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동베를린과 평양 등을 방문한 혐의(국가보안법 등)로 1972년 사형 선고를 받은 고(故) 박노수 영국 케임브리지 교수와 고(故) 김규남 민주공화당 의원, 김판수(73)씨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9일 밝혔다.
박 교수와 김 의원 등은 1960년대 일본과 영국에서 유학하다가 공산주의 국가였던 동베를린과 평양 등을 방문하고 귀국했다. 당시 중앙정보부(현 국가정보원)는 1969년 4월 공산주의 국가를 방문해 북한을 찬양했다는 이유로 박 교수 등을 서울 남산 분실로 연행했다.
중정은 박 교수 등이 평양에서 지령과 공작금을 받고 국가 기밀을 빼냈다는 ‘유럽 간첩단 사건’을 조작해 누명을 씌웠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과거사위)는 박 교수 등이 중정에서 가혹행위를 당했다고 판단했다. 김씨가 2008년 과거사위 조사에서 “중정 수사관이 (자신에게) 매질부터 시작해 물과 전기로 고문했다”라고 진술했다.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은 1969년 11월 박 교수와 김 의원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김씨에게 징역 7년에 자격 정지 7년을 내렸다. 박 교수 등은 항소했지만 김씨만 징역 5년으로 감형됐다. 박 교수 등은 1970년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기각돼 사형이 확정됐다. 박 교수와 김 의원은 사형이 확정된 지 2년 뒤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박 교수 유족과 김씨 등은 2006년 “중정 수사관에게 강제로 연행돼 고문을 당했다”며 과거사위에 진실 규명을 신청했다. 과거사위는 2009년 “중정이 박 교수 등을 불법으로 가두고 과장해 간첩죄를 적용했다는 점이 인정된다”라며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박 교수 유족 등은 과거사위 결정문을 토대로 재심을 청구했다.
서울고법 형사2부(재판장 김동오)는 2009년 열린 재심에서 박 교수 등에게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유죄로 주장한 내용을 인정할 증거가 없거나 부족해 (박 교수 등에게 내려진) 원심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다”라고 판단했다.대법원이 무죄를 확정하면서 박 교수 등은 45년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