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 코인 62만개 뿌려도 정부감독 1년 한번뿐…규제공백 참사”

최훈길 기자I 2026.02.09 10:01:00

서은숙 교수, 빗썸 사태 후속대책 제언
외국은 실시간 자산 모니터링하는데
우리는 年 1회 외부 감사로 체크할뿐
삼성증권 때와 다른 규제공백 사고
해외처럼 실시간 준비금 증명 필요
금주 금융위·민주당 법안 협의 주목

[이데일리 최훈길 기자] 디지털자산(가상자산) 거래소 빗썸이 실제 보유량을 웃도는 62만개 비트코인을 잘못 지급한 사고와 관련해, 학계에서 이번 사태를 정부의 제대로된 관리·감독 부재에서 비롯된 ‘규제 공백’ 참사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서은숙 상명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9일 ‘YTN 뉴스START’에 출연해 “이번 사고는 이른바 ‘페이퍼 코인(paper coin)’이라고 부르는 유령 비트코인 62만개가 오지급 된 사건”이라며 “수십조원의 고객 자산을 관리하는 가상자산거래소에 은행이나 증권사에서 적용되고 있는 내부통제 규정이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것은 명백한 규제 공백”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가상자산거래소 빗썸이 랜덤박스 이벤트 당첨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단위를 잘못 입력해 비트코인 62만개를 오지급하는 초유의 전산 사고가 발생했다. 사고는 지난 6일 오후 7시 진행된 랜덤박스 이벤트에서 이용자에게 2000원~5만원 상당의 보상을 지급해야 했지만, 일부 당첨자에게 비트코인 2000개가 잘못 입력됐다. 이로 인해 249명에게 총 62만개 비트코인이 지급됐다. 당시 시세 기준 60조원에 이르는 규모다. 빗썸은 대부분 물량을 회수했다고 밝혔지만, 8일 현재까지 비트코인 125개(약 123억원)는 아직 회수되지 못했다. 금융당국은 현장점검반을 급파해 사고 경위와 내부통제 미비 여부를 집중 점검하고 있다. 사진은 8일 서울 강남구 빗썸라운지 삼성점의 모습. (사진=이데일리 노진환 기자)
관련해 서 교수는 2024년 7월 시행된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한계도 지적했다. 해당 법에 따르면 거래소가 고객 코인을 자기 돈처럼 쓰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 이용자 자산과 거래소 고유 자산을 반드시 분리 보관해야 한다.

해킹·전산 오류 발생 시 대규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고객 가상자산의 80% 이상을 콜드월렛(Cold Wallet·인터넷과 분리된 오프라인 지갑) 에 보관해야 하고, 핫월렛(Hot Wallet·온라인 지갑)은 20% 이내 보관하도록 규정돼 있다.

이에 대해 서 교수는 “(이렇게 이행하는지) 실제 준수 여부는 연 1회 외부 감사로만 확인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는 “외국 같은 경우에는 프루브 오브 리저브(Proof of Reserves·PoR)라고 해서 보관하고 있는 상태를 증명서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며 “(우리나라는 연 1회 외부 감사일뿐) 실시간 모니터링이 없다”고 지적했다.

해외에서 적용되는 ‘준비금 증명’(Proof of Reserves·PoR)은 가상자산거래소 등이 고객 자산만큼의 코인을 실제로 보유하고 있음을 암호학적·기술적으로 실시간 증명하는 시스템이다. 잔고를 매일 공개 장부로 확인할 수 있는 셈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연 1회 외부감사만 진행하기 때문에 장부상 존재하는 유령 코인이 실제 보관량보다 많아도 연중 대부분 제대로 알 수 없다.

6일 오후 7시30분 이후 매도 물량이 나오면 빗썸 내 비트코인 시세는 다른 거래소 시세(9800만원대)보다 17%가량 낮은 8110만원까지 급락했다. 빗썸은 지난 7일 피해보상 대책 발표를 통해 이번 사고 시간대 매도 거래 중 사고의 영향으로 저가 매도한 고객에게 매도 차액 전액과 10% 추가 보상(110%)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해당 시간대 빗썸에 접속한 모든 고객에게 2만원 상당의 보상을 제공하고, 9일부터 일주일간 전 고객을 대상으로 거래 수수료 0% 혜택을 적용할 예정이다.(사진=빗썸)
또한 서 교수는 이번 유령 코인 사고가 2018년 삼성증권 유령 주식 사고와 비슷하지만 다른 점도 있다고 짚었다. 앞서 당시 삼성증권에서 담당자의 입력 실수로 직원들에게 주당 배당금을 1000원씩 지급하려다 1000주씩 지급하는 일이 있었다.

서 교수는 “삼성증권 사고는 주식시장이라는 규제된 시스템 안에서 사고가 났고 금융감독원이 즉시 개입을 해 사고가 크게 확장되지 않다”며 “반면 빗썸은 가상자산이라는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사고가 났다”고 지적했다. “당시 삼성증권 사고 때는 자본시장법이 적용이 됐지만 지금 가상자산은 이에 준하는 규제가 현재 없는 상태”라는 지적이다.

정부·여당은 빗썸 후속대책으로 관련 법안을 논의할 예정이어서 해외에서 적용되고 있는 ‘준비금 증명’(PoR) 같은 실시간 모니터링 등이 다뤄질지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과 금융위원회는 이번 주에 디지털자산기본법 여당안 등에 대한 제도 개선 협의를 진행한다.

금융위는 △은행 지분 50%+1주를 통한 은행 중심 컨소시엄 구성 △디지털자산거래소 대주주 15~20% 지분 규제 △금융회사에 준하는 내부 통제기준 기준 의무화 △외부기관을 통한 가상자산 보유 현황 정기 점검 △전산사고로 인한 이용자 피해 발생 시 무과실 책임 규정 등을 디지털자산기본법에 반영할 계획이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8일 열린 금융정보분석원(FIU)·금융감독원과 긴급점검회의에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가상자산거래소의 내부통제 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점이 드러난 만큼, 빗썸뿐만 아니라 모든 거래소의 내부통제 전반을 점검하고 적절한 내부통제 체계를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민주당 디지털자산태스크포스(TF) 간사인 안도걸 의원은 통화에서 “정부는 은행 51%룰·코인거래소 지분 규제에 별도의 정부입법을 하겠다는 단호한 입장이지만, 가능한 한 정부여당 합의안을 만들어 의원 입법으로 추진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거래소의 내부 거버넌스가 중요하고 민주성, 투명성 확보가 필요하다”며 “시장에서 수용 가능하고 정책당국의 입장도 아우를 수 있는 합의안을 설 연휴 이전에는 마련해보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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