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우 대전시장 “홍범도장군로(路) 아닌 현충원로가 맞다”
보훈·시민단체들 “명예도로를 이념논쟁에 끌어들여” 맹비난
정용래 유성구청장 “도로명은 구청장 권한…절대 변경없다"
| 이장우 대전시장이 11일 대전시청사에서 열린 주간업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대전시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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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이데일리 박진환 기자] 대전에서 때아닌 역사논쟁이 벌어지면서 이념·정파를 넘어 지역사회가 극열한 대립양상을 보이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대전 유성구에 위치한 국립대전현충원 앞 명예도로인 ‘홍범도장군로(路)’에 대한 폐지 여부이다. 이 논란에 불을 붙인 당사자는 이장우 대전시장으로 그는 지난 7일 시정브리핑 자리에서 “이념적인 문제가 아니라 홍 장군 삶의 궤적이 국가관과 가치에 맞는지 명확히 재조명하는 게 우선돼야 한다”며 “공보다 과가 많다고 판단될 경우 (국립대전현충원 앞에 지정된) 홍범도 장군로는 없어져야 할 것”이라며 폐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후 지난 11일 주간업무회의에서는 “독립운동을 했던 분이라 하더라도 객관적인 평가로 공과 사를 명확히 재조명해야 한다. 그런데 자꾸 이 부분을 곡해하는 분들이 있다”며 “대전현충원은 어느 한분만을 위한 곳이 아니라 국가를 위해 헌신하신 모든 분을 기리는 곳이기에 현충원 앞 도로명은 현충원로가 맞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 대전 유성구 현충원역 앞 홍범도장군로 표지판이 설치돼 있다. (사진=뉴스1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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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장의 발언이 전해지자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등 보훈·시민단체를 비롯해 정치권과 대전 유성구 등 지자체에서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 대전모임은 지난 12일 논평을 통해 “명예도로 이름을 이념논쟁에 끌어들여 논란을 키우는 행위는 비판받아 마땅하고 시민들은 사실과 부합하지 않는 주장을 하고 있는 이 시장의 자질을 의심하고 있다”고 이 시장을 강력 비판했다. 대전시민사회단체연대회도 지난 11일 논평을 내고 “이장우 시장의 홍범도로 폐지 발언은 그의 얄팍한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광역단체장으로서의 무게감을 인지하고 경솔한 발언을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지난 10일 홍범도 장군 묘역을 참배한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역시 “윤석열정부도 (홍범도) 장군 독립투쟁과 업적을 부정하지 않는데 대전시장이 장군의 이름을 딴 도로명을 지우겠다는 정신 나간 발언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 홍범도장군기념사업회가 10일 홍범도장군로 시민 걷기대회를 연 가운데, 이날 오후 걷기대회에 참가한 대전시민들이 홍범도장군로를 거쳐 대전현충원에 도착해 홍범도 장군묘역까지 걸어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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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도 홍범도 장군의 흠집내기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지난 11일 대전시민 500여명은 대전 유성구에 있는 홍범도장군로를 걸으며 흉상 이전 철회를 촉구했다. 이들은 이날 홍범도 장군 기념표지판이 있는 대전 유성구 도시철도 1호선 현충원역 앞에 모여 국립대전현충원까지 이어지는 4㎞를 걸으며 “흉상 이전을 철회하라”를 외쳤다. 이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은 “조국 광복을 위해 목숨 바치신 분의 업적을 이념 논리로 깎아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는 의견을 전했다. 이날 걷기대회에 참석한 정용래 대전 유성구청장은 “2년여 전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대전에 모셔 오며 많은 시민의 의견을 받들어 명명한 길”이라고 전제한 뒤 “유성구 안에 있는 도로명은 전적으로 구청장의 권한이니 절대 바뀔 걱정 하지 않으셔도 된다”며 도로명 명칭 변경에 대해 절대 불가 입장을 거듭 밝혔다. 대전 유성구는 2021년 홍범도 장군 유해가 대전현충원에 안장된 것을 계기로 국립대전현충원 앞길을 ‘홍범도장군로’라는 이름의 명예도로로 지정했다. 유성구 관계자는 “일반도로명과 달리 명예도로명은 5년간 사용할 수 있으며, 만료 30일 전 재심의를 거쳐 연장이 가능하다. 부여권한은 구청장에게 있어 광역단체장은 이를 변경할 권한이 없다”고 설명했다.
홍범도 장군과 관련된 논란이 확산되자 지역사회의 극단적 분열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지역 정치권 인사들은 “이 시장과 달리 김태흠 충남지사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 이전 문제가 불거지자 ‘홍범도 장군은 독립운동 영웅 ’이라며 흉상 이전 불가를 외쳤다”며 “결국 충남은 지역 여론의 분열 없이 도정 운영에 힘이 실리는 반면 대전은 향후 현안사업 추진에서도 지역 여론의 분열에 따른 동력 자체가 약화될 가능성도 적지 않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