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핑성지 옛말, 상가 통으로 '임대' 딱지…"팔 수 있다면 20억도 깎죠"[르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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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경 기자I 2026.03.11 08:21:12

가로수길 곳곳 ‘임대 문의’…이태원 ‘통매각’
임대료 낮춰도 ‘텅 빈 점포’…상권 회복 더뎌
건물 내놔도 거래 ‘잠잠’…가격 눈높이 차 커
온라인 소비·고금리에…상가시장 회복 지연

[이데일리 김은경 기자] “상가 매물은 있는데, 살 사람이 없어서 문제죠.”

지난 6일 서울 지하철 3호선 신사역 8번 출구를 나서자마자 공실 상가가 눈에 들어왔다. 가로수길 초입에 있는 이 점포에는 유명 속옷 브랜드의 빛바랜 간판이 걸려 있었고 내부에는 빈 상자가 나뒹굴고 있었다. 언제부터 비어 있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방치된 모습이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공실 상가.(사진=김은경 기자)
골목 안쪽으로 들어가자 공실은 더 쉽게 확인됐다. 고개만 돌려도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은 점포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건물은 1층 소품가게를 제외하면 2층부터 5층까지 대부분 비어 있었다. 한때 ‘패션과 쇼핑의 성지’로 불리던 가로수길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음을 보여준다.

현장 중개업소들은 코로나19로 인한 타격 이후 상가 공실이 여전히 많은 상황이라고 입을 모았다. 가로수길 인근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요즘 들어 1층에 가게를 낼 상가를 찾는 손님이 조금 늘어난 것 같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공실이 많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코로나19 직격탄을 맞은 뒤로 상권이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상권 침체가 지난해부터 더 심각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인근 B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지난해 봄쯤부터 장사가 눈에 띄게 어려워졌다”며 “가로수길 메인 상권뿐 아니라 주변 골목 상권도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좋지 않아 체감 공실률은 50% 이상”이라고 설명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한 공실 상가에 임대 문의 안내문이 붙어 있다.(사진=김은경 기자)
이 탓에 임대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일부 건물주는 공실 장기화를 막기 위해 임대료를 조정하기도 하지만 신규 임차인을 찾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는 설명이다. 그는 “상가 주인들도 상황이 어려운 것을 알고 있어 임대료를 맞춰주겠다는 경우가 있다”며 “조건을 낮춰도 임차인을 찾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세로수길’로 불리는 인근 골목 상권은 상황이 조금 나은 편이다. 외국인 관광객 유입이 늘면서 일부 브랜드 매장을 중심으로 유동 인구가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아이웨어 브랜드 ‘젠틀몬스터’와 향수 브랜드 매장 앞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이 건물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C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세로수길 쪽은 중국인 관광객이 늘면서 조금씩 살아나는 분위기”라며 “‘메종 마르지엘라’나 ‘탬버린즈’와 같은 브랜드 매장과 팝업 공간이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면서 방문객이 늘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 한 공인중개업소에 상가 임대 안내문이 붙어 있는 모습.(사진=김은경 기자)
다만 일부 구간을 제외하면 상권 전반의 분위기는 여전히 침체한 상태다. 임대시장이 이처럼 어렵다 보니 건물 매각 역시 쉽지 않은 상황이다. D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대출이 많은 건물주 등 일부 건물을 팔려고 내놓은 사람들은 있지만 가격을 크게 낮추려는 경우는 많지 않다”며 “결국 가격 눈높이가 맞지 않아 거래가 잘 성사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 때문에 매각이 이뤄지지 않은 채 공실 상태가 길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 그는 “건물주들이 가격을 낮추지 못하는 건 상권의 장기적인 가치를 여전히 높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며 “건물을 그대로 보유하면서 다른 수입으로 대출 이자를 감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일부에서는 자금 부담 등을 이유로 가격을 낮춘 매물도 나오고 있다. 네이버부동산에 따르면 신사역 일대에는 한 병원 상가가 급매로 32억원에 매물로 올라와 있다.

다른 지역에서는 통매매 매물도 확인된다. 상가 공실률이 높은 이태원에서는 상가 건물 한 채가 통째로 매물로 나와 있었다. 현수막에 적힌 중개업소에 문의하자 중개사는 “현재 280억원에 매물로 나와 있지만 의사가 있으면 260억원 정도까지는 맞춰볼 수 있다”며 매수를 권했다. 이어 “리모델링하고 엘리베이터만 설치하면 향후 400억원 수준까지도 받을 수 있는 건물”이라며 투자 가치를 거듭 강조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가로수길의 한 공실 상가.(사진=김은경 기자)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 집합상가 공실률은 이태원 일대가 포함된 용산이 37.7%로 1위를 차지했다. 신사역 일대 공실률은 7.9%로 전년 동기(4.4%)보다 상승했다. 서울 전체 공실률도 9.3%로 전년 동기(9.1%) 대비 확대됐다.

전문가들은 상가 시장의 회복이 주거 시장보다 더디게 진행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소비 둔화와 자영업 경기 침체 영향으로 상가 공실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어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온라인 소비 확대와 높은 금리 부담이 맞물리면서 오프라인 상권의 수익성이 악화된 측면이 있다”며 “자영업자들이 대출을 통해 사업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금리가 높으면 운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자영업자의 수익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임대료 부담까지 더해지면 상가 운영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다만 상권별로 유동 인구와 콘텐츠 경쟁력에 따라 회복 속도는 크게 엇갈릴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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