것은 APR1400의 설계·건설·운영 능력이 국제적으로 검증됐다는 방증”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또 한미 원자력 협력을 단순한 기술 교류 차원이 아닌 전략적 산업 생태계 구축 과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특히 협력의 핵심 축을 △핵연료주기 △대형 원전 설계·조달·시공(EPC) 및 운영·유지보수(O&M) △소형모듈원자로(SMR) 상용화 등 세 분야로 구분했다. 이 영역에서 실질적이고 구조적 파트너십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고순도 저농축우라늄(HALEU) 확보를 단기·중장기 국가전략의 최우선순위로 규정했다. 단기적으로는 미국 내 HALEU 생산시설에 한국 기업이 직접 참여해 기술·산업 협력을 조기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또 한미 규제기관 간 상시 소통 채널을 구축해 규제 표준화와 승인 절차의 속도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장기적으로는 한·미 공동 연구개발과 오프테이크(Off-take) 계약을 통해 핵연료 공급망의 안정성과 상용화 속도를 높여 글로벌 원자력 산업의 주도권을 확보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한국 SMR 기술력과 미국의 규제 신뢰성·시장 규모와 결합하면 ‘게임체인저’가 가능하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김무환 SK이노베이션 에너지솔루션 사업단장은 보고서에서 “SMR 확장을 위한 한미 협력은 산업 경쟁력 강화와 탈탄소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고 평가했다.
김 단장은 4세대 SMR의 경우 부지 제약을 크게 낮출 수 있고 재생에너지와의 보완적 운영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아울러 사용후핵연료 발생량도 기존 경수로 기반 SMR 대비 최대 3분의 1 수준으로 줄일 수 있어 운용 효율이 동시에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SMR 경쟁력에 대해서는 “세계 최고 수준의 대형 원전 공급망, 한수원의 EPC·운영 실적, 그리고 국내 산업계의 실수요가 결합된 매우 유리한 환경”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의 심사 절차 간소화 움직임을 언급하며 “규제 협력이 선행돼야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국 역시 미국 규제 체계 변화에 발맞춰 대응하고, 민·관 협력 채널을 강화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도입은 한미 연합 억제력 내에서 수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유지훈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은 “핵잠은 잠수함의 은밀성과 핵추진의 지속성을 결합한 전략 자산”이라며 “한국형 핵잠이 미 전략 자산의 공백을 보완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연합 수중전력의 ‘기동적 억제력’을 분담하는 구조로 설명해야 미국의 실질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행 측면에서도 현실적 가능성이 제기됐다. 함형필 한국국방연구원 안보전략연구센터장은 “핵잠 논의의 쟁점은 이제 ‘만들 수 있느냐’가 아니라, 어디에 배치하고 어떤 규제체계를 갖출 것인가로 이동했다”며 향후 과제로 △부지 선정 △지역사회 갈등 관리 △군 전용 원자로 안전 규제 마련 △사용후핵연료 처리 △국제원자력기구(IAEA) 안전조치 협정 준수 등을 제시했다. 그는 또 “2030년대 중반 대형함 사업이 종료되면 해군 예산 여력이 확대될 것”이라며 “1척당 2~5조원 수준으로 추산되는 한국형 핵잠 건조 비용은 감당할 수 있는 범주”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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