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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승현 기자] 국정농단 사건으로 상고심 재판을 받고 있는 박근혜(67) 전 대통령이 ‘불에 데이고 칼로 베는 듯한’ 통증을 호소하며 형 집행 정지를 신청했지만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허리 디스크 증세에 따른 수형 생활의 어려움을 강조했지만, 현행 형사소송법상 형 집행 정지 사유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신청서를 받은 서울중앙지검은 조만간 심의위원회를 열어 박 전 대통령 형 집행 정지 신청 인용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다.
박 전 대통령 변호인인 유영하 변호사는 신청서에서 “경추 및 요추 디스크 증세 등이 전혀 호전되지 않았다”며 “불에 데인 것 같은 통증과 칼로 살을 베는 듯한 통증, 저림 증상으로 정상적인 수면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신청 이유를 밝혔다. 또 “접견을 통해 살펴온 박 전 대통령의 건강 상태 등을 고려할 때 구치소 내에서는 치료가 더 이상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현행 형사소송법 471조에 따르면 수형자 집행 정지 사유는 △형 집행으로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는 때 △연령이 70세 이상인 때 △임신 후 6개월 이상인 때 △출산 후 60일을 경과하지 않은 때 △직계존속이 연령 70세 이상 또는 중병이나 장애인으로 보호할 다른 친족이 없는 때 △직계비속이 유년으로 보호할 다른 친족이 없는 때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는 때 등이다.
검찰은 이를 위해 위원장 1명을 비롯해 5~10명 규모의 심의위원회를 구성해 형 집행 정지 요건 부합 여부를 판단한다. 위원장은 서울중앙지검 공판부를 관할하는 박찬호 2차장 검사가 맡는다. 위원들은 학계와 법조계, 의료계, 시민단체 인사 등으로 구성된다.
이후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위원회 심의 결과를 토대로 형 집행 정지 여부에 대한 최종 결정을 내린다.
핵심은 박 전 대통령의 현재 건강상태가 ‘현저히 건강을 해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는 염려가 있는 경우’ 요건에 해당하는지다. 법조계에선 이 요건에 대해 암 말기 등 건강이 극도로 악화돼 정상적인 수형 생활이 불가능할 때 적용된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지난 2013년 ‘이대생 청부 살인’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받았던 영남제분 회장의 전 부인 윤모(73)씨가 유방암 등을 이유로 형 집행 정지를 받고 호화 병실생활을 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을 빚은 바 있다.
검찰은 이후 형사소송법을 개정, 2015년부터 심의위원회를 통해 형 집행 정지 여부를 엄격하게 판단하고 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박 전 대통령이 호소하는)허리통증이나 수면장애 등 사유로 형 집행 정지를 결정하면 비슷한 수준의 질병이 있는 다른 수형자들이 잇따라 형 집행정지 신청할 가능성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주장한 정치적 책임 부담과 국민통합 등의 사유는 집행 정지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다. 검찰 내부에선 박 전 대통령의 건강상태가 아닌 다른 정치적 사유는 고려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강조하는 분위기인 것으로 전해졌다.
금태섭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법무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형 집행 정지 결정자는 2013년 231명, 2015년 268명, 2016년 247명, 2017년 245명으로 집계됐다. 지난 2016년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징역 2년 6월의 징역형이 확정된 후 신경근육계 유전성 희귀 질환 등으로 3개월의 형 집행 정지를 받은 바 있다. 당시 검찰은 “이 회장의 병세를 감안하면 형 집행시 현저히 건강을 해치거나 생명을 보전할 수 없을 염려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