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뿐만 아니다. 스웨덴 볼보는 왜건 지상고를 높여 ‘크로스 컨트리’라는 장르를 새롭게 만드는가 하면, 독일 포르쉐는 기함 파나메라의 뒷 꽁무니를 더 늘린 스포츠 투리스모를 내놓기도 했다. 출퇴근 길마다 스마트폰 자동차 섹션을 즐겨보는 마니아가 아닌 이상 이런 차량들을 명확히 구분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자동차 제조사들이 이렇게 다양한 ‘짬뽕’ 모델을 내놓는 이유는 간단하다. 한 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한 가지 플랫폼을 고지식하게 7-8년 동안 파는 시대는 오래전에 지나갔다. 기술의 발전과 기술자들의 숙련도 향상으로 자동차 공장은 한 라인에서 여러 종류의 차량 조립이 가능해졌다. 르노삼성 부산 공장의 경우 한 라인에서 7개의 차종을 혼류 생산 할 수 있다.
이런 흐름을 선도한 회사 중 하나가 독일의 BMW다. 기술력으로 최정상급으로 평가 받는 BMW는 지난 2007년 ‘쿠페형 SUV’인 X6를 세상에 내놓았다. 베스트셀러 X5의 C필러 디자인을 가다듬고, 실내를 4인승으로 만들었다. 적재 공간을 최대한 크게 활용해야 할 기존 SUV와는 정반대다. 주행성능 또한 독특하다. SUV의 필수 과제와도 같았던 험로 주파 능력보다 온로드와 도심 주행에 초점을 맞춘 설정으로 시장 공략에 나섰다.
초창기 X6의 반응은 상반됐다. 지금이야 경쟁사 메르세데스 벤츠를 포함한 다수의 유럽 브랜드가 쿠페처럼 늘씬한 SUV를 만들지만 당시에는 독보적이었다. 불편한 공간과 범용성에 대해 지적하는가 하면 투박하지 않고 멋진 SUV를 만날 수 있다는 긍정적인 반응도 나왔다.
정체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와 다르게 X6는 출시와 함께 ‘대박’을 쳤다. 본고장 유럽에서 데뷔한 2008년에만 1만3000여대가 팔렸다. 다음해엔 2만대에 가까운 1만9805대를 기록했다. 이미 X6 단일 판매량이 경쟁모델 메르세데스 벤츠 M클래스에 필적하는 수준으로 X5가 합세할 경우 프리미엄 SUV 왕좌를 넘볼 자가 없었다. X6의 성공은 형제차 X5의 밥그릇을 뺏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시너지를 일으키며 시장 주도권을 완전히 거머줬다.
X6로 재미를 본 BMW는 본격적으로 시리즈 재정비에 나섰다. 그동안 구분이 애매했던 홀수 시리즈와 짝수 시리즈가 명확히 나뉘어 졌다. 고성능 M시리즈의 상징과도 같았던 M3는 더이상 M3가 아닌 M4로 불리게 되는 등, 쿠페와 컨버터블은 짝수로, 세단과 웨건 등은 홀수로 분류됐다.
세단 라인업과 매 한가지로 X시리즈는 빈 공간을 메웠다. 2014년 등장한 X4는 X5·X6 듀오처럼 X3를 기본으로 재탄생했다. X1을 제외한 X시리즈는 모두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 위치한 스파르탄버그 BMW 공장에서 만든다. 스파르탄버그 공장의 연간 최대 생산 규모는 45만대. X4의 등장과 인기에 힘입어 2016년 이 공장의 생산대수는 90%가 넘는 41만대까지 올랐다. 이 정도면 풀가동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4년동안 판매된 1세대 X4는 전세계에서 20만대가 팔리면서 ‘잘 달리는 SUV’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현재 풀체인지된 신형 X4가 공개된 상태다. 올 10월 국내 출시를 앞두고 있다.
BMW의 도전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해 10월 독일에서 새로운 소형 X시리즈인 X2를 공개하며 퍼즐을 완성했다. X2의 등장으로 대형부터 소형까지 아우르는 짝수 X시리즈가 완성됐다. 내년에 등장할 초대형 플래그십 X7과 X8만 남았다.
X2는 X1과 함께 X시리즈 중 유일하게 앞바퀴로 굴린다.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 그리고 신형 1시리즈 해치백과 동일한 플랫폼이다. 전륜구동이지만 차량의 특성은 BMW 특징을 그대로 뽐낸다. BMW에 따르면 X2는 전 모델에 M스포츠 서스펜션을 기본 적용한다. X1보다 단단한 제품이 쓰여 보다 역동적인 주행감을 선사한다. 마치 ‘핫해치’ 처럼 말이다. 여기에 반자율주행과 파킹 어시스트 등 BMW의 첨단 기술이 아낌없이 들어간다. 내년 3월 한국 땅을 밟을 전망이다. 가격은 미정이지만 내심 엔트리 모델이 5000만원대 초반이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