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머셋(뉴저지주)= 이데일리 이정훈 특파원]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더라도 국내에서 연구비조차 건지지 못하는 구조가 가장 큰 문제입니다. 정부가 창조적 기술을 개발하도록 지원하고 독려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관련 시장과 민간 산업을 키우는 일이다.”
미국에서 창업한지 11년만에 기술력 하나만으로 회사를 성장시켜 당당히 국내 코스닥시장에 상장시킨 대표적인 한상(韓商)기업 엑세스바이오(Reg.S)(950130)의 최영호 대표는 6일(현지시간) 프린스턴대학 인근 뉴저지주 서머셋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이같이 밝혔다.
그는 해당 산업 인프라를 확충해 산업 자체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기보다 우선 기술 개발을 위해 자금부터 제공하거나 이렇게 지원한 자금으로 기업들이 인건비나 소모품 구입 등에 지출하지 못하도록 통제하는 현행 정책자금 지원 방식과 원칙에 대해 재고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마침 이번 주에는 최문기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이 재미한인 과학자들을 만나 우리 정부가 이들의 연구개발(R&D)을 지원하고 그 기술력과 노하우를 활용해 국내 산업기술 발전을 도모하는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캐나다 토론토와 미국 뉴욕을 방문한다. 최 대표는 이번에 최 장관이 과학자들을 만나는 자리에 참석하지 못한다며 아쉬움을 표시하며 대신 이 같은 조언을 건넸다.
◇ “창조경제? 시장과 민간부문부터 키워라”
생명공학자인 최 대표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창조경제에 대해 “경쟁원리에 따라 정책자금을 지원하고 이를 통해 민간부문을 키워 국내 기업들이 개발한 신기술과 제품이 한국에서 우선 정착된 후 글로벌 시장으로 나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족한 자금력으로 이국 땅인 미국에서 사업을 시작했지만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뎅기열과 쯔쯔가무시병 진단시약 개발용으로 미 국방부에서 250만달러(약 28억원)의 연구자금을 지원받아 사업 초기 어려움을 이겨냈다. 인구는 전세계 3%에 불과하지만 헬스케어 시장은 세계 절반 규모인 미국 내수시장에 힘입어 가파른 성장을 이끌 수 있었던 최 대표가 가장 절실하게 느낀 부분이었다.
그는 “우리 정부가 수십년 전부터 신기술 개발 등에 많은 지원을 해왔지만 큰 실익이 없었던 것은 한국 내수시장이 너무 작아 매력이 없기 때문”이라며 “신기술을 개발해 수출을 늘리도록 장려하는 것도 좋지만 최소한 국내에서 연구비라도 건질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바이오테크부문을 예로 들며 민간부문과 시장을 키우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국내에서는 새로운 바이오신약 등을 개발해도 건강보험 수가로 병원 현장에서 적용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최 대표는 “우리 공공의료 체계는 아주 잘 되어 있지만 이는 산업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규제가 강하고 시장규모가 커질 수 없는 장벽이 되고 있다”며 “신기술과 제품 가치를 제대로 평가해주고 의료보험 수가도 적절하게 조정해 민간산업을 키우면 공공지출 부담을 줄여 결국 공공의료에도 득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미국처럼 민간부문만 비대해지는 것도 문제지만 일단 민간부문의 파이를 키워놓은 덕에 신기술 개발과 세수 확대, 고용 창출은 물론이고 IT산업까지 파급되는 효과를 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기술 개발과 이를 위한 자금 제공부터 생각하는 정책 지원방식도 재고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 대표는 “기술을 만들도록 하고 기업에 투자해주는 환경을 개선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것이 우선이 돼선 안된다”며 “산업 인프라부터 확충해 그 산업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심리를 만들어 준다면 파이낸싱은 그 이후에 자연스럽게 따라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정책자금 지원의 효율성도 강조했다. 그는 “우리는 정책자금을 지원하면 이 자금으로 기계설비 등만 구매하도록 제한하고 있는데 이는 선진국 기업들의 배만 불리는 일이 될 수 있다”며 “미국처럼 지원자금으로 인건비나 소모품 등에도 지출이 가능하게 해 국내 경제와 산업을 같이 살리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자신이 지원받았던 미 국방부 연구자금도 그랬지만, 미국에서는 정책 지원자금으로 기업이 생산설비를 늘리는데 오히려 제한을 두고 있다.
또 “창조경제는 결국 경쟁”이라며 “정부가 지원을 통해 경쟁할 수 있는 기회를 동등하게 제공해주되 결과를 이룬 사람들에게는 그에 따른 보상을 제공하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 도미(渡美) 20여년..“자금력과 네트워크가 관건”
최 대표는 23년전 미국으로 건너와 창업 11년 만에 엑세스바이오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등에 만연한 세계 3대 감염성 질병 말라리아를 간단하게 진단하는 시약부문에서 세계 1위 기업으로 키웠다. 엑세스바이오의 전세계 시장점유율은 34%에 달한다.
엑세스바이오는 지난 5월 코스닥시장에 상장하며 230억원이라는 공모자금을 수혈받았다. 이에 따라 최근 생산설비를 확충하고 R&D와 마케팅 세일즈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그는 사업 초기 자금 조달과 사업상 네트워크 구축이 한상기업이 직면한 최대 과제라고 지적했다.
최 대표는 “ 미국에서 사업하는 한국기업이다보니 외국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붙어 자금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며 “한국에서도 미국에서 활동하는 기업의 현지사업을 모니터링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자금 제공에 난색을 표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초기에 자금 조달이 어려워 친지나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 직원 월급을 준 적도 있다며 최근 기업공개(IPO)로 이들의 투자 회수를 도울 수 있었다는 점을 다행스럽게 생각한다고 고백했다.
그는 지난 1990년 처음 미국으로 건너와 창업하기 까지 몸담았던 미국내 한국 스타트업(start-up) 기업에서 일했던 노하우와 그 과정에서 쌓은 네트워크가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됐다고 밝혔다.
최 대표는 “미국 역시 관계와 네트워크로 사업이 이뤄지는 만큼 시간도 오래 걸리고 실력만으로 비즈니스를 잘 해내기 어렵다”고 귀뜸했다. 그 자신도 오랫동안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고객들이 제품을 주문한 뒤 일부 생산설비를 확대할 수 있도록 대금을 미리 지급해줬던 일부터 고객 추천으로 ‘국경없는 의사회’와 세계보건기구(WHO) 등과 긴밀한 인연을 맺을 수 있었던 경험 등이 회사 성장에 큰 보탬이 됐다고 전했다.
최 대표는 “1년에 보통 6~8번씩은 우리 제품을 소비하는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지역 국가를 방문해 사업에 대한 아이디어도 얻고 제품에 대한 피드백을 듣는다”며 “또한 이들과 접촉하면서 이들을 이해하며 친구가 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