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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지 않았다, 파냈다…'거꾸로 그린' 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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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주 기자I 2026.10.27 07: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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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병윤,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
미술교육 없이 독학으로 연 작가의 길
나무패널에 석고·물감 올린 뒤 긁어내
석고 매개로 숱한 실험 끝 터득한 기법
평평한 화면에 수천번 선 새겨 산 표현
모질게 상처낸 흔적으로 완성한 32점

작가 우병윤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에 건 자신의 작품 ‘율려 26-01-14’(2026, 130.3×162.0㎝) 곁에 섰다.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중첩’ ‘들떠 있는 풍경’ 외에 또 다른 연작인 ‘율려’는 전통적인 음악용어에서 작품명을 따온 만큼 좀 더 리드미컬한 흐름이 도드라진다. 산세가 잡히는 배경 위로 긁어낸 석고의 허연 흔적이 마치 거친 바람결처럼 덮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우병윤이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에 건 자신의 작품 ‘율려 26-01-14’(2026, 130.3×162.0㎝) 곁에 섰다. 이번 개인전에 내놓은 ‘중첩’ ‘들떠 있는 풍경’ 외에 또 다른 연작인 ‘율려’는 전통적인 음악용어에서 작품명을 따온 만큼 좀 더 리드미컬한 흐름이 도드라진다. 산세가 잡히는 배경 위로 긁어낸 석고의 허연 흔적이 마치 거친 바람결처럼 덮였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성긴 천이려니 했다. 희끗희끗 들여다보이는 바닥이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설명이 힘들다. 아니 상상할 수가 없다. 그냥 거칠게 짠 허연 천 위로 붓이 엷게 스쳤으려니 해두면 간단하다. 왜? 벽에 걸린 그림이니까. 자고로 그림이라면 붓놀림이어야 하니까. 게다가 화면을 셀 수 없이 타고 오른 저 가는 선들이 작가의 흔적이라면 너무 모진 작업이지 않겠나.

이렇게 또 타협을 볼 참이었나 보다. 세상을 딱딱하게 만드는 그 고정관념을 예술작품에까지 드리우면서. 물론 그 순간 여지없이 뒤통수를 맞게 돼 있다. 그런 편견으로 뭘 제대로 들여다볼 수 있겠나. 그나마 뒷걸음질로 하나는 건졌다. ‘작가에게 너무 모진 작업’이라는 그거다.

“석고다, 허옇게 드러난 것은. 나무패널에 석고를 얹고 색을 올린 뒤 긁어낸다. 그리는 그림이 아니라 파내는 그림이다.” 그러니까 때론 길게 때론 짧게 긁어낸 저 숱한 선과 선은 석고 화면에 수없이 난 상처고, 덧입힌 물감까지 깊숙이 도려내야 드러나는 희끗희끗한 바닥이란 얘기다. 그렇게 혹독하게 덤벼들어야 끝을 볼 수 있는 모진 작업이다.

우병윤의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 전경. ‘중첩: 들떠 있는 풍경 26-04-313’(2026, 72.7×60.6㎝)과 ‘중첩: 들떠 있는 풍경 26-04-314’(2026, 72.7×60.6㎝)가 나란히 걸렸다. 부드럽게 드러난 하얀 석고 면도 수없이 긁고 지나간 선과 선이 만들어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 전경. ‘중첩: 들떠 있는 풍경 26-04-313’(2026, 72.7×60.6㎝)과 ‘중첩: 들떠 있는 풍경 26-04-314’(2026, 72.7×60.6㎝)가 나란히 걸렸다. 부드럽게 드러난 하얀 석고 면도 수없이 긁고 지나간 선과 선이 만들어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고정관념이니 타협이니 어쩌면 장황하다 할 복선을 깔아야 했던 건 이 작가, 우병윤(38)을 들여다보는 시작점이 바로 거기라서다. 사실 그가 해온 작업이 아예 그랬다. 세상의 편견을 깨야 하는 일이었던 거다. 당장 ‘석고 화면’부터. 말이야 쉽지, 누가 가르쳐주기는커녕 힌트조차 준 적이 없던 재료고 기법이다. 아니 그 전에 붓 잡는 법, 물감 쓰는 법부터 혼자 터득했을 터다. 독학 작가. 요즘 시대에는 오히려 드물다고 할, 제도권 미술교육 한 번 받은 적 없이 스스로 작가의 길을 열고 또 묵묵히 밟아왔던 거다.

서울 종로구 인사동길 선화랑에 펼친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은 요란한 치장, 화려한 경력과는 동떨어져 올곧게 구현해온 작가 자신의 세계를 내보인 자리다. 온갖 ‘기존’과는 한참 벌어졌으나 그 기존이 되레 무색한 세상 풍경 32점을 꺼내놨다.

우병윤의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 전경. 왼쪽의 ‘율려 26-01-14’(2026, 130.3×162.0㎝)와 오른쪽의 ‘중첩: 들떠 있는 풍경 26-08-322’(2026, 162.0×130.3㎝)가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다. 같은 산 풍경이어도 두 연작의 선과 결은 확연히 다르다. 그 사이에 10호 크기(53.0×45.5㎝) ‘중첩: 들떠 있는 풍경’(2026) 두 점(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 전경. 왼쪽의 ‘율려 26-01-14’(2026, 130.3×162.0㎝)와 오른쪽의 ‘중첩: 들떠 있는 풍경 26-08-322’(2026, 162.0×130.3㎝)가 비스듬히 마주보고 있다. 같은 산 풍경이어도 두 연작의 선과 결은 확연히 다르다. 그 사이에 10호 크기(53.0×45.5㎝) ‘중첩: 들떠 있는 풍경’(2026) 두 점(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평평한 상태에서 긁는다면 표현 여지 커져”

선화랑의 매개로 작가를 만난 게 두 번째다. 처음은 2024년 봄. 햇수로 20년째, 햇수로 8회째던 작가공모전 ‘예감전’(자연회귀적 열망)에 4인 중 한 명으로 우 작가가 이름을 올리면서다. 당연히 시선을 끌었다. 비록 고른 행보는 아니었지만 2004년 출발한 ‘예감전’은 탄탄한 작가 등용문이었으니까. 이제는 이름만으로 보증수표가 된 작가들(박기원·문형태·송지연·정영주·이상원·이영지 등)이 그 문턱을 넘었다. 그중에서도 우 작가는 ‘나 홀로 그 먼 길’에 ‘석고’를 세운, 범상치 않은 이력·화법이 도드라졌더랬다.

사실상 상업화랑의 데뷔전이던 그 자리에서 소개했던 작품은 이번 개인전 출품작과는 좀 달랐다. 석고를 두툼하게 바른 나무패널에 물감을 올린 뒤 긁어내는 방식은 다르지 않으나 당시는 ‘평면에서 실현하는 입체의 깊이’에 더 몰입했다. 긁어내는 행위로 인해 뒤엉킨 석고와 물감이 거칠게 휘몰아치다 혼돈의 땅처럼 불룩 솟아올랐던 터다(연작 ‘중첩’).

우병윤의 ‘중첩’(2024, 145.5×112㎝·오른쪽)과 ‘중첩’(2024, 65.1×53㎝). 2024년 선화랑 작가공모전인 ‘예감전’(자연회귀적 열망) 전경이다. 4인 중 한 명으로 우 작가가 이름을 올렸던 그 전시에 걸렸던 작품들 중 두 점이다. 이번 개인전에 나선 연작 ‘중첩’과는 색과 결에서 차이가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중첩’(2024, 145.5×112㎝·오른쪽)과 ‘중첩’(2024, 65.1×53㎝). 2024년 선화랑 작가공모전인 ‘예감전’(자연회귀적 열망) 전경이다. 4인 중 한 명으로 우 작가가 이름을 올렸던 그 전시에 걸렸던 작품들 중 두 점이다. 이번 개인전에 나선 연작 ‘중첩’과는 색과 결에서 차이가 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새 무슨 변화가 있었던 건가. “예전 작업이 석고를 바르는 단계에서 이랑·고랑의 요철을 만들고 채색한 뒤의 표면을 긁어냈다면 이번 작업에선 그 요철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 그냥 평평한 바닥에서 긁어내는 일에만 집중했다.” 쉽게 풀어보자면 처음부터 만든 울퉁불퉁한 굴곡이라면 긁기도 전에 형체를 갖게 마련이다. 대신 평평한 상태에서 긁는다면 표현할 수 있는 여지가 훨씬 커진다는 뜻이고.

물론 손과 선이 더 많이 필요한 일이다. 수천 번이 긁힌 선 아래 드러난, 그 ‘희끗희끗한’ 석고의 바닥을 보는 일이니까. 한층 세밀하고 정교한 이 작업에 작가는 ‘들떠 있는 풍경’(2026)이란 연작명을 붙였다. 특별한 점은 이 ‘들떠 있는 풍경’이 이전에는 없던 형상을 빚어내기 시작했다는 거다. 가파르기도 완만하기도 한 산세, 그 한복판을 움푹 파낸 뒤 호숫물을 채우기도 한 ‘산 풍경’이다.

작가 우병윤이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에 건 동명의 작품 ‘중첩: 들떠 있는 풍경 26-09-330’(2026) 앞에 앉았다. 바닥에 앉아보자는 제안에 작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었다. 120호 규모(194.0×130.3㎝) 화폭 3점을 연결한 이 대작은 수만 번 베고 갔을 그 칼끝에 남은 선과 선이 웅장한 산수를 빚고 있다. 도려낸 만큼 선명해지는 풍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우병윤이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에 건 동명의 작품 ‘중첩: 들떠 있는 풍경 26-09-330’(2026) 앞에 앉았다. 바닥에 앉아보자는 제안에 작가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었다. 120호 규모(194.0×130.3㎝) 화폭 3점을 연결한 이 대작은 수만 번 베고 갔을 그 칼끝에 남은 선과 선이 웅장한 산수를 빚고 있다. 도려낸 만큼 선명해지는 풍경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선이 늘어나고 밀도가 쌓일수록 평평했던 화면에서는 산의 윤곽과 밝기, 부피가 생긴다. 하얗게 뭔가 덮인 풍경은 색을 더해 그린 이미지가 아니라 색을 덜어낸 자리에 나타난 이미지다.”

그렇게 산과 산이 마치 하얀 공기층을 품은 듯 부유하는, 정확하게는 ‘들떠 있는’ 전경이 만들어졌다. 하지만 비단 풍경만을 위한 ‘들뜸’은 아니란다. 거기서 작가 자신을 읽어내기도 했다는 거다. “정착하지 않은, 고정되지 않은 ‘나라는 작가와 작업’ 역시 틈을 벌린 채 공중에 떠 있다는 생각이다. 내가 사는 문화·풍토를 녹여내면 그게 가장 한국적이다 싶어 색이든 결이든 여전히 그쪽을 향해 가는 중이다. 들떠 있는 상태로.”

우병윤의 ‘율려 25-08-13’(2025, 116.7×91.0㎝). 하늘과 맞닿은 산의 큰 봉우리는 일정정도 거리감을 뒀을 때만 보이는 풍경이다. 서서히 다가갈수록 풍경은 석고에서 끌어올린 무수한 수많은 선과 선으로 해체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율려 25-08-13’(2025, 116.7×91.0㎝). 하늘과 맞닿은 산의 큰 봉우리는 일정정도 거리감을 뒀을 때만 보이는 풍경이다. 서서히 다가갈수록 풍경은 석고에서 끌어올린 무수한 수많은 선과 선으로 해체된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율려 25-08-13’(2025, 116.7×91.0㎝) 중 부분을 확대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율려 25-08-13’(2025, 116.7×91.0㎝) 중 부분을 확대했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스승은 ‘유튜브·블로그 튜토리얼 영상’뿐

고향 경북 대구에서 서울로 올라와 빈티지가구회사에서 그림 그리는 일을 하며 병행한 ‘그리기’였단다. 스물한두 살쯤부터 스케치북을 채워갔고 스물여섯에 오랜 고민을 끝냈다. ‘작가, 한번 해보자’고. 남들이라면 학원부터 찾았을 텐데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철학의 문제라기보다 생계의 문제였다. 당장 일도 멈춘 상태였으니 그마저도 사치였다 느꼈을 거다. 이후 스승 자리에는 ‘유튜브·블로그 튜토리얼 영상’이 나섰다.

2018년 서울 삼청로의 한 카페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서른 살에 처음 연 개인전에는 아크릴·과슈로 광목에 그린 붓 그림을 걸었다. 다행히 1~2점을 팔긴 했는데 만족할 순 없었다. 나만의 고유한 작업, 독창성이 보이질 않아서다.”

‘석고’가 눈에 띈 건 그 이듬해부터라고 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작가의 석고는 입체감을 만드는 도구였더랬다. 그 위에 점을 찍어 독특한 결을 입혔지만 “이것도 내 것이 아닌 것 같았다”는 거다.

우병윤의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 전경. 작품 ‘중첩 26-01-299’(2026, 145.5×112.0㎝)와 함께 작업 중에 떠올렸을 작가의 단상을 옮겨놨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 전경. 작품 ‘중첩 26-01-299’(2026, 145.5×112.0㎝)와 함께 작업 중에 떠올렸을 작가의 단상을 옮겨놨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을 들여다보면 볼수록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우리밖에 없다는 걸 깨닫는다”고 썼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중첩 26-01-299’(2026, 145.5×112.0㎝) 중 부분을 확대했다. 다른 전시작인 연작 ‘들떠 있는 풍경’, 연작 ‘율려’와는 다른 결이다. 특히 이 작품은 예전 ‘중첩’에 많이 기운 듯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우병윤의 ‘중첩 26-01-299’(2026, 145.5×112.0㎝) 중 부분을 확대했다. 다른 전시작인 연작 ‘들떠 있는 풍경’, 연작 ‘율려’와는 다른 결이다. 특히 이 작품은 예전 ‘중첩’에 많이 기운 듯 보인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그러다가 어느 날 “일하던 가구회사에서 귀퉁이가 찍힌 가구를 우연찮게 접하면서 뭔가 머리에 스치는 게 있었다.” 석고를 긁어내는 작업은 그때부터였단다. “다들 올리고 칠하는 그림을 그릴 때 나는 벗겨내는 그림을 그리자 했던 거다. 여백이 중심인 거꾸로 그리는 그림.”

비록 대안공간이 대부분이었지만 8년 전년 첫발을 뗀 이래 해마다 거르지 않고 작품을 내걸었다. 그러곤 기어이 인사동을 대표하는 상업화랑에까지 진출하게 된 거고. 좋게 말하면 시행착오, 심하게 말하면 실패라고 여겼던 그 ‘변화’ 하나하나까지 충실히 내보일 만큼 작가는 애써 가릴 게 없었다. 계속 ‘들떠 있는 풍경’이었으니까. “화단의 주류에 섞이게 되면 의미가 생길 듯하다. 그래야 들떠 있는 티가 나지 않겠나. 억지로 화합하는 게 필요할까. 난 공조가 답이라 생각한다.” 전시는 11월 3일까지.

작가 우병윤이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에 건 자신의 작품들 앞에 섰다. 작가 정면에 ‘중첩 26-01-301’(2026, 162.0×130.3㎝)이 걸렸다. 무수하게 긁어낸 선과 선이 실타래처럼 엮였다. 나무패널 위의 석고가 드러나도록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낸 ‘상처’들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작가 우병윤이 선화랑 개인전 ‘중첩: 들떠 있는 풍경’에 건 자신의 작품들 앞에 섰다. 작가 정면에 ‘중첩 26-01-301’(2026, 162.0×130.3㎝)이 걸렸다. 무수하게 긁어낸 선과 선이 실타래처럼 엮였다. 나무패널 위의 석고가 드러나도록 날카로운 도구로 긁어낸 ‘상처’들이다(사진=오현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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