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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선택한 리가켐...5000억이 바꿀 K-바이오 투자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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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두 기자I 2026.07.07 08:16:02
[이데일리 송영두 기자] 정부가 처음으로 신약개발 후기 임상에 대규모 정책자금을 투입했다. 국민성장펀드가 코스닥 상장 신약개발 기업 리가켐바이오에 5000억원을 직접 투자하기로 하면서다. 그동안 정책자금이 생산시설 확충이나 상업화 단계 기업 지원에 머물렀던 것과 달리, 연구개발(R&D) 중심 바이오텍에 장기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을 공급한 첫 사례다. 업계에서는 이번 투자가 K-바이오 투자심리 회복은 물론 후기 임상 역량을 키우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5일 국민성장펀드 기금운용심의회를 열고 리가켐바이오(141080)에 대한 5000억원 규모 직접투자를 승인했다.

이번 투자는 첨단전략산업기금 2500억원과 최대주주 측인 팬오리온, 국내 기관투자자 2500억원이 공동 참여하는 구조다. 일반 유상증자가 아닌 제3자배정 방식의 전환사채(CB) 1700억원과 전환우선주(CPS) 3300억원으로 조달되며 만기는 10년이다. 발행 시점에는 보통주가 아니어서 즉각적인 지분 희석은 발생하지 않는다.

리가켐바이오는 확보한 자금을 인수합병(M&A)이 아닌 연구개발에 집중 투입한다. 올해 900억원, 2027년 1800억원, 2028년 이후 2300억원을 임상 2·3상 등 후기 임상 개발에 순차 집행할 계획이다. 국민성장펀드는 의결권이 제한된 재무적 투자자(FI)인 만큼 경영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국민성장펀드 리가켐바이오 투자 개요.(이미지=챗GPT)
국민성장펀드 리가켐바이오 투자 개요.(이미지=챗GPT)




5000억원보다 중요한 '첫 신약개발 직접투자'



국민성장펀드가 바이오 분야를 지원한 사례는 앞서 비티젠(옛 에스티젠바이오)에 대한 850억원 저리 대출과 SK바이오사이언스에 대한 3000억원 저리 대출이 있었다. 하지만 두 사례 모두 생산시설 확충이나 상업화 단계 백신 사업을 대상으로 한 융자 성격이었다.

반면 리가켐바이오는 정책자금이 자기자본 성격으로 직접 투입되는 첫 사례다. 특히 아직 자체 개발 신약의 상업화 매출이 없는 신약개발 기업이라는 점에서 기존 지원과는 성격이 다르다.

이는 금융위원회가 지난 4월 국민성장펀드 전략위원회에서 제시한 방향성과도 맞닿아 있다. 당시 금융위는 '차세대 바이오·백신 설비 구축' 사업의 일환으로 임상 3상 단계 백신 기업과 신약개발 기업을 각각 지원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SK바이오사이언스가 백신 분야 첫 사례라면, 리가켐바이오는 신약개발 분야 첫 직접투자 사례인 셈이다.

업계가 이번 결정을 주목하는 이유는 정부가 처음으로 신약개발 후기 임상에 장기 인내자본을 공급했다는 점이다. 신약 개발은 임상 단계가 뒤로 갈수록 수천억원의 개발비가 필요한 반면 실패 위험도 가장 큰 구간이다. 이른바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으로 불린다. 그동안 국내 바이오벤처들은 유상증자나 전환사채 발행을 반복하며 자금을 조달했고, 이는 주가 하락과 기존 주주 가치 희석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국민성장펀드가 10년 만기의 장기 자금을 공급하면서 후기 임상을 추진하는 기업들의 자금조달 환경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된다. 시장에서는 이번 투자가 리가켐바이오를 넘어 국내 신약개발 섹터 전반의 투자심리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투자업계 관계자는 "국내 신약개발 기업들은 장기간 무매출 구조와 임상 실패 위험 때문에 글로벌 경쟁사 대비 낮은 기업가치를 받아왔고, 최근 고금리 환경에서는 벤처캐피털과 기관투자자의 투자도 크게 위축됐다"며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기술력과 성장성을 직접 검증해 대규모 투자를 결정했다는 사실 자체가 시장에는 하나의 긍정적인 시그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리가켐바이오는 항체약물접합체(ADC) 플랫폼을 기반으로 글로벌 빅파마와 총 15건, 누적 9조6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국내 대표 기술수출 기업으로 자리매김했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기술사업화 성과와 후기 임상 경쟁력이 이번 투자 결정의 주요 배경이 된 것으로 보고 있다.



"후기 임상 경험이 K바이오 경쟁력"



이번 투자는 단순한 자금 지원을 넘어 K-바이오의 약점으로 꼽혀온 후기 임상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실제로 최근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바이오USA 기간 중 이데일리와 인터뷰한 한정현 베링거인겔하임코리아 BD&L 총괄은 한국 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R&D) 경쟁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평가하면서도, 글로벌 경쟁력을 한 단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후기 임상 경험 축적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총괄은 "글로벌 빅파마는 전임상 단계 후보물질을 도입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임상 3상과 상업화 성공까지를 염두에 두고 투자와 기술이전을 결정한다"며 "기술이전 이후에도 글로벌 제약사와 적극적으로 협업하며 후기 개발 경험을 축적하는 것이 한국 바이오 생태계가 한 단계 더 도약하기 위한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결국 후기 임상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할 장기 자금이 필수적이라고 입을 모은다. 후기 임상에는 수천억원의 개발비가 투입되는 만큼 장기 자본 없이는 기술이전을 선택하거나 개발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번 국민성장펀드 투자가 후기 임상 수행 경험을 축적하는 마중물이 된다면 기술수출 중심에서 자체 신약 개발과 상업화까지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고, 국내 기업들도 글로벌 무대에서 빅파마와 보다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것이라는 기대가 나온다.



임상 2상 전후 기업 키울 후속 펀드도 필요



시장에서는 이번 투자가 리가켐바이오 한 곳에 그치지 않을 가능성에도 주목하고 있다. 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성장펀드는 리가켐바이오 외에도 연구개발 중심 바이오기업을 대상으로 추가 투자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의 직접 투자가 확대될 경우 그동안 위축됐던 바이오 섹터 투자심리도 점차 회복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다만 업계는 이번 투자만으로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며 후속 정책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글로벌 임상에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국민성장펀드가 후기 임상 기업에 대규모 자금을 투입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라며 "그동안 국내 바이오기업들이 가장 부족했던 부분이 후기 임상을 수행할 수 있는 자금과 경험이었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평가했다.

다만 그는 "이번 한 건으로 생태계가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며 "개념증명(PoC)을 마친 임상 2상 전후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후속 펀드도 함께 마련돼야 보다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이 부회장은 "중국 기업들은 대부분 임상 데이터를 확보한 상태에서 글로벌 제약사와 사업개발(BD) 미팅을 진행하는 반면 국내 기업들은 아직 전임상 단계에서 기술을 소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결국 글로벌 경쟁력은 PoC 이후 단계에 얼마나 과감하게 투자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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