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유환구 기자] 지난 15일 오후, 금융투자협회가 기자들에게 긴급 메신저를 돌렸다. "내일 금융투자업계의 친서민정책과 사회공헌방향에 대한 브리핑을 하겠다"는 내용이었다.
하루뒤 16일 오전 10시 금투협 브리핑룸. 황건호 회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현장에는 금투협 뿐 아니라 한국거래소, 예탁결제원, 증권금융, 코스콤 등 증권유관기관 임원들도 배석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 축사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화두를 내건 지 한 달. 금융투자업계는 이날 `따뜻한 자본시장`이라는 슬로건으로 이에 맞장구를 쳤다.
중소기업이나 서민층 등 자본시장에서 소외되기 쉬운 이들에게도 골고루 온기가 전해지도록 하겠다는, 정부의 이른바 `친서민 정책`에 대한 화답인 셈이다.
발표 내용에 따르면 사회공헌 활동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금융투자업계 사회공헌협의회`가 신설된다. 거래소는 200억원 규모의 가칭 `국민행복재단`을 설립해 금융교육 및 장학 사업을 추진키로 했다.
예탁결제원은 120억원인 `나눔재단` 기금 규모를 200억원으로 확대해 저소득층 학비 지원과 이주여성 고향방문을 지원한다고 밝혔다. 금투협은 미취업 청년들을 위해 1100명 규모의 무료 금융자격시험대비 강의를 제공할 계획이다.
그런데 이를 바라보는 금융투자업계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차가운 자본시장`을 바라서가 아니다. 이번에 발표된 계획의 대부분은 기존에 해오던 일들의 `규모`를 확대하겠다는 수준 정도다. 말하자면 재탕이거나 혹은 확대된 `2.0 버전`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물론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 해오던 일을 업그레이드 정도 해놓고 급하게 기자 브리핑하는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금융투자업계 A씨는 "그동안 이쪽 업계가 해오던 사업들을 총정리했을 뿐 특별히 새로운 얘기는 없었다"며 "좋은 일에 돈을 많이 쓰겠다는 것은 칭찬할 일이지만 참신한 사업이 없어서 생색내기에 그친 느낌"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새롭게 선보인 사업도 급조한 느낌이 들었다. 대표적인 것은 금융투자협회의 공익형 금융투자상품. 금투협은 "펀드 판매보수(수수료) 할인 등을 통해 서민이 자본시장을 활용해 자산 형성을 할 수 있는 금융투자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개인신용등급이 6~7등급 이하 저소득, 저신용 계층에게 판매수수료와 판매보수를 할인해주는 적립식 펀드이며 판매수수료와 보수 할인률은 금융회사가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이 펀드에 대한 운용업계의 반응은 "공정한 사회를 위해 저소득층의 종합부동산세를 완화해 주겠다는 발상"이라는 냉소로 요약된다.
운용업계 B씨는 "적립식펀드에 가입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이들을 저소득층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부터 의문"이라며 "게다가 펀드에 가입했다 손해가 나면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데 정부가 손실 보전이라도 해주겠다는 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운용업계 C씨는 "앞으로는 C1, C2 이런 클래스처럼 저소득층 펀드라는 의미의 CL(Class Low)을 만들어야 하는 거 아닌가"라며 "저소득층의 돈만 모아서 따로 펀드를 만든다는 게 실제로 가능할 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구체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찬바람이 불기 전에 `따뜻한 자본시장`을 구현하고 싶었던 것일까. 광범위한 논의와 지혜를 모으는 과정이 좀 더 필요한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다. 좋은 의도의 계획인 만큼 실효성있는 아이디어가 더욱 아쉽다. 친서민 정책이 구호에만 그칠 게 아니라면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