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송영두 기자] 글로벌 다중암 조기진단(MCED) 선두주자 GRAIL의 대규모 임상이 1차 평가지표를 충족하지 못하면서 글로벌 액체생검 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일각에서는 MCED 사업 자체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회의론도 제기된다.
하지만 국내 관련 업계에서는 이번 결과를 산업 전반의 실패로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는 게 중론이다. 임상 설계 구조와 기술 접근 전략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으며 오히려 그레일 대비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을 부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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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지표’ 설계 한계…위양성 줄이려다 민감도 낮아져
최근 그레일은 영국 국민건강서비스(NHS)와 공동으로 다중암 조기진단 제품 갤러리(Galleri)의 대규모 무작위 대조 임상 ‘NHS-Galleri’ 최종 결과를 공개했다. 이번 연구는 50~77세 무증상 성인 14만2000여명을 대상으로 3년간 갤러리 검사의 인구집단 수준 효과를 평가한 시험이다.
이번 임상의 1차 평가지표는 갤러리 검사를 받은 군에서 말기(3~4기) 암 발생률 감소 여부였다. 결과적으로 통계적으로 유의한 3~4기 암 발생률 감소는 관찰되지 않았다. 그레일에 따르면 4기 암 발생은 줄었지만 3기 암 진단이 늘어나면서 1차 지표를 충족하지 못했다.
그레일은 삼성물산(028260)과 삼성전자(005930)가 1억1000만달러(약 1600억원)를 투자한 유망 액체생검 기업으로 다중암 조기진단 분야의 글로벌 선두주자로 평가받아왔다. 하지만 이번 임상 결과로 적지 않은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임상 결과 발표로 주가도 급락했다. 문제는 이번 결과가 액체생검 기반 다중암 진단 시장 전체가 한계에 직면했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영국 NHS 기반 연구는 MCED를 기존 검진을 보완하는 보조 수단이 아니라 사실상 1차 관문으로 단독 적용한 구조였다. 내시경이나 CT 같은 기존 검사를 먼저 시행하는 방식이 아니라 혈액 기반 MCED 검사를 선별 단계에 두고 양성 판정을 받은 사람만 추가 정밀검사를 받도록 설계됐다.
이 경우 가장 중요한 변수로 위양성(False Positive)이 꼽힌다. 실제 암이 없는데 암이 있다고 판정되면 추가 영상검사와 조직검사로 이어지면서 의료비 부담과 의료 시스템 과부하, 환자 불안이 커질 수 있다. 특히 영국과 미국처럼 의료비가 높은 환경에서는 위양성 1건당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이 상당하다.
이 때문에 그레일은 위양성을 극도로 낮추는 전략을 택했고 특이도(암이 없는 사람을 정상으로 정확히 판별하는 능력)를 99% 이상으로 끌어올렸다. 다만 특이도를 극단적으로 높이면 반대로 민감도(암 환자를 찾아내는 능력)는 낮아질 수밖에 없다. 실제 이번 설계에서 민감도는 약 70% 수준에 머물렀다. 이는 100명의 암 환자가 있을 경우 약 30명은 검사가 놓칠 수 있다는 의미다.
결국 이번 임상은 위양성을 최소화하는 대신 일부 조기암을 놓칠 가능성을 감수한 구조였다. 이런 조건에서 3~4기 암 진단 비율 감소라는 높은 문턱의 1차 평가지표까지 충족해야 했던 만큼 통계적으로 성공 난도가 높았다는 분석이 나온다.
국내에서 그레일과 유사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지씨지놈 측은 “암 진단율 증가나 치료 개입 효과, 장기 생존율 개선 등 다른 지표를 설정했다면 해석이 달라졌을 가능성도 있다”며 “반복 검진과 장기 추적 데이터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아이엠비디엑스 관계자 역시 “엔드포인트 미충족은 아쉽지만 단기 결과만으로 MCED 사업성을 부정하기는 어렵다”며 “장기 데이터 공개가 핵심”이라고 언급했다.
실제로 그레일 측 자료에 따르면 가장 치명적인 12대 암의 경우 연속 검진을 통해 4기 진단율을 20% 이상 낮추는 성과를 거뒀다. 표준 검진 대비 암 검출률은 4배 높았다. 이는 단발성 검사가 아닌 정기적인 액체생검이 암 사망률을 낮추는 실질적 도구가 될 가능성을 시사한다는 게 관련 업계 중론이다. 그레일은 장기 데이터를 따로 발표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흔들리는 선두기업…지씨지놈·아이엠비디엑스는 기회
그레일이 MCED 분야에서 선두를 달려온 것은 분명하지만,이번 임상 결과로 인해 국내 기업들이 반사 기회를 맞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씨지놈(340450)과 아이엠비디엑스(461030)는 모두 액체생검 방식을 활용한다는 점에서는 유사하지만 암을 찾아내는 세부 기술 구조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그레일의 갤러리는 주로 유전자 메틸화(Methylation) 패턴을 분석한다. 이는 암세포 특유의 유전적 스위치 상태를 확인해 암 발생 부위(종양 기원)를 예측하는 데 강점이 있다.
반면 지씨지놈 아이캔서치는 프래그먼토믹스(Fragmentomics) 기술을 핵심으로 한다. 지씨지놈 관계자는 “혈액 속에 떠다니는 암세포 유래 DNA(cfDNA)의 절단 패턴과 조각의 크기 등을 저밀도 전장 유전체 분석(lcWGS)을 통해 파악한다”며 “이 방식은 아주 미세한 양의 암 신호를 포착하는 민감도가 뛰어나고 암종 확장이 용이하다는 점이 강점”이라고 설명했다.
아이캔서치는 특이도를 95% 수준으로 유지하면서도 민감도를 80% 이상으로 끌어올렸다는 게 지씨지놈 측의 설명이다. 이에 따라 MCED를 시행하지 않는 군과 비교했을 때 암을 더 이른 단계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높다는 주장이다.
아이엠비디엑스 캔서파인드(CancerFind)는 단일 신호가 아닌 다층 신호 기반 앙상블 모델을 적용한다. △평균 메틸화 비율(Average Methylation Fraction) △복제수 비율(Copy Number Ratio) △DNA 단편 크기 비율(Fragment Size Ratio) 등을 통합 분석하는 암 시그니처 앙상블(Cancer Signature Ensemble) 모델을 활용한다. 단일 지표가 아닌 복수의 생물학적 신호를 통합해 성능을 끌어올렸다는 설명이다.
아이엠비디엑스는 아종을 포함한 50개 암종(발생 장기 기준 18개 암종)을 대상으로 하되 임상 데이터와 통계적 유의성을 확인하며 단계적으로 확장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아이엠비디엑스 관계자는 “새로운 암종 패널을 설계할 때 기존 데이터까지 재확인해야 하는 구조가 아니라, 동일 데이터 기반에서 유연한 확장이 가능하다”며 기술적 확장성을 경쟁력으로 꼽았다.
특히 아이엠비디엑스는 MCED뿐 아니라 미세잔존질환(MRD) 영역도 병행 개발하고 있다. MRD는 치료가 끝난 뒤에도 몸 안에 극소량 남아 있는 암세포를 의미한다. 영상검사(CT·MRI)나 일반 혈액검사로는 확인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나면 재발로 이어질 수 있다.
아이엠비디엑스 관계자는 “MCED와 MRD는 모두 조기 진단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갖고 있다”며 “그레일이 다루지 않는 영역까지 확장할 수 있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 업계에서는 MCED 산업의 최종 승부는 장기적으로 사망률 감소를 입증할 수 있는 데이터 확보 여부에 달려 있다고 보고 있다. 다만 단기적으로는 어떤 생물학적 신호를 얼마나 정교하게 통합하느냐가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변수로 떠오르고 있어 국내 기업들에도 충분히 경쟁력을 입증할 기회가 열리고 있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