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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화기는 순찰차마다 ABC급 분말소화기가 비치돼 있지만, 주방화재나 전기차 배터리 등 금속 화재를 위한 K·D급 소화기는 없었다. 특히 올해 인천 청라동의 한 아파트와 경기 화성시에서 리튬 배터리 관련 대형 화재가 발생했지만, 이를 위한 금속 화재용 소화기 예산은 편성되지 않았다.
안전장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경찰은 매일 평균 273건씩 화재 현장에 출동한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해 112로 접수된 화재 관련 코드1~3 신고는 총 9만 9508건이었다. 경찰법과 경찰직무집행법상 경찰은 국민의 생명과 신체·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재난 상황이나 붕괴, 교통사고, 위험물의 폭발 등 위험상황이 있을 때 현장에서 피난 안내와 접근 제한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이에 따라 경찰은 큰 화재가 발생할 경우 소방과 공조해 현장을 통제하고 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화재 때문에 병드는 경찰은 꾸준히 나타나고 있다. 화재 관련 병가 사용 경찰은 2021년 9명, 2022년 10명, 지난해 11명으로 연평균 10명씩 발생했다. 실제로 지난해 9월 부산에서는 목욕탕 화재사고를 수습하던 경찰 3명이 상가 지하 1층에서 발생한 2차 폭발사고로 인해 얼굴과 팔, 손에 심한 화상을 입어 치료를 받았다. 이중 한 여성 경찰관은 화상으로 손가락이 붙어서 지금까지 병원 치료를 받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선 경찰들은 보호장비가 언제 동날지 몰라 사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 화성서부경찰서 소속 권모 경찰관은 “아리셀 공장 화재 때 지구대장이나 팀장들은 퇴근하지 못하고 매일 현장에서 상황을 지켜봤는데 일회용 마스크로는 연기가 해결되지 않아 후유증이 있었다”며 “지구대별로 10~20장 정도 마스크가 있지만 사용 후 보충이 빠르게 안되니까 웬만한 일이 아니면 쓰기 어렵다”고 말했다.
권씨가 제기한 문제는 아리셀 공장 화재 직후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지적됐다. 한 현직 경찰관은 “(지휘부는) 아무런 방독, 방화 장비도 없이 밥 먹는 시간 빼고 근무를 세웠다”며 “근무를 시킬 거면 최소한 몸을 보호할 수 있는 장비를 지급하고 시켜달라”는 내용의 게시글을 작성했다. 이에 대해 서울에서 근무하는 최모 경찰관은 “지구대별로 장비가 따로 지급되는 게 아니니까 상황은 여기도 대동소이하다”며 “소방이 올 때까지 경찰이 초기 불길 진압을 시도하거나 뒤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다치기도 하니까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경찰의 장비 정책을 현실에 맞게 손질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언제 어느 경찰서에 무엇이 필요한지 예측하기 어려워서 장비 보급에 애로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화재 현장에 출동하는 모든 경찰에게 똑같은 장비를 지급할 수 없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면서도 “지구대와 파출소의 10년 정도 화재 출동 통계 등을 분석해 그간 소홀했던 장비 부족분을 추가 보급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문현철 호남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경찰직무집행법상 경찰 직무에는 화재 현장 관리도 포함되므로 활동에 필요한 물품에 화재용 장갑이나 마스크 등이 포함되도록 장비 운영 체계를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