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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장관은 “아주 직설적이다. 뭐 하다가 불리하면 그 자리에서 일어난다”며 “표정 한번 안 변하고 일어나면 제가 가서 ‘잠깐만’ 이렇게 했던 과정들이 몇 번 있었는데 협상할 때는 아주 직설적이고 터프하다”고 표현했다.
이어 “러트닉 장관이 갖고 있는 미국을 위한 열정, 그 애국심 그런 부분들은 참 존경스러울 만했다”면서도 분위기가 반전된 순간은 9. 11 추모식 이후였다고 설명했다.
김 장관은 “9·11 (테러) 때 러트닉의 동생과 (회사) 직원들이 쌍둥이 빌딩에서 근무해서 다 사망하는 비극이 있었다”며 “제가 하루는 러트닉에게 ‘당신은 억만장자인데 왜 그렇게 열심히 사느냐’고 했더니 9·11 이야기를 해주면서 자신은 ‘동생과 같이 근무했던 직원들의 몫까지 다 살아내야 한다. 그래서 (열심히) 한다. 9·11 때마다 추도 예배를 한다’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협상이 제일 어려울 때가 9월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9월에 ‘도저히 3500불 현금으로 못 하겠다. 외환시장이 무너진다’ 통화 스와프도, 분납 이야기도 했더니 답이 없었다. 심지어는 우리 협상단이 가서 뭐 하려고 했는데 만나주지도 않았다”며 “실무자들끼리 미팅도 안 되고. 제가 문자를 드리면 답이 오는데 답도 안 왔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김 장관은 러트닉 상무장관에게서 들은 9·11 테러 관련 가족사 등이 생각나 “협상은 협상인데 당신이 그때 했던 (이야기가) 기억나서 그냥 (9·11 추도) 예배만 드리겠다. 그랬더니 ‘예스, 땡큐’라고 바로 답이 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속으로 ‘그래도 한번 시간은 주겠지’ 했지만 그럴 시간도 없이 가서 예배를 드렸는데 그날 저녁 ‘내일 오후에 시간이 있느냐’(는 이야기가 나왔다.) 이때가 일종의 큰, 어떤 터닝 포인트 중 하나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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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미) 양국이 만나고 많은 정상들이 오시는데 한국하고 미국의 협상이 깨지면 이것도 큰일이지 않느냐”며 “그래서 메시지 관리를 좀 해야겠다 하면서 러트닉에게 ‘여기까지도 잘 왔는데 마지막 관문이 남았다. APEC은 APEC이고 협상을 계속 이어가자. 그동안 한국과의 협상이 잘 됐고 진행을 하면서 결론을 내겠다는 정도의 메시지를 해 가자’ 그걸 한 7시 40분쯤 보냈다. 그로부터 1시간 뒤에 문자가 왔었다”고 상황을 설명했다.
김 장관은 당시까지도 양국이 논쟁하던 부분과 관련해 “한국 측 의견을 받아주겠다”는 답변이 온 이후 “다시 컨펌하는 과정들이 있었는데 그게 받아들여지면서 (협상이)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이라고 회상했다.
또 “제가 보낸 문자가 ‘이제까지 잘해왔으니 협상을 앞으로도 계속 이어가자’ 그런 양국의 기본적인 체면은 살리자는 정도 문자였는데 미국 측에서는 그걸 최후의 문자로 받아들였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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