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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론 머스크가 짓고 있는 초대형 반도체 공장의 문이 한국 장비 업체에도 열렸다. 그동안 웨이퍼를 만든 뒤 자르고 포장하는 후공정 작업은 대부분 대만 업체 몫이었는데, 이 관행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한미반도체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 태세다. 곽동신 회장은 이번 계약을 발판으로 공급 품목을 더 늘리는 방안을 테라팹 측과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제조에 쓰이는 열 압착(TC) 본더가 다음 타깃으로 거론된다. 이런 행보는 갑작스러운 게 아니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6월에도 스페이스X 주식을 500억원어치 사들인 바 있다. 회사 측은 AI 산업이 데이터센터를 넘어 위성통신과 우주 데이터센터로까지 뻗어나갈 가능성에 대비한 선제 투자라고 설명했는데, 이번 테라팹 계약 역시 머스크가 그리는 AI·우주 생태계 안에서 한미반도체가 자리를 넓혀가는 흐름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테라팹이 어떤 프로젝트인지 보면 이번 계약의 무게가 더 실감난다. 머스크는 테슬라와 스페이스X에 쓸 AI 반도체를 직접 만들기 위해 미국 텍사스에 이 공장을 짓고 있다. 로직 반도체부터 메모리, 패키징, 테스트까지 한 곳에서 다 처리하는 수직계열화 구조를 목표로 하며, 2029년 첫 가동을 계획하고 있다. 투입되는 돈만 최대 1190억달러, 우리 돈으로 약 160조원에 달해 미국 반도체 산업 역사상 최대 규모로 꼽힌다.
이미 올해 2분기 테라팹은 ASML과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 램리서치, 도쿄일렉트론 같은 세계적인 장비업체들에 전공정 장비를 대거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한미반도체 계약은 그다음 단계, 즉 후공정 장비 발주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지금까지 미국 반도체 기업들은 웨이퍼 생산 이후의 패키징·테스트 공정을 대만에 크게 의존해왔다. 그런데 AI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미국 정부가 공급망을 자국 안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책을 펴면서, 이 틈을 한국 기업들이 파고들 여지가 생겼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테라팹이 후공정 장비 발주 단계에 들어서면서 국내 패키징 장비업체 앞에 새로운 시장이 열리고 있다”고 말했다.
<마켓잉크 김건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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