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26년09월29일 08시05분에 팜이데일리 프리미엄 콘텐츠로 선공개 되었습니다.
[이데일리 김새미 기자] 장성훈 전 엘레바테라퓨틱스 부사장만큼 ‘리픽투’(성분명 리라푸그라티닙)의 미국 식품의약국(FDA) 인허가 과정을 속속들이 아는 인물은 드물다. 그는 미국 FDA에서 오랜 기간 신약 심사·규제 업무를 경험한 뒤 HLB의 미국 자회사 엘레바 부사장으로 자리를 옮겨 신약개발과 허가 전략을 맡았다. 엘레바에서의 마지막 업무 중 하나도 리픽투 신약허가신청서(NDA)를 FDA에 직접 제출하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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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전 부사장은 28일 서울 마포구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이번 승인을 단순한 ‘HLB(028300)의 첫 FDA 신약 허가’를 넘어서는 사건으로 평가했다. 엘레바가 가속승인(Accelerated Approval)을 염두에 두고 단일군 임상 데이터를 기반으로 NDA를 제출했지만 FDA가 별도의 확증 임상 의무를 부과하지 않고 정식승인(Standard Approval)을 내렸기 때문이다.
장 전 부사장은 “엘레바 내부에서도 당연히 가속승인을 받을 것으로 생각했다”며 “마지막까지 FDA가 이를 어떻게 처리할지가 가장 큰 관전 포인트였다”고 말했다.
선발약 확증임상 줄줄이 난항…FDA, 리픽투엔 예외 허용
리픽투 허가의 배경에는 앞선 FGFR2 억제제들이 겪은 확증임상 난항이 있었다. 인사이트(Incyte)의 ‘페마자이레’(페미가티닙)와 다이호 온콜로지(Taiho Oncology)의 ‘리트고비’(푸티바티닙)는 각각 2020년과 2022년 FDA 가속승인을 받은 뒤 확증임상을 진행했지만 환자 모집 등에 어려움을 겪었다. QED테라퓨틱스(QED Therapeutics)의 ‘트루셀틱’(인피그라티닙)은 2021년 FDA 가속승인을 받았지만 결국 허가를 자진 철회하고 시장에서 철수했다.
엘레바도 리픽투 도입 직후 같은 문제에 부딪혔다. 가속승인을 받으려면 임상적 유익성을 입증하기 위한 확증임상을 준비해야 했지만 희귀한 FGFR2 변이 환자를 수백명 모집해 무작위시험을 수행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다.
장 전 부사장은 “기존 FGFR2 억제제들의 확증임상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FDA에 설명하면서 어떤 시험을 해야 하는지 논의했다”며 “놀랍게도 FDA가 확증임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를 허가 이후로 미뤘다”고 회상했다.
그는 “FDA가 확증임상을 구체적으로 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가속승인을 전제로 한 NDA를 받아줬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예외적이었다”며 “이 문제를 논의하느라 NDA 제출이 몇 개월 늦어졌지만 확증임상을 설계하고 시작한 뒤 제출했다면 훨씬 오래 걸렸을 것”이라고 했다.
단일군 임상으로 정식승인…“후발 FGFR2 허가 기준점 될 것”
더 큰 반전은 최종 허가에서 나왔다. 리픽투는 무작위 3상이 아니라 이전 치료를 받은 FGFR 억제제 미경험 담관암 환자 116명을 대상으로 한 단일군 임상 1/2상(ReFocus)을 근거로 허가받았다. 객관적반응률(ORR)은 46%, 반응지속기간 중앙값(mDOR)은 11.8개월이었다.
장 전 부사장은 “규제기관인 FDA 입장에서도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FDA가 단일군 임상에서 나온 ORR과 DOR을 근거로 가속승인이 아닌 정식승인을 결정했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그는 정식승인 배경으로 치료효과와 확증임상의 현실적 한계를 꼽았다. 장 전 부사장은 “ORR 46%가 경쟁약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것은 아니지만 결코 나쁜 결과도 아니다”며 “미충족 의료수요와 치료효과, 확증임상의 실행 가능성, 추가 임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의 가치 등 전체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결정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정식승인으로 확증임상 부담이 사라지면서 비용과 시간도 크게 절감하게 됐다. 장 전 부사장에 따르면 최근 항암제 임상 비용은 환자 1명당 약 20만달러 수준이다. 100명 규모로 임상을 진행한다면 약 2000만달러(약 273억원)가 소요되는 셈이다.
장 전 부사장은 리픽투가 향후 FGFR2 치료제 개발의 새로운 기준점이 될 가능성에도 주목했다. 후발주자에 허가 문턱을 높이면서 시장에서 유리한 지위를 구축하게 된 것도 이번 정식승인의 또 다른 수확이다.
그는 “기존 약들은 가속승인이어서 확립된 표준치료로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지만 리픽투가 정식승인을 받으면서 앞으로 개발될 FGFR2 치료제의 하나의 기준점(reference)이 될 수 있다”며 “후발 약물들이 과거처럼 단일군 임상만으로 허가받기는 어려워지고 리픽투와 비교해 임상적 가치를 보여줘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내다봤다.
기술수출 넘어 직접 허가·판매…K바이오 신약개발 모델 확장
이번 승인은 국내 바이오산업의 신약개발 모델을 확장했다는 점에서도 의미도 있다.
앞서 유한양행의 폐암 신약 ‘레이저티닙’이 2024년 FDA 허가를 받았지만 한국을 제외한 글로벌 권리는 얀센에 기술수출돼 미국 NDA 제출과 허가·상업화를 얀센이 주도했다. 반면 리픽투는 HLB의 미국 자회사 엘레바가 글로벌 개발·상업화 권리를 확보한 뒤 후기개발과 FDA 허가 절차를 직접 수행했으며 미국 판매까지 맡는다.
장 전 부사장은 “과거 같으면 후기 단계에서 글로벌 제약사에 기술수출했을 텐데 이제는 국내 기업도 후기 임상개발을 직접 할 수 있다는 새로운 모델을 보여준 것”이라며 “리픽투의 의미는 HLB의 첫 FDA 허가를 넘어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진양곤 HLB그룹 의장도 승인 당일 유튜브를 통해 “빅파마에 기술수출한 뒤 회사의 운명을 맡기기보다 자력으로 항암제를 확보한 후 ‘우리 항암제와 당신들의 항암제를 병용으로 함께 개발해 볼까요’라고 하는 것이 더 발전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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